민주주의의 흐름과 도전

글·이동수 dslee@khu.ac.kr

 

[희망세상]2011년 1월호부터 민주주의 강의-현대적 흐름을 연재합니다. 정치적 이상으로 여겨지는 민주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점검해보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과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연재는 사업회 연구소에서 발간한 [민주주의 강의4-현대적 흐름]을 보다 쉽게 요약했습니다.



오늘날 정치이념이나 정치제도로서 민주주의의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덧 민주주의는 정치적 이상이 되었고 현실에서도 대세를 이루고 있다. 20세기 후반 사회주의가 무너진 후 동구권에도 널리 퍼졌으며, 지구화 속에서 단지 일국의 제도가 아니라 각 국가들 사이에 영향을 주고받는 지구적 시스템으로까지 이해되고 있다.

특히 근대 이후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가 민주주의의 주류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그 이유로 방대한 규모의 영토 내에서 다수의 이질적 시민들로 구성된 근대국가는 고대와 달리 직접민주주의 실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댄다. 하지만 이 외에 근대인들의 일차적 관심이 경제로 쏠리고 분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정치에 전념하는 전문가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 또 다른 이유다. 뿐만 아니라 근대인들이 대의민주주의가 직접민주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르며 보다 우월한 체제라고 생각했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의견을 표출하거나 대변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 의견 가운데 공동선을 추구해야 하는데 이런 공동선 심의엔 대의민주주의가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가인 시에예스(E. Si럜뢵)와 미국 건국자인 매디슨(J. Madison)은 모두 이런 생각을 가졌다.

도전받는 대의민주주의

한편 대의민주주의가 득세한 것은 역사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고대 아테네 민주정은 직접민주주의로 분류되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직접민주주의는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직이 열려있고 민회에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자격심사제(dokimasia)나 결산보고서(euthynai) 등을 통해 능력있는 사람들만 행정관이 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있었으며, 이러한 소수의 행정관들에게 상당한 권한이 위임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근대 초기 인류의 이상은 중세적 질서에서 권력을 독점한 교회나 영주, 군주로부터 자유를 획득하고자 하는 자유주의에 있으며, 이때 자유가 방종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공화주의 단계를 거친 다음,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확대하고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가 덧붙여져 오늘날과 같은 체제가 성립되었다.
따라서 근대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민주주의가 합쳐져 혼합된 체제이며, 이 점이 직접민주주의 대신 대의민주주의라는 형태를 띠게 된 또 다른 원인이다. 그리하여 다양한 진화를 거듭해 온 민주주의는 20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대의민주주의가 가장 현실적이며 또 가장 탁월한 체제라고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한 선호와 의견들이 표출되며 국가의 경계가 모호해진 탈산업화·세계화 시대로 진입함에 따라, 대의민주주의는 점차 그 권위를 상실하고 여러 측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혹자는 그 원인을 대의제 자체의 내재적 한계, 즉 공동선에 대한 외면, 대의의 어려움, 대표자의 귀족화 등에 돌리며, 다른 혹자는 현대사회의 환경적 요인인 외재적 한계, 예컨대 지구화와 탈산업화, 정당민주주의의 발호 등에 귀속시킨다.

대표의 실패? 심의의 실패?

그런데 이를 종합해 분석해 보면, 현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의 논거는 크게 둘로 집약된다. 인민의 의사가 제대로 대변되지 않는다는 것과 공동선이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 즉 대표의 실패(failure of representation)와 심의의 실패(failure of deliberation)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표의 실패는 오늘날 학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다. 현대엔 대표의 문제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많은 민주주의 옹호론자들이 이를 보완하기 위해 참여민주주의나 직접민주주의적 요소의 적극적인 도입을 주장한다. 국민발안제, 국민투표제 및 국민소환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적 제도들의 확대도 이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표의 실패를 참여민주주의나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로 보완한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심의의 실패는 대표의 실패와 서로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인민의 의사가 제대로 대변되더라도 그것이 비합리적이라면 공동선이 실현되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또 다른 문제는 어떻게 공동선을 찾을 것인가에 모아지며, 그런 점에서 심의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현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의 요지와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논의들을 차례로 살펴보기로 하자.

직접민주주의를 위한 노력-포퓰리즘

먼저 가장 비판적인 사람들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그것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로 간주하고 직접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서두른다. 예컨대 포퓰리즘(populism)은 대의제의 무능을 질타하면서 국가가 인민과 직접 대면해야 한다고 본다. 인민은 부패하고 타락한 소수의 엘리트 계층에 비해 수적으로도 다수이며 도덕적으로도 절대적인 우위에 있기 때문에 인민의 의사는 직접 표출되어야 한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인민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 모두를 일원적이고 동질적인 존재로만 간주한다. 또한 의회를 대신해 동질적인 민의를 대변하는 기제로서 국가를 강조하며, 그 국가도 결국 한 사람의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동일시한다. 그리하려 포퓰리즘은 밑으로부터의 변혁 열망을 위로부터 조작하고 통제하며, 실제로는 이를 권위주의적으로 봉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직접민주주의를 위한 노력-풀뿌리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적 측면을 강조하는 가장 강력한 도전은 풀뿌리민주주의(grass-root democracy)에서 제기된다. 여기서 풀뿌리민주주의란 생성의 과정, 즉 배제된 주체들이 참여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스스로를 능동적인 주체로 변화시키는 과정으로 정의된다. 이점에서 풀뿌리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와 다르다. 후자가 대의민주주의의 제도화된 틀 내에서 참여의 폭을 넓히는 데 집중하는 반면, 전자는 지금 당장 직접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풀뿌리 차원에서 대중들이 적극적인 직접행동을 통해 자기결정력을 높여 가면 궁극적으로 스스로 통치하는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본다.
여기서 풀뿌리민주주의가 강조하는 직접행동과 자기결정력은 아나키즘(anarchism)이 추구하는 덕목으로서 국가통치에 대한 회의를 품고 있으며, 아직 아나키즘에 다다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중간단계로서 잠정적인 연방주의(federalism)를 거쳐 최종 목표에 도달하고자 한다.
이러한 직접민주주의를 위한 노력들은 그 문제점 때문에 아직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지는 않다. 포퓰리즘은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며, 풀뿌리민주주의는 너무 이상적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노력은 대의민주주의적 틀 내에서 그 문제점을 보완하는 데 모아지며, 따라서 대표성과 심의성 강화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들을 먼저 살펴보자.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젠더민주주의

젠더민주주의(gender democracy)는 가부장적인 근대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소외된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드러내고 공적 영역뿐 아니라 사적 영역과 생활정치에서의 민주화를 추구한다. 이는 두 측면으로 나뉘는데, 첫째 공적 영역에서 여성들도 배제없이 평등한 시민권을 부여받고 민주주의 구성원이 되는 것으로서, 이를 위한 여성의 정치참여와 세력화는 오늘날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측면은 여성이 주로 담당해 왔던 사적 영역에서의 평등한 젠더 계약과 연관된다. 이는 새로운 성별 분업, 새로운 젠더 계약을 필요로 함을 의미하는데, 그 중요한 내용은 사적 영역에서 여성들에게 맡겨졌던 돌봄(care)의 문제를 공적인 정책의 중요한 어젠다로 끌어내는 것이다. 예컨대 북유럽 모델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여성들로 하여금 직업과 모성을 양립하도록 지원하고 남성의 양육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다.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다문화민주주의

국제 이주가 급증하는 가운데 제기된 다문화민주주의(multi-cultural democracy)는 문화적 차이 속에서 배제된 소수자의 문화를 복원시켜 민주적 통합을 추진해야 함을 역설한다. 즉 민주사회라면 이주자들의 다문화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사회에 민주적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문화민주주의도 두 단계를 포함한다. 먼저 주류문화가 소수문화를 억압하면 사회적 갈등은 필연적이므로 사회유지를 위해 다문화가 인정되는 다문화주의가 성립되어야 한다.
하지만 다문화주의가 인정받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는 단순히 문화적인 것뿐만 아니라 기존 거주자들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기득권 유지를 위해 주류문화를 강조하는 데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법적 참여를 확대하는 다문화민주주의가 되어야만 다문화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생태민주주의

생태민주주의(ecological democracy)는 대의민주주의가 의사결정과정에서 주어진 선호의 반영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 선호가 형성되는 사회제도적 맥락과 영향을 소홀히 하며, 현재의 가치들만 대변할 뿐 미래의 시간, 다른 공간, 다른 종(species)의 선호를 반영하지 못하는 대의의 결함을 갖고 있다고 비판한다. 예컨대 영토적 주권의 범위에서 벗어난 사람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 그리고 인간 이외 다른 생명 존재들의 이해와 요구가 대변되는 것을 현재 대의민주주의가 구조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면한 생태위기는 곧 참여의 위기이며, 자연 생태계와 미래세대, 그리고 주권 행사의 범주에 포함되지 못한 현세대 집단들을 대변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의의 강화를 위한 시도-심의민주주의

한편 심의의 강화를 강조하는 입장들을 살펴보자. 먼저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는 정치를 제한하고 축소하는 자유주의적 한계를 넘어 정치영역을 민주적 원리에 입각해 복원시키고, 또한 과도한 윤리성과 동일성의 정치공동체를 전제하는 공동체주의와 달리 다원주의적 가치 및 차이를 포용할 수 있는 민주적 전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여기서 심의민주주의는 시민들 사이의 소통을 원리로 삼는데, 소통이란 이미 전제된 차이를 해결하는 데 있어 폭력적인 배제가 아닌 협의와 심의를 통해 수용가능한 결정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다원화된 사회엔 다양한 가치들이 존재하며, 이 중 어느 것이 옳다고 보기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다양한 가치들의 충돌 속에서 수용가능한 지점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의 덕목이며, 이를 위해서는 심의가 가장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의의 강화를 위한 시도-전자민주주의

또한 전자매체의 발달로 인해 그 실현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전자민주주의(electronic democracy)는 참여의 폭발로 인한 폐해의 위험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책임성을 갖고 토의하는 과정을 확대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전자민주주의는 대의성을 높이기 위한 참여의 확대와 공동선을 찾기 위한 토의의 심화를 두 목표로 삼는다. 이 둘은 긴장관계를 이루지만 그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참여의 무분별한 확대가 인터넷 공론장의 파편화 혹은 분절화로 이어져 합리적 의사결정을 어렵게 만들 우려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 환경 속에서는 인터넷의 토의 및 심의를 통해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것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고 본다.



과학기술의 민주화의 대두

한편 전문분야로만 여겨졌던 과학기술 분야에 있어서도 과학기술의 민주화가 대두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민주화는 현대 과학기술에서 일어난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먼저 오늘날 거대 과학화와 과학기술의 상업화에 의해 과학기술에 관한 의사결정이 시민들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반면, 과학기술 발전의 결과는 시민들의 뜻과 다르게 평화와 인권에 위협이 되며 환경파괴 가능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또한 새로운 과학기술에 의해 야기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지식은 불확실하고, 그것을 통제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삶과 생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과학기술에 관한 의사결정에 이젠 시민참여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전문성은 전문지식과 연관되지만 그 지식을 어떻게 규범적으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심의하는 시민지식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새로운 민주주의의 도전들은 근대 대의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대의의 위기와 심의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들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풀뿌리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아니 풀뿌리민주주의도 현실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 틀 내에서 풀뿌리민주주의를 시행하고 궁극적 차원에서만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하는 방식을 상정하고 있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는 그 효용성과 가치를 여전히 인정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동안 대세를 이루었던 대의민주주의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새롭게 제시되는 다양한 도전들에 적절히 대응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항상 그 타개책을 마련해 왔다. 민주주의의 미래도 그런 인류의 지혜에 기대를 걸어본다.

글 이동수 | 경희대 NGO 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