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타버린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건졌을까,
우리 모녀는 입은 그대로 용산으로 갔다.
우리는 고아원에서 같이 지냈던 아주머니 한테.
우리 엄마에게 부화 기술을 가르친 오리 아저씨의 누님댁이었다.
그 곳엔 아주머니와 딸 두사람이 사는 단칸방이었다.
뿐만 아니라 싻바느질 하는 아주머니의 작업방 이었다.
우리에겐 우리집이 있었다.
아버지 엄마랑살던 할아버지댁의 우리집.
그 우리집에 우리는 못 들어가고 이렇게 아주머니의 단칸방에 다리를 펴게 되었다.
삯 바느질하는 아주머니는 틈틈히 우리의 옷을 만드셨다. 나는 용산국민학교에 전학을 했고 미군들이 내 코를 납짝코라고 놀리는데에 그들의 코가 삐죽코라고 놀리며 기도 죽지 않고 놀았다.
엄마는 무에 그리 바쁜지 집에 잘 없었다.
엄마 젖을 만져야 자는 내게 아주머니가 자신의 가슴을 내게 주셨다. 그렇게 나는 잘 지냈다.
어느날 엄마는 우리가 살 집을 구했다며 아주머니랑 같이 이사 가기를 원했다.
그 두 어른이 밤새 궁시렁 궁시렁하는 얘기에 나는 엄마의 젖을 안 만지고도 잠이들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이사할 집을 보러갔다.
그 집은 벽마다 백설기에 콩이 박힌것처럼 까맣게 총알구멍이 뚤려있었다.
나는 어렸으므로 그 총알 구멍이 누구를 죽이기 위한것을 몰랐다.
월사금 달라고 울던 나를 달래기위해 깨엿을 사오신 우리집의 단골손님인 심선생이란분이 흉물스런 집이라도 괜찮으면 쓰라고 빌려준 집이었다.
엄마는 도배를 하면 괜찮다고 그 집에서 같이 살자고했고 우리는 신문지로 도배해 그 총알구멍을 감추고 살기 시작했다.
그 곳은 신촌역 근처 지금은 수퍼마켓이 있다.
우리가 이사하고 우리집은 군인들이 와서 부란기를 짜기 시작했다. 그 당시는 군인들도 상사의 명령이라면 어디서나 일 하는 인심이 있었다.
군인 아저씨들은 노래를 부르며 대패질을하고 못을 박았다
"라이 라이 꾸냥이 운다~~"
"아메리카 타구욱 땅에 차이나 거리~~~"
나는 아저씨들이랑 놀고 아주머니에게 배고프다 말했다. 나의 모든 해결사는 아주머니였다.
엄마는 치마꼬리 날리며 어디를 가는지 바빴다.
부란기 열대를 만들어 아홉대는 집에 들여놓고 한대는 팔아 계란을 샀다.
엄마의 사업이 시작된것이다.
다시금 우리집엔 병아리의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공부를 잘했고 아주머니는 나를 천사라부르며 행복해 하셨다.
아주머니의 딸 정숙이 언니는 내게 공부는 기르치지만 약을 올려 언제나 나를 울게 만들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완벽하게 잘생긴 아주머니의 동생 오리 이저씨는 어디론가 떠돌다가 가끔 우리집에 오셨다.
어떤땐 청 보라색 유리항아리에 꿀을 담아 오셨고 어떤땐 말린 뱀을 가져오셨고 어떤땐 각기 품종이 다른 닭의 사진을 가져 오셨다.
나는 그때마다 아저씨의 말이 재미있어 까르르 넘어갔다.
*
어느날 꿈을 꾸었다.
그날은 엄마가 가나안농장으로 교육을 받으러 간 날이었다.
정숙이 언니는 가끔 자면서 신음소리를 내는 습관을가졌다.
그 날도 아주머니 품에서 젖 만지고 자는 나였다.
꿈에 나는 우유트렁크의 (배급하는 우유통 크기는 석유드럼통) 뚜껑을 타고 강 물위를 흘러가고 있었다.
도망치려 뚜껑 밖으로 발을 디디면 그냥 강 물이였다.
그 많은 뚜껑들 내게 하나도 위로되지 않는 뚜껑들, 나는 그 중 하나에 앉아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너무나 외로웠다. 그래서 울면서 설핏 잠에서 깨어 계속 울음을 우는데 정숙이 언니가 어머나! 하며 잠꼬대를 했다. 나는 기절할듯 울었다.
내 꿈엔 호랑이도 뱀도 무서운게 없었다.
왜 그리 조용한 우유 뚜껑이 나를 무섭게 만들었는지?
온 식구들이 잠깨어 내게 달려왔다.
왜 그러냐고? 무서워서 말 할수가 없었다.
아홉살의 내 꿈이 내 평생 삶일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