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제 : 2018.12.5(수)

어디서 : 무수동 유회당-여경암-314봉-치유의숲 산책로-동물원 후문-국사봉-옥녀봉-동물원 정문

누구와 : 대청호와 한밭언저리길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전날보다 10도 이상 기온이 떨어질때 내려진다는 한파주의보 탓인가? 참가인원이 단촐하다.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6호 유회당(부)기궁재 (有懷堂(附)奇窮齋)

유회당과 기궁재는 권이진(1668∼1734)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건물과 그에 소속된 재실로 보문산 남쪽 기슭 아늑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고 싶다는 뜻을 지닌 ‘유회(有懷)’는 중국 명나라 때 학자인 전목제의 ‘명발불매 유회이인(明發不寐 有懷二人)’이라는 시에서 따온 말이다. 유회당은 앞면 4칸·옆면 2칸 건물로 활수담이라는 작은 연못 뒤쪽에 있다. 앞면과 양쪽 면에 난간이 돌려진 툇마루가 있고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제사를 지내는 재실인 기궁재는 ㄱ자형 건물로서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안방·건넌방·부엌 등이 있으며, 1920년대에 다시 지었다. 이곳에는 유회당 권이진 선생이 아버지의 묘를 지키기 위해 지은 시묘소인 삼근정사와 선생의 문집이 보관되어 있는 장판각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유회당 좌측 한단 아래에 위치한 장판각에는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20호인 유회당판각 (有懷堂板刻)이 보관되어 있으며

이 책판은 유회당 권이진(1668∼1734) 선생의 문집을 새기기 위해 만든 판목이다. 권이진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송시열의 외손자이다.

권이진은 1694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당쟁으로 인해 순탄하지 못했다. 1728년 호조판서로 있으면서 궁중에서 민간의 논밭을 사들이지 말 것과 공물을 정해진 액수 이상으로 거두지 말 것 등을 건의할 만큼 성격이 곧고 강직하였다.
이 문집에는 시와 소(疏:상소글) 등이 실려있으며, 유회당 선생이 관직에 있던 1700∼1734년 사이의 많은 사료가 실려 있다.
권이진 선생의 증손자인 권상서가 순조 초에 판각한 것이며, 재질은 배나무와 소나무이다. 총 246판에 많은 사료가 실려있으며, 여러 외교자료와 『연행일기』그리고 성리학에 관련된 자료들은 당시의 학문과 국제정세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18호 여경암(부)거업재,산신당 (餘慶菴(附)居業齋,山神堂)

여경암은 조선 영조(재위 1724∼1776) 때 문신 권이진(1668∼1734)이 교육장소로 쓰기 위하여 숙종 41년(1715)에 지었다. 여경암을 중심으로 앞쪽에 서당건물로 사용했던 거업재, 뒤쪽에 산신당이 자리잡고 있다.
여경암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사마온공이 자제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강당인 ‘여경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인데, 좌우 뒤쪽으로 2칸씩 덧붙여 ㄷ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거업재는 앞면 6칸·옆면 1칸 규모로, 一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오른쪽 2칸은 마루를 꾸며 여름철 서당으로, 가운데 2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어 겨울철 서당으로 사용하였으며 나머지 2칸은 부엌이다.
산신당은 고종 19년(1882)에 지은 건물로, 앞면·옆면이 1칸 규모이다. 단촐하게 지은 건물로 안쪽에는 불단을 만들어 산신탱화를 걸어 놓았다.

2019년에 개장 예정인 치유의 숲 산책로에서

치유의 숲 조성공사장 전경



국사봉은 대전광역시 중구 무수동 마을 뒷산을 말하며, 이곳의 정상부에는 옛날에 제사를 지냈던 장소로 추정되는 유적이 있다.
이 유적은 동·서를 축으로 능선 정상에 돌로 쌓아 만들었는데, 규모는 동서 8m, 남북 5m, 둘레 25m 가량이다. 유적의 남·서쪽과 북쪽은 자연암반에 의지하여 만들었는데, 대부분은 현재 붕괴된 상태이다.
붕괴된 돌 사이에서는 흙으로 만든 말인 토마(土馬)를 비롯하여 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이 약간 발견되었다. 자기류는 청자·분청사기·백자조각 등이고, 기와조각은 매우 조잡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토마는 머리와 몸체를 함께 만들고 다리, 꼬리, 눈, 안장을 별도로 제작하여 붙였다.
국사봉 유적은 돌 쌓은 규모가 비교적 작으며, 출토유물을 살펴볼 때 제사를 지내기 위한 자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217.9m 삼각점 옥녀봉에서


조금 쌀쌀하긴 하였지만 모처럼 쾌청한 하늘을 볼수있어 좋았던 서른 일곱번째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