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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제17장 강해: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본장에서부터 19장까지는 앞의 제16장에서 발생한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과 백성들의 원망 사건에 대한 후속 조치와 관련 규례를 보완하고 있습니다. 이제 가나안 재정복을 시도할 중대한 시기에 모세와 아론의 영도권과 대제사장직에 도전하여 일어난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은 하나님의 즉각적인 개입과 엄정한 심판으로 일단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하나님과 백성, 백성과 백성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의미에서 출애굽 제2세대를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가 속한 레위 지파를 이스라엘 종교 제도의 책임자로 세우셨음을 결정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종교 지도권에 대한 분쟁을 없게 하시려고 이스라엘 12지파 대표 족장들에게 하나씩 지팡이를 취하여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증거궤 앞에 가져 올 것을 명하셨습니다. 다음 날 보니 오직 아론의 지팡이에서만 재생하여 싹이 나고 열매가 맺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론 가문을 택하셨음을 확실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1-1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의 제사장직에 대하여 다시 도전이 없도록 아론의 지팡이에서만 싹이 나는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1,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 중에서 각 종족을 따라 지팡이 하나씩 취하되~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과 백성들의 원망 사건을 마무리 한 직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모든 종족 중에서 대표되는 족장으로 하여금 지팡이를 한 개씩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팡이에는 이름을 쓰도록 했습니다. “이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물과 생물에 있어서 그 존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의 이름은 그 인물의 실체와 총체적 인격을 나타낸다고 하겠습니다. 지팡이에 족장의 이름을 쓰게 한 것은 비록 상징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전체가 자신에게 드려져야 한다는 의미로 그 같은 지시를 내리셨습니다.(참고: 민 32:12; 삼상 25:25; 마 1:21) 증거궤 앞에 놓을 지팡이는 모두 12개였습니다. 레위 지파를 포함시키게 되면 13지파가 되지만,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요셉지파 1지파로 계산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3: 레위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라. 이는 그들의 종족의 각 두령이 지팡이 하나씩 있어야~

레위 지파는 사실상 지파 계수에서 항상 제외되어 특별한 집단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족장을 따로 세워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대제사장이 레위 지파의 족장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모든 레위 족속이 하나님께 구별이 되어서 성막에서 봉사하기 때문에 대제사장의 지시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새긴 것입니다.

 

4: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이 증거궤 앞에 두라.

증거궤는 모세의 십계명이 기록된 두 개의 돌 판을 넣은 궤이며, 법궤, 하나님의 궤, 언약궤 등으로 불립니다. 이 증거궤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거룩한 계약의 표시였으며(출 19:5; 렘 31:33),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의 상징입니다(출 25:22; 계 11:19). 따라서 지팡이를 그 앞에 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족장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를 기억하게 함이며(겔 16:62; 말 2:5), 또한 하나님의 권능에 복종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신 27:10; 히 12:9).

 

5: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를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여기에서 택한 자는 대제사장의 직분 즉 모든 제사와 성막을 총괄하는 대표자를 말합니다. 생명이 없는 지팡이에서 새 순이 돋으리라는 사실은 새 생명의 태동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아론이 하나님께서 주신 새 능력에 힘입어 중보의 사역을 보다 더 잘 감당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싹이 난 지팡이에 쓰여 있는 이름이 하나님께서 택한 자이기 때문에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경고도 들어 있습니다.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이 말씀은 더 이상 제사장직에 대한 도전을 묵과하지 않으신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 대한 반역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을 엄중히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고라 일당에 조금이라도 가담했거나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였던 자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6: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매 그 족장들이 각기 종족대로 지팡이 하나씩 그에게 주었으니~

12 지팡이는 총12지파로 계수된 이스라엘 전 백성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에는 레위 지파도 다른 지파와 동일한 지파로서 하나님 앞에 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를 이 12지파 중에서 친히 뽑으셨다는 것을 확증하시는 것이며, 레위 지파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특별히 뽑힌 지파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 외의 모든 일에서는 11지파가 되므로, 숫자를 채워서 12지파를 만들되, 요셉의 공로에 따라 그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각기 한 지파로 계수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7: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여호와 앞은 바로 증거궤 앞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증거궤를 대할 때에 여호와를 대한 것처럼 경외심을 가졌습니다. ‘증거의 장막’은 증거궤를 모신 회막을 가리키며, 여호와의 현존(現存)을 증거하는 장소임을 강조한 표현입니다(출 25:22; 38:21).

 

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지팡이를 넣고 바로 다음 날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지팡이에 싹이 나는 것이 자연발생적인 현상이 아니며, 하나님의 이적임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함입니다. 24시간도 채 경과하기 전에 아론의 지팡이에서는 움이 돋고, 순이 나며,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까지 열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임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그리고 증거궤 앞에 둔 지팡이의 재질이 살구나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살구나무’(솨케드)는 ‘깨우다’(솨카드)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합니다. 즉 죽음에서 깨우는 ‘부활’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추된 대제사장의 위신이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으로 회복될 뿐 아니라 더욱 강화되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9: 모세가 그 지팡이 전부를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취하여 내매 그들이 보고~

모세는 모든 지팡이를 꺼내었습니다. 이름이 써진 족장들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12개의 지팡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다 보았습니다. 그들이 변명하거나 항변할 조금의 빈틈도 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의 눈으로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서 살구열매가 맺힌 것을 보았고, 아론의 대제사장직을 인정하였으며, 자신들의 죄와 허물을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10: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아론의 지팡이를 다시 증거궤 앞에 가져다 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제사장직은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것으로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며, 또한 아론의 후손들만이 승계토록 한다는 것을 못 박은 것입니다. 또한 대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친히 뽑은 자이므로 모든 사람이 순복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후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념물이 되도록 두 개의 돌판 그리고 만나가 들어있는 금항아리와 함께 증거궤 안에 보관되었습니다(히 9:4). 그렇지만 증거궤 앞에 있는 동안 계속해서 열매가 맺혀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의 반역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기적을 베푸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패역한 자에게 표징’이 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패역한 자는 어둠의 자식들, 악의 자식들, 반역의 자식들을 의미합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시키려는 모든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에게 표징이 되는 것은 죄악을 깨닫게 하여 저들이 죄악에서 돌이켜 떠나 참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이라고 하겠습니다.

 

11: 모세가 곧 그같이 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

모세는 모든 일에 이처럼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하나님! 이미 저들이 살구열매가 맺힌 것을 보았는데, 증거궤 안에 보관할 필요까지 있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어떠한 일이든지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12, 13절은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는 것을 본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표징을 보이시기 전에 이미 반역자들은 징계를 받았고, 그들은 친히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 표징을 봄으로써 다시 징계를 받아 죽지 않을까 하고 겁을 내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절대로 회개는 아닙니다. 두려움은 또 다시 원망과 불평으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12: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말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보십시오. 이처럼 백성들이 또 모세에게 원망을 말을 하지 않습니까? 염병의 무서운 경험을 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또 다른 기적을 목격하고서야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고, 또한 모세와 아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또 다시 징계를 받아 죽으면 어떻게 될까 심히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단순히 죽을까 망할까 하는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 두려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뀌어야 하고, 그 마음이 바뀜으로 인하여 믿음으로 승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3: 가까이 나아가는 자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

아론과 아론의 후손들, 즉 대제사장 외에는 회막에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대할 때에 죽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규례를 다시 기억해 낸 것입니다. 또한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을 자인하며 한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죄 때문에 인간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죄 가운데서라도 인간을 구원하시겠다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깨달음이 없었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고, 망할 것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회개하는 심령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에 호소하여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