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사를 했다.
아마도 돈을 벌었는가보다.
넓은 방 두개에 마당이 넓은 집이었다.
한 백평쯤 되는 집이었는데 영단 주택이라했다.
집 안엔 여전히 부란기가 있었고 엄마는 21일동안의 부화기를 돌봤고 부화뿐만 아니라 여전히 밖에서 일을 보았다. 엄마친구 아주머니는 여전히 집에서 부란기를 돌봤고 나를 키웠다.
목욕을 시키고 밥을 먹였다.
아주머니의 딸 정숙이 언니도 짬짬히 나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었다. 정숙이 언니와 엄마는 짬짬히 책 이야기를 했다. 어쩌다 들른 아주머니의 남동생인 아저씨도 나의 친구였다.
이 모든이들은 나의 식구였다.
아주머니의 친척들이 많이 들락였다.
나에게는 모든이들이 반가운 식구였다.
아주머니는 내 엄마나 다름 없었다. 누가 누구의 친척인지 알수 없었으나 모두가 반가운 사람들이었다.
어쩌다 내가 잘못하면 엄마는 매를 들었고 아주머니는 나를 감싸며 매를 대신 맞았다.
나중에 아주머니는 이런말을 하셨다.
"인하는 천사였다. 나는 인하를 목욕시키며 혹시 겨드랑이에 천사의 날개가 뿌리잡고 있을까? 한참을 씻기며 들여다본적이 있다." 라고.
그 만큼 나를 세상의 물을 젖지않게 기른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정직한 사람으로 길러지고 있었다. 그 정직이 내가 살면서 얼마나 바보짓을하며 고생을 자초 하는지 모른다.
*
집을 또 한 채 샀다.
우리집의 윗집. 영단 주택이었다.
나의 어른들은 계산없이 집을 두채 사면 하나씩 나눠갖기로 한것이다.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그 집을 팔아 왕십리로 이사를갔다.
아마도 오해를 벗어나기 위한것이리라.
내 삼촌들이 울 엄마와 아저씨의 관계를 의심한것이다.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삼촌들의 의심은 끝간데가 없었다.
어쩌다 누님을 찾는 아저씨는 나에게 아주 많은 가르침을 놀이로 주셨다.
납 땜을 가르쳤고 튀김만두를 같이 먹었으며 말타기와 목마를 경험하게 하신것이다.
나는 그분이 나의 아버지였으면 할 정도로 내 마음속엔 나의 아버지였다.
하물며 아저씨는 신성일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잘 생긴 미남이었다.하지만 아주머니가 이사를 가시므로 아주머니의 모든 친적들은 우리집에서 흔적을 감추었다. 우리 모녀가 아주머니네를 찾는것 밖에.
엄마는 가끔 문안의 할아버지댁을 찾았었다.
시부모를 찾아 문안 드리는 일로도, 또는 내 옷을 만들기위해 시댁에 있는 재봉틀을 쓰기위한것이기도 했다. 그 재봉틀 뚜껑은 내가 아기일적 나를 태우고 삼촌들이 밀어주기도 했던것이다.
어느날부터 엄마는 문안을 들어갈때 나를 떼어놓기 시작했다. 그 이유를 나중에 알았지만 할아버지는 언제나 엄마에게 차비라고 약소한 돈을 주셨는데 내게도 똑같이 주셨다. 그 돈이 눈치가 보인다는 이유였다. 그랬다. 누하동의 식구들은 우리 엄마에게 할아버지가 돈을 주지않나 살폈고 돈을 주시고 싶은 할아버지는 내게도 엄마랑 똑같이 차비를 주신것이다. 돈을 쓸줄도 모르고 필요하지도 않은 그 돈은 언제나 저금통으로 들어갔다. 세뱃돈과 함께.
사실 우리가 어려울때 엄마에겐 요긴한 돈이 되었었다. 내가 그것을 알았을때는 저금통을 흔들었을때 아뭇 소리도 안날때였다. 그때는 울었지만.
*
우리가 신촌에 집을 마련하고 살때 큰 할아버지댁이 을 동네에 이사를 하셨다.
큰 할아버지와 큰 할머니는 우리 엄마를 사랑하셨다.남편 못잊어 딸 하나 예쁘게 키우면서 동분서주하는 울 엄마를 이쁘게 보신 탓이었다.
뿐만 아니라 계모의 구박에 못이겨 북으로간 서방을 기다리는 며느리를 아깝게 보는 이유였다.
큰 할머니는 "요년,요년."하시면서 나를 이뻐 하셨다.
아주머니의 자리를 큰 할머니가 대신 한것이다.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도 신촌으로 이사를 하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잃으셨고 이화여대교수로 임명 되셨으며 다시 새장가를 드신뒤였다.
할아버지도 큰 할아버지처럼 울 엄마를 사랑하신것이다.
엄마는 더욱더 바빠졌다 시댁식구들을 찾아뵈랴 사업하랴.
하지만 나는 큰 할머니께 정신이 팔렸다.
요년요년 하시며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면 내 정신은 오직 큰 할머니께 매달리는것이다.
엄마같던 아주머니는 가끔 찾게 되었다.
*
그런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