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 대 대통령 : 제임스 먼로
미국 제5 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제임스 먼로는
독립혁명 마지막 세대 대통령이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에 유럽 열강의 간섭을 거부한
'먼로 선언'으로 유명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그는 제3 대 대통령 제퍼슨이나
제4 대 대통령 매디슨과 같은 철학자나 사상가는
아니었지만 같은 버지니아주 출신이었다.
(제2 대 대통령 존 애덤스를 제외한
미국 대통령 제1 대부터 5대까지
전부 버지니아 출신임.)
제임스 먼로 역시 버지니아주의
부유한 플랜테이션 농장주 아들로 태어났고,
윌리엄앤드메리대학에서 법률학을 공부한 후,
17세때 독립전쟁에
워싱턴 장군 휘하에서 참전하였다.
먼로는 트랜턴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음에도
그 후로 2년동안 계속해서 전투에 참여했고
결국 전쟁영웅이 되어 돌아왔다.
그 후 버지니아 주의원에 당선되어
정치활동을 시작한다.
1794년 프랑스 대사 시절,
지나친 친프랑스파로 낙인찍혀 본국으로
소환명령을 받고 워싱턴 정부에서 소외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버지니아로 돌아가 주지사에 당선된다.
그 후 제퍼슨 대통령 시절
로버트 리빙스턴과 함께 루이지애나를 매입하기 위해
나폴레옹과 협상을 벌이고
이에 성공한 먼로는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 매입을 하기 위해
마드리드로 파견되기도 한다.(실패함)
그러나 제퍼슨 대통령은 계속해서 먼로를 신임했다.
1808년 대통령 선거 후보 지명전에서
제임스 먼로는 제임스 매디슨과 대립하기도 하는데
이 때 두 사람의 관계가 몹시 냉랭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제퍼슨은 이 둘을 중재하며
서로 협력하게 만드는데,
제4 대 대통령이 된 제임스 매디슨은
먼로를 국무장관에 임명한다.
그리고 1812년 영국과의 전쟁이 시작되자
국방장관직을 겸임한다.
법률가, 군인, 주지사, 상원의원, 외교관, 협상자, 장관 등
먼로의 화려한 경력은
1816년 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게 하고
연방주의자당 후보 루퍼스 킹을 누르고
미국 제5 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가 당선될 당시 미국은 영국을 무찔렀다는 자부심과
민족주의가 최고조였다.
이 흐름 속에서 무난하게 재선에도 성공한다.
※먼로주의(먼로선언)
1823년 먼로가 재임 7년째 되던 해에
의회 신년메시지로 먼로주의를 선언한다.
(먼로 주의, 먼로 선언, 먼로 독트린 전부 같은 말임.)
그 당시 에스파냐의 지배하에 있던
남아메리카 대륙에 독립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에스파냐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이러한 사태는 바로 붙어있는 미국에게는
아주 위협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독립전쟁으로 영국을 물리쳤다고는 하나
영국 역시 세계 최강의 제국으로
영국에게 있어서 이런 사태는
오히려 에스파냐를 몰아낼 기회가 되기도 하였던 것.
실제로 영국은 미국을 충동질하여
에스파냐를 상대로 싸우게 만들려는 시도를 하지만
노련하고 숙련된 먼로에게 이는 통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유럽의 어떠한 나라도
아메리카에서 새로운 식민지를 가져서는 안되며
아메리카문제에 간섭해서도 안된다.
만약, 이를 어기는 유럽의 국가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라도
미국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할 것이다."
먼로선언은 유럽 세력을 축출하고
미국이 주도권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먼로주의는 고립주의라고도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렇듯 그 뿌리는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정책에서 나왔다.
아직은 신생국가였던 미국이
자국을 지켜내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였으며
유럽 여러 나라의 분쟁에 휘말려들지 않고
평화를 향유하겠다는 미국인의 열망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였다.
1825년 임기를 마친 먼로는
뉴욕에 있는 그의 딸 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72세의 나이로 미국독립기념일에 세상을 떠났다.
여담으로 백악관을 떠나며
먼로가 갖고 나온 것이 있는 데
그것은 7만 5천달러의 빚이라고 한다.
매년 2만 5천 달러의 연금을 받았음에도
빚더미에 앉게 된 것은 참 의아한 일이다.
James Monroe
1758.4.28~1831.7.4
출생지 : 버지니아주 웨스트모어랜드카운티
부인 : 엘리자베스 코트라이트 먼로
자녀 : 멜리자, 아들(이름 미상), 마리아
부통령 : 다니엘 D. 톰프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