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대송면 남성리 영일정씨 시조를 모시는 남성재>
연일(延日)은 경상북도 동해안에 위치한 영일(迎日)의 옛 지명으로, 신라때는 근오지현이라 불렀고 경덕왕때 임정현으로 고쳐 의창군의 영현으로 만들었고, 고려조에 연일(延日)로 고쳐서 현종때 경주에 속하게 하였다. 1895년 연일군(延日郡)이 되었고 1914년 이웃 흥해군, 청하군, 장기군의 3군을 합하여 영일군(迎日郡)으로 개칭되었다. 1955년 포항이 시로 승격한 뒤 군에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지명이 오천(烏川)→ 연일(延日)→ 영일(迎日)로 바뀌었으므로 迎日정씨 또는 烏川정씨라고도 한다.
2000년 통계청의 본관별 통계에 의하면 연일(延日)정씨 216,510명, 영일(迎日)정씨 100,263명, 오천(烏川)정씨 30,650명으로 모두 347,423명으로 나타나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新羅)의 전신(前身)인 사로(斯盧)의 육부촌(六部村)장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천강인으로서 서기32년(신라 유리왕 9) 봄 유리왕(儒理王)으로부터 이, 최, 손 ,정, 배, 설 (李, 崔, 孫, 鄭, 裵, 薛)로 성을 받았는데 그중 연일정씨(延日鄭氏)는 취산진지촌장 지백호(智伯虎)가 사성(賜姓)받을 때 본피부(本彼部)로 개칭되면서 정씨(鄭氏)의 성(姓)을 하사(下賜) 받은 것이 시초가 되며,
그의 원손(遠孫) 종은(宗殷)이 신라조(新羅朝)에서 간관(諫官)으로 직언(直言)을 하다가 인동(仁同) 약목현(若木縣)에 유배된 후 후손 의경(宜卿)이 연일(延日)로 이거(移居)하여 호장(戶長)을 지내고 연일현백(延日縣伯)에 봉해졌으므로 연일정씨(延日鄭氏)로 시적(始籍)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의 계대(系代)가 실전(失傳)되고 소목(昭穆)을 고증할 문헌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현재는 고려(高麗) 예종(睿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인종조(仁宗朝)에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로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지낸 정습명(鄭襲明)을 시조(始祖)로 받드는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와 감무(監務)를 역임한 정극유(鄭克儒)를 시조로 받드는 감무공파(監務公派), 고려 현종 때 동비원부사를 지낸 정자피(鄭子皮)를 1세조로 하는 양숙공파(良肅公派)로 갈라져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지주사공파는 "신유보"서에 의하면 시조 정습명의 때부터 경북 영일에 세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