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민주주의

 

사람은 주어진 제도의 환경 속에서 더 좋은 ‘먹이’와 ‘서식지’를 차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경쟁한다. 장애나 질병 등으로 노동력을 잃는 바람에 오쩔 수 없이 국가의 보호에 의지하는 사람도 있고 법률을 위반하는 반칙을 저질러 감옥에 갇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제도 안에서 질서와 규칙을 지키면서 경쟁한다. 그런데 거기서 머무르지는 않는다. 어떤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기에게 불리하다싶으면 그 제도를 변경할 권한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 이것이 권력을 차지하려는 정치적 경쟁이다. 타인의 인정을 받고 사회적 명예를 얻으려는 본능적 욕망이 이 정치적 경쟁의 불쏘시개로 작용한다.

 

무론 이 경쟁에도 정해진 규칙이 있다. 우리 헌법은 제40조부터 제118조에 걸쳐 국회와 대통령. 행정부와 법원. 선관위와 헌법재판소에 이르기 까지 정치적 경쟁의 규칙. 그리고 그 경쟁에서 승리한 개인과 집단 사이의 권한 배분과 분쟁 해결 절차까지 모든 중요한 사항을 규정해두었다. 헌법과 헌법의 위임을 받아 세부 내용을 규정한 관련 법령. 그 규칙의 적용에 관련된 관행과 그에 대한 사회적 공감. 반칙에 대한 응징. 공정한 경쟁이 산출한 결과에 승복하는 데도 이 모든 것을 통틀어 우리는 민주주의 절차라고 한다.

 

민주주의는 정해진 규칙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모든 의사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허용하지 않는다. 변경할 수 없는 의사결정이 그것이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역시 그 길을 열어두고 있다.

 

국민은 누군가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결정을 변경할 수 있다. 다음 선거에서 그 남자 또는 그 여자를 낙선시킴으로서 (제42조 국회의원의 임기)그렇게 한다. 국회에서 다수결로 의결한 새로운 법률 조항은 언제든 똑같은 절차를 거쳐 개정될 수 있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 국회와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을 임기 중에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탄핵의결권과 탄핵심판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제65조와 제 111조)이미 한 차례 이 권한을 행사한 적이 있다. 헌법 그 자체도 변경의 대상이 된다. 국회와 대통령에게 발의권이 있으며 (제 128조).국회 의결과 국민투표 절차를 거치면 헌법도 바꿀 수 있다. (제130조)

 

헌법을 제외한 다른 법령의 세부 사항은 국회와 정부가 법률에 규정된 절차를 거쳐 변경할 수 있다. 어느 것을 어떻게 바꾸는 게 좋을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주어진 시스템 안에서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돌보기에도 힘겨운 게 보통 사람의 처지라. 5000만 명의 대한민국 주권자들이 모든 의사결정에 다 참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대표를 뽑아서 대신 의사결정을 하도록 한다. 이른바 대의 민주주의다. 우리 헌법도 이런 제도를 체택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는 정당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 법률 시스템과 복지 시스템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집단을 만든다. 이것이 정당이다. 누구나 정당을 만들 수 있으며 누구든 거기 당원으로 참여할 수 있고 후원도 할 수 있다. 정당은 국가의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 (제8조). 주권자인 국민은 나름의 기준에 입각해 지지하는 정당과 그 정덩이 낸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 누구도 합법적으로 치러진 선거의 결과를 거부할 수 없다. 투표를 통해 표출된 국민의 선택은 최종적인 것이며. 이것을 바꾸는 절차는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들이 투표할 때 중요하게 고려했던 선택의 기준에 대해서는 토론하고 비판할 필요가 있다. 선거 결과는 ‘신성불가침’ 영역에 속하지만 그것을 불러온 국민들의 정치적 판단 기준과 의식은 비판과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국민들은 스스로 원하는 그 무엇을 위해 선택하지만. 때로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속아서 최선이 아닌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적절한 비판과 반성이 없으면 그런 오류를 반복하게 된다. 민주주의가 변경할 수 없는 결정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이 때로 잘못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독일 국민이 합법적 선거에서 히틀러를 국가 지도자로 선출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는 연방총리로 선출된 다음 모든 민주적 선출 제도를 폐기했다. 총통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어떤 절차로도 볍경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헌법을 바꾸면서까지 1971년 3선 대통령이 되었던 박정희도 1972년 유신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함으로써 사실상 종신 대통령 지위에 올랐다. 박정희 대통령 선출이라는 의사결정은. 그 자신이 원하지 않는 한 절대 변경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똑같은 일을 북한 김일성 주석도 했다. 그는 죽을 때가지 50여 년 동안 ‘민족의 태양’ 이자 ‘위대한 수령’ 이었다. 지금은 그 아들인 ‘위대한 장군’이 나라를 다스린다. 이런 것을 우리는 전체주의 독재라고 한다. 민주주의는 변경할 수 없는 의사결정과는 결코 공존할 수 없다.

 

권력은 때로 무섭게. 때로는 아름답게 보인다. 우리는 21세기 최강 국가인 미합중국 국민들이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다. 버락 오바마 라는 낮선 이름을 가진 케냐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마흔일곱 살의 젊은이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눈물을 흘리고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부시 대통령은 세계 곳곳을 전쟁의 불바다로 만들고 금융 공황을 일으켜 세계경제를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독선적이고 무서운 권력의 인격적 화신이었다.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오직 미래와 희망과 기회에 대해 말한 오바마의 당선 연설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2009년에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뽑은 바로 그 국민이. 4년 전과 8년 전 거듭해서 부시 정권을 세웠다는 사실을. 미국 국민들이 부시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그가 실제로 저질렀던 그 많은 끔찍한 일들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간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대중은 현명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권력은 아름답고 고귀한 것일 수도 있지만 무섭고 추악할 수도 있다. 국민과 권력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존재한다. 때로는 함께 타락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함께 성숙하기도 한다. 권력과 대중은 불화를 일으키고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성찰이 아닌가 싶다. 유권자 개인도. 집단으로서의 국민도 대통령도. 대통령과 권력을 공유하는 정치인들도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과 선택을 성찰해야 한다. 냉정한 자기성찰이 없으면 대중은 타락하고 권력은 추악해진다.

 

대중의 선택을 무조건 찬미하는 지식인과 언론인. 정치인들을 경계하자. 현대는 권력자의 시대가 아니라 대중의 시대이다. 권력을 비판하는 지식인은 많지만 대중을 비판하는 지식인은 드물다. 국민이 왕인 시대이기 때문이다. 리영희 선생과 강준만 교수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왕권 국가 시대에 왕에게 아첨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언관 들이 있었던 것처럼. 대중인 왕인 시대에는 대중에게 아첨하는 데 뛰어난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도처에 출몰한다. 그들은 국민의 냉정한 자기성찰을 방해한다. 현명한 국민들만이 아첨과 직언을 구별하고 직언하는 자에게 보상할 줄 안다. 결국 권력의 도덕과 능력은 장기적으로 대중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출처 : 함백산 자락에 사는 산장지기의 하루  |  글쓴이 : 평화세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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