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력, 묘산의 워낭 오리지날 촌놈!
개인적으로 시골 생활은 지리멸렬할 정도로 징그러웠다. 늦가을, 겨울은 땔 깜을 위해 토, 일요일은 부친을 따라 강제적으로 민둥산(마령재)을 누비다가 푸른 솔가지를 위장해 급조한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했고, 또 다른 일철에는 새벽5시 되면 관기 예배당 종소리에 어김없이 잠깨시는 아버지는 퇴비(소똥)를 지게에 담아 약 700m 떨어진 가파른 논(안비실)에 쏟아 놓고 학교에 가게 했으니...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학교에 도착하면 항상 운동장에 애들이 안보였고...장남하나 유학(합천중) 보냈으면 됐지, 이 형편에 무슨... 차남은 당연히 중학교 끝내고 농사지어야지! 중3때 까지 퇴비, 인분을 메면서 농사일을 돌본 동기들도 꽤 있을 테지(팔심리,사리,광산,공중굴,거산,반포 등등)...주막, 장터 등의 강남시내에 살던 친구들을 제외하곤... 시기를 조금 놓친 후 꿈에 그리던 도시생활로 튀쳐 나온 지 어언 30년을 훌쩍 넘겼으니, 그래도 대자연을 보면서 자란 우린지라 감성이 풍부하고 우주를 꿈꾸었잖아. 도시인들이 해본 생활을 다 섭렵(?) 해보았지만...마지막 까지는 싫어! 우주를 꿈꾸다 자연으로 돌아 갈 거야. 산수가 뛰어난 묘산에 태어난 것이 고마워. 워낭의 소리는 애초에 우리가 주인공이었어. 그렇지! 저기에 졸고 있는 할아버자가 바로 나고, 우리들이야!
간만에 옛날 생각에 기분이 묘 해지구만, 어디 막걸리 한잔이라도... - 중산 -
☞ 이 글은 ‘09년 3월 묘산초등학교 동창생들에게 보낸 카페 글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