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나서며...

1979년 1월12일, 제60회 전국체전<갑년(61회)을 일년 앞당겨 갑년체전이라 부르던>이 한밭벌을 달구기 전 지금은 한밭종합경기장이라 불리는 대전공설운동장 옆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와 여름이면 저녁식사를 마치고 분수가 내뿜든 문창교 다리밑에서 멱을 감은 뒤 고래표 선양소주 한병을 들고 아랫돌다리 옆 알바위에 앉아 친구와 오징어 눈깔(마른오징어에서 이빨따로 때어 포장하여 판매)을 안주삼아 잔을 돌리다가 취기가 오르면 인단산에 올라 나훈아의 "고향역"이며 "대동강편지"를 소리높여 부르곤 했었다. 때로는 앞가슴을 풀어 제치고 넓다란 바위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해아리던 그바위에, 소주잔을 기울이던 물가의 그 바위에 숭숭 파인 구멍을 보고 할일 없는 사람들의 헛짓거리라 치부도 했었다.

 

강산이 세번이나 변한 뒤에야 그 구멍이 성혈(性穴, Cup-mark)  즉 바위구멍이라 불리는 풍요와 다산을 빌고 잡귀를 쫓아 액을 막아주던, 아주 오래된 옛사람들이 하느님과 칠성님, 그리고 용왕님과 산신령께 소원성취를 갈구한 흔적이란것을 알게 되었다.  

 

대전지명지에 소개 된 한밭의 옛이야기를 보면 천동의 어느 마을 앞 냇가에는 알 같이 생긴 큰 바위가 있어 마을의 수해를 막아주었다고 하여 알바우마을이라 불렸고 샘골에서는 정월 열나흘밤 자정을 넘기기 전에 디딜방아를 샘 옆에 거꾸로 꽃아 놓고 그위에 생리혈이 묻은 여자속옷을 씌워 잡귀의 근접을 막고 마을의 평안을 빌었다고 한다. 이때 사용한 디딜방아는 이웃마을의 묵인하에 말없이 가져다(훔쳐?) 쓰고 동네여자들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피묻은 속옷을 남몰래 내어 주었다고 한다.

새터말에서 머슴살이하던 "은어송" 총각이 식장산으로 매일 나무하러 다니며 찾아 뵌 스님 덕에 명당터에 아버지를 묻어 당대에 발복을 하였고 인단산과 옥녀봉<별암(배람무)마을 북쪽 봉우리> 사이에 있는 언고개는 영험한 기가 모여있다 하여 예로부터 상여나 부녀자가 탄 가마를 절대 지나가지 못하게 하였는데 일제강점기에 이고개를 잘라 불필요한 도로를 내었고, 인단산 정상의 암반에도 아주 굵은(직경 8cm) 쇠말뚝을 박아 놓아 광복후에 여러차례 뽑으려 애를 태우다 실패하고 1985년 즈음에 대형장비(절단기, 굴삭기)를 동원하여 바위를 자르며 겨우 뽑아 내었다. 

 

세월이 흘러 가오동의 새터말, 집넘이, 도사, 아랫대성 마을과 무저지뜰, 무저지또랑, 물레방아터, 방살미뜰은 없어지고 바둑판 모양으로 신작로가 뻥뻥 뚫리고 성냥갑을 닮은 높은 집들이 서로 키재기를 하게되니, 새터말 북쪽의 옥녀봉 산자락(현 가오고등학교)에 있던 바위구멍이 새겨진 고인돌은 굴삭기에 목이 매달려 지금의 장소인 대전동구국제화센터로 옮겨져 자리를 잡았고 아랫대성골과 고산사골을 가르는 능선 위의 바위구멍에는 지금도 매달 음력 초사흘에 우유와 쌀이 뿌려지고 있으며 퉁소골, 옻샘골, 구억골 기도터에는 촛불, 향불이 밝혀진다.

  

                                                                                                                                     <1986년 국립지리원 발행지도) 

*언   제:2015.3.10(화, 꽃샘추위가 엄청 기승을 부리든 날)

*어디로:문창교-알바위-인단산-언고개-오빠나루-아랫샘골-옥녀봉-동구청-은어송네거리-국제화센터-은어송중학교-굴다리-고산사

*누구와:나홀로

*무엇을:아련한 추억속의 바위구멍을 연결한 도보코스 개발을 위한 답사

 

<문창교에서>

<도수관로공사로 임시로 덮어놓은 대전천알바위구멍 2호> 

<공사로 파쇄 된 대전천 알바위 1호>

<되돌아본 파쇄 현장/ 우측 계단으로 올라선다>

<알바우마을과 인단산/ 언고개 삼거리>

<알바우 마을의 벽화>

<천동 경로당 옆길로>

<골목 끝집 모퉁이를 지나>

<산길에 올라서> 

<우측의 나예수석> 

 

<구 대전방송 쪽으로 조금  내려가 왼편의 가오리형 바위구멍> 

 

<김현정이란 사람의 작품인듯> 

 

<지금도 기도터로 이용한 흔적>

<동남쪽에서본 가오리바위> 

<능선 등산로에서 본 가오리바위> 

<되돌아 정상 바로 밑의 인단산신제단과 넓은 마당> 

<일제강점기, 언고개를 자르고 쇠말뚝을 박은 뒤 소제방죽을 허물고 신사를 짓기 전까지 임시로 사용했다 함> 

<우측으로 보이는 나예수석과 천동의 홍익아파트>

<인단산 바위구멍3호/ 남자 생식기를 나타내었다>

<인단산 정상 암반지대 밑에서 바라본 대전천/ 저멀리 시경계 마루금의 망덕봉과 국사봉,흐미한 서대산>

<쇠말뚝이 박혔던 인단산 정상 암반/ 철거과정에 중장비로 많이 파괴 되었음>

<주변에 산재한 많은 무당들이 지금도 사용>

<노란 나무가지 끝 바로 위가 두꺼비바위구멍> 

<매화 꽃망울 사이로 보이는 보문산성> 

 

<인단산 두꺼비 바위구멍과 대전천 건너편 석교동의 가는골> 

<아주 귀엽게 생겼다> 

<두꺼비바위구멍 바로 옆의 삼성혈> 

<정상부의 바위구멍> 

<인단산바위구멍 1,2호와 천동의 휴먼시아 아파트> 

<인단산바위구멍 1호> 

<보문산 방향으로 본 1호 바위구멍> 

<따로 떨어져 있는 바위구멍 1개> 

<보문산과 겹쳐보며> 

<식장산 방향으로 본 1호 바위구멍> 

<인단산바위구멍 2호/ 깊은 홈 밑에 여字를 새겨 반대편의 남자 생식기 모양의 바위구멍과 연관시킴> 

<보문산 방향으로 본 2호 바위구멍> 

<언고개로 내려가며 뒤돌아 본 인단산 정상의 암반지대와 저멀리 보문산> 

 

<천동초등학교 네거리> 

<휴먼시아 아파트 1단지를 지나> 

<2단지 입구를 지나며 우회전> 

<개인주택단지 입구에서 좌측 등산로로> 

 

<능선에 올라서 좌측 끝의 묘지로> 

<저멀리 대전역의 코레일 쌍둥이 빌딩> 

<공조참판 권씨 묘소에서 바라본 삼정동산성과 판암근린(배수지)공원> 

 

 <이정표로 되돌아 나와서>

<왼편은 용운동의 황태봉, 오른편은 삼정동산성> 

<우측의 황태봉과 가운데 저멀리 흐미한 계족산 봉황정과 계족산성>  

<뾰족산(치알봉/잔치때쓰는 차일)을 오르며>

<국가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오빠나루로 표기 된 뾰족산 정상>

 

<3등 삼각점> 

<지적도근점> 

<식장산 자락의 은어송아파트/ 새터말/ 은어송 총각이 머슴살이하던 곳>

<아주 간편한 의자> 

<옻밭마루 고개/ 우측으로 천동 휴먼시아, 좌측으로 판암동 조뜸(조촌), 옻나무가 많고 조씨들이 많이 산다> 

<우측 바로 밑의 조뜸(조촌)과 경부선 너머의 판암동 주공 아파트> 

<옻밭마루 고개> 

<되돌아 본 뾰족산> 

<휴먼시아 아파트(옥방골/ 규수(옥녀,옹녀)의 아랫도리)와 샘골을 이어주는 옥방(옹녀)고개> 

<고개에서 바라본 남서쪽 대전천 건너편의 호동 범골> 

<옥녀봉에서 남으로 뻗은 능선/ 우측으로 내려가면 천동 주공아파트,별암(베람무)마을> 

<옥녀봉(옹녀봉) 정상>  

 

<저 멀리 계족산 봉황정> 

<동쪽 능선으로 나가면 좌측이 아랫샘골, 우측이 샛터> 

<식장산과 동구청> 

 

<경부선 철길 너머 판암동 아파트와 우측의 삼정동산성> 

 

 

 

<가오고 네거리> 

<가오동 고인돌이 원래 있었던 자리/ 가오고등학교> 

<봄의 전령> 

<은어송 네거리> 

<동구국제화센터> 

 

 

<가오동고인돌과 선돌> 

 

 

<특이한 바위구멍> 

 

 

 

 

 

<산책로를 따라서> 

 

 

 

 

<은어송중학교 뒷길로>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깍대골(각딧골) 초입에서 우측 능선으로> 

<능선에 위치한 공동묘지/ 더이상 쓸 자리가 없다> 

<능선에서 뒤 돌아본 보문산 마루금> 

<이장한 묘지를 지나> 

<우측의 큰바위에 잠(?)字가 새겨있음> 

 

<바위 군락 1> 

<바위 군락2> 

<고산사 바위구멍> 

 

 

<바로 위 묘지에서 우측으로> 

 

<고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