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를 핍박한
대표적인 로마 황제 10명
<로마 교회 박해사 간단 정리>
시저(케사르)가 죽은 후..
옥타비아누스가 시저의 이름을 이어 받으며,
로마는 공화정 시대가 끝이 나고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이 되었다.
로마제국은 알렉산더가 그랬던 것처럼..
피정복민의 종교나 문화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펼쳤지만,
유독 기독교만은 예외였는데,
이 정책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 꽤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로마의 기본 정책은 '종교 혼합정책'이었다.
따라서 로마의 입장에서 볼 때,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고
유일한 하나님만을 섬기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은
문젯거리를 넘어
제거 해야할 대상까지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로마는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법까지 만들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로마황제마저 인정하지 않는
반역자인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초대교회를 잔인하게 박해한
대표적 로마황제는 다음과 같다.
◆네로 황제(54~68년)
폭군으로 알려진 네로 황제.
기독교인들을 학살하고 로마를 불태우고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등..
네로 황제부터
로마의 기독교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때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하였다.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년)
살아있는 자신을 신격화하는데
상당히 공을 들였던 도미티아누스 황제.
그래서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 일으키자
반유대교정책을 비롯하여
공포정치로 일관하였다.
이때 기독교인들은 카타콤
(좁은 통로로 이어진 지하 묘지)로 피신하였다.
◆트라야누스 황제(98~117년)
트라야누스 황제는
이른바 '5현제'라 불리는 황제 중의 하나이다.
'팍스 로마나'를 이끌며 5현제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황제라 꼽히지만,
그의 업적 중에 하나가 기독교인 소탕이다.
이때 가장 많은 기독교인들이
사자밥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구전에 의하면 예수님이 무릎에 앉히고
축복하셨던 아이라고 하는
이그나티우스와, 클레멘트가 이때 순교하였다.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년)
하드리아누스 황제 역시 5현제 중에 하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직접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대신
총독들을 통해 박해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때 처음으로 기독교가 위험한 종교가 아니라는
콰드라투스의 기독교 변증이 시작되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161~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5현제 중의 마지막 황제이다.
기독교인들을 더 혹독하게 다뤄야한다고 여기고
많은 기독교인을 죽이고
시체도 치우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 유명한 변증가였던 저스틴 역시
기독교가 위험한 종교가 아니라고 변증했으나
순교하였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193~211년)
열등감이 많았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종교를 통일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특히 기독교인들과 유대교인들을
극심히 탄압하며 어린아이들을 개의 밥으로 주고
성도들의 무덤까지 파헤쳤다고 한다.
이때 이레니우스가 순교하였다.
◆막시미누스 황제(235~238년)
군인들이 황제가 되던 시대
'군인 황제 시대'의 막시미누스 황제.
이때 로마는 군인들의 구테타의 연속으로
약 50년동안 26명의 군인이 황제가 되었던 시대이다.
그래도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는 계속 되었다.
이때 폰티아누스가 순교하였다.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데키우스 황제역시
'군인황제 시대'의 로마황제였다.
계속되는 기독교 박해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칼 앞에서 배교를 했다가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런 배교자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노바티아누스를 추종하는 분파가 이때 형성되었다.
◆발레리아누스 황제(253~260년)
발레리아누스 황제 역시
'군인 황제 시대'의 황제였다.
기독교인들의 재산을 몰수하였고,
공민권을 박탈하였으며
이때 오리게네스가 순교하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며
군인 황제 시대가 끝이 났지만,
대신에 로마가 넷으로 나눠지는 등
로마에 또 다른 혼란을 야기시킨 황제이다.
또한 이때는 마지막이자 가장 혹독하고 잔인하게
기독교 박해가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대박해때
순수하게 신앙을 지킨 이들만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도나투스 분파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