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대] 박근혜표 '부자증세'…고소득자 비과세·감면 대폭 축소
[한국경제신문] 2012년 12월 23일(일) 오후 09:06

 

새누리, 소득공제 제한·금융소득종합과세 확대
억대 연봉자 15만명 세금 5000억~7000억 증가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는 2배 늘어나 '10만명'


지난 22일 오전,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국회 조세소위에 계류 중인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문제였다. 당초 정부안은 최고 세율(38%) 구간을 현행 ‘소득 3억원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었고 민주통합당은 이 구간을 ‘소득 1억5000만원 이상’으로 낮추자는 것이었다.

박 장관은 나 의원에게 “현행 최고 세율구간을 유지하되 고소득자에 대한 비과세·감면 총액 한도를 설정하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세율을 올리는 것 못지않게 세수증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아직 이 문제에 대해 공식 입장을 결정하지 않고 있던 나 의원은 박 장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연봉 1억원 이상 15만명 대상

대통령 선거 직후에 벌어지고 있는 당·정 간의 이 같은 논의는 향후 ‘박근혜식 부자증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을 올리지 않는 대신 비과세 등의 혜택을 대폭 줄임으로써 실질적 세부담을 늘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세법개정안에 소득세율 과표 구간 조정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세율을 올리거나 구간 조정을 할 경우 조세 저항 등으로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대한 복지 재정 부담 때문에 세수 증대 방안이 필요하다는 정치권의 주장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비과세·감면 축소’는 새누리당과 정부의 입장을 절반씩 반영한 절충 카드로 해석된다.

박근혜 당선인의 경우 명시적인 부자 증세를 공약에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세율을 올리지 않고 세수를 늘리려면 비과세·감면 축소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지나치게 복잡한 각종 감면과 비과세 조항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 제도는 소득이 올라갈수록 공제금액도 따라 늘어나는 구조다. 신용카드 사용액, 보험료, 기부금, 의료비, 교육비 등에 따라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데 소득이 많을수록 공제 금액도 늘어난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 공제 금액을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연 2000만원 또는 3000만원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다만 여기엔 근로소득공제, 인적 공제, 장애인 의료비 공제 등은 제외된다.

비과세·감면 총액을 연 3000만원으로 제한할 경우 적용 대상자는 전체 근로소득자(1500만명)의 1% 수준인 15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모두 1억원 이상 고액연봉자들이다. 재정부는 이로 인해 늘어나는 세금이 연간 5000억~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조세 감면 상한제가 도입되면 2013년 신고 귀속분(2014년 초에 받는 연말정산 환급금)부터 적용된다.

○고소득 개인사업자도 ‘증세’

새누리당은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최저한세율 적용도 이번 세법개정안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다만 새누리당은 정부가 제안했던 것보다 최저한세율을 더 높여 세수 증대 효과를 강화하기로 했다.

타깃은 의사 변호사 학원장 등 고소득 개인사업자들. 현재 개인사업자의 최저한세율은 산출세액의 35%다. 예를 들어 연 수입이 1억원인 개인사업자는 소득세율에 따라 약 2000만원의 세금(산출세액 기준)을 내야 하지만 각종 세액공제를 적용, 실제로는 최소한의 세금인 700만원만 내면 된다. 개인사업자들도 법인처럼 시설투자, 지방이전, 고용 등에 따른 세금 감면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누리당이 이 비율을 50%로 올릴 경우 연수입 1억원인 개인사업자가 반드시 납부해야 할 세금은 1000만원으로 올라간다.

여야는 또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금액을 4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낮춰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재정부는 기준 조정에 따라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는 4만9000여명에서 10만여명으로 늘어나고 세수도 12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의 이번 합의가 국회를 그대로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이 여전히 소득세율 최고구간 하향 조정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끝까지 반대할 경우 국회 본회의에서 표대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계산대로 증세 효과를 거둘지 여부도 미지수다. 한 세제 전문가는 “사실상 부자들을 대상으로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것으로 내용상 부자증세나 마찬가지”라며 “현금 거래가 많은 개인사업자들의 탈세와 고소득자의 조세저항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임원기/이태훈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