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는 직업의 부침과 상관없이 인류역사와 함께 생존한 끈질긴 직업을 하나 고르라면 바로 이발사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그 오랜 기간을 생존해 온 이발소도 우리 사회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가 과거 40여 년간 늘어나면서 이발 수요도 증가했지만 미용실이라는 대체 서비스업이 남성이발 시장을 잠식하면서 이발소 이용이 급감했고, 또한 대체 일자리가 창출돼 이발소 산업은 쇠퇴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이러한 어려운 여건에도 일부 이발사는 자원봉사에 나서 경직된 우리사회에 흐뭇한 사랑이 이어지고 있다.

 

기자가 찾은 사랑과 행복을 싣고 찾아가는 가위손이라며 거동이 어려운 소외층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에게 이발을 봉사하는 이주연 이발사를 만났다.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 653번지에서 이발관을 운영하는 이주연 이발사는 47년동안 마을 주민들의 머리를 손질하며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이 전화가 오면 영업을 중단하고 바로 달려가 머리카락을 짜르고 깨끗하게 머리 감기와 화장까지 마쳐 마을마다 사회봉사 일꾼으로 소문이 났다.

 

이주연 이발사는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사경에 헤매다 오랜 투병을 이겨내고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에 마비 현상으로 상위용사처럼 절뚝거리며 이발을 하고 있으나 장애인으로 등록에서 제외되고 있다.한때는 이발소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붐벼 전담 이발사를 고용할 정도로 바쁘게 손놀림을 했지만 지금은 미용실로 잠식되어 불편한 몸으로 혼자 주민들의 머리손질과 염색 등 화장까지 도맡고 있으며 소외층 노인네들에게 찾아가는 가위손으로 이,미용 사회봉사 일꾼으로 묵묵하게 봉사를 하고 있다.

 

이주연 이발사는 어려운 이웃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면서 보람을 느꼈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 봉사하려고 마음먹은 이상, 활동영역을 남양읍과 리 일대로 확대했다.남양읍의 경우 이발서비스가 소외돼 화성시 이,미용사회봉사단으로 나서고 있는데 그동안 보살펴오던 노인 40여명이 하늘로 떠나 그를 반기던 얼굴들이 스치고 있는게 보람이라는 것,

 

또한 해마다 300여개의 마을 이발관들이 문을 닫고 있는 것은 주민들이 미용실를 찾고 있으며 청년들이 이발 직장 선택을 미용기술로 전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이주연 이발사는 고향인 전라도 화순에서 19살 때 이발사 기술을 배우면 평생직장이 보장된다는 권유에 따라, 맨 먼저 이발관에 지게로 물을 질러 나르고, 면도날을 세우는 등 전문머리 손질을 배워 이발사 자격증까지 받는 관문을 넘어섰다.

 

올해 67세인 이주연 이발사는 노인네들에게 머리손질 이용료 1만원을 받고 있으며, 앞으로 3년 후 이발사 50년이 되면 하루 동안 무료 이발봉사를 하고 평생 거동이 어려운 노인네들의 이발봉사자로 보람된 생활을 하겠다며 희망을 전했다.

 

한편 남양읍 노인들은 화성시는 남 모르게 이발 자원봉사를 하는 봉사단에게 장거리를 이용 할 수 있도록 유류지원이 되지 않아 아쉽다며 선처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