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여러분은 ‘돼지’ 하면 뭐가 먼저 생각나시나요?
저는 일단 친근합니다. 그냥 저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러네요. 제가 어릴 적부터 좀 복스럽게 생겼다는 얘길 많이 들었거든요. 아니, 그렇다고 절대 제가 뚱뚱하다는 건 아닙니다. 그저 조금 통통한 것뿐이죠. 훌쩍.
‘뚱뚱하다’는 이미지에는 절로 따라오는 정의들이 있습니다. 돼지는 몸이 피둥피둥해질 때까지 움직이지도 않고, 빈둥대는 ‘둔하고, 게으른 동물’이라는 것. 그리고 그 덕분에 또 추가되는 이미지 하나, 바로 ‘지저분하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돼지가 늘 우리 곁에 가까이 이유는 단 하납니다. 돼지는 ‘맛있으니까’요.
말을 건네는 돼지마을 촌장님의 표정엔 안타까움이 가득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분, 돼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돼지를 모으러 다니는 분이시거든요. 전국을 넘어 해외로 다양하고, 개성 강한 돼지 물품들을 소집하고 다니다 손수 박물관까지 차린 돼지마을의 촌장님, 이종영 씹니다.
양돈유전자센터에 다니던 시절, 외국출장을 다닐 일이 많았다는 이종영 관장. 그런데 외국을 다니다보니 뭔가 조금 다릅니다. 외국에서는 돼지를 키우는 사람들이 돼지 문화 자체를 즐기고 있었던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돈벌이 수단으로만 돼지를 키우는데 말이에요. 번뜩! 이종영 관장은 돼지가 새로운 문화의 주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돼지 문화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렇게 탄생한 곳, 경기도 이천의 돼지박물관입니다.
“얼마 전에 프랑스에 갔다가 돼지 모양 구두솔을 못 사고 온 게 자꾸만 마음에 걸려요. 올라가는 길에 보고 내려오면서 사야지 했는데 다른 길로 가는 바람에... 아~ 올라가면서 샀어야 했는데... 아~”
난데 없이 돼지를 찾아 세계를 도는 이관장의 일을 가족들은 반대하지 않았을까. 물론 엄청 반대했습니다. 달래도 보고, 협박도 해보고, 어떻게든 마음을 돌리려 애썼지만 돼지를 향한 이종영 관장의 들끓는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죠. 대신에 이종영 관장은 가족들에게 무언가 모으는 즐거움을 가르쳐주었다는데요. 덕분에 부인은 동물접시를, 아들과 딸은 온갖 부엉이와 개구리를 수집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생각지 못한 곳에서 좋은 수집품을 발견할 때의 그 기쁨을 알게 되면서 가족들도 이종영 관장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구요.
자, 그럼 이제 박물관을 한번 구경해볼까요?
오. 여기를 봐도 돼지, 저기를 봐도 돼지입니다. 어디선가 꿀, 꿀, 꿀, 꿀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네요. 중국 돼지, 일본 돼지, 덴마크 돼지, 국적도 다양합니다. 나라마다 특색 있는 모습들이지만 어느 나라 돼지든 D라인을 넘어 O라인을 자랑하는 둥글둥글 푸짐한 몸매에 짤막한 다리, 부담 없는 그 모습에 정겨움이 느껴지는데요.
무엇보다도 돼지들마다 똑같은 것이 있습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는 건데요. 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입에 만 원짜리 몇 장 입에 물려줘야 할 것 같은 마음도 마구 솟구치네요. 그러고 보니 고사상 위의 돼지를 많이 봐서 그럴까요. 기억 속의 돼지는 늘 저렇게 웃는 얼굴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돼지를 우리는 왜 더럽고, 게으른 동물이라고만 오해하고 있었던 걸까요.
복스러운 모습에, 활짝 웃는 얼굴을 한 돼지들이 나를 보며 웃습니다. 꿀, 꿀, 꿀, 꿀 소리가 언젠가부터 복, 복, 복, 복 소리로 바뀌어 들려오네요. 설날에 받은 세뱃돈 봉투처럼 든든하고, 은근한 기쁨이 차오릅니다. 복에 겨워 있는 저에게 관장님도 한 말씀 하시더군요.
“오늘 돼지 많이 보셨으니 집에 가면 꼭 복권 한 장 사세요.”
오호라, 돼지의 기운이 빌려 로또 한 장 사봐야겠군요. 연말에 돼지들을 잔뜩 봤으니 2012년에는 운수 대통하고 부~자되려나?
돼지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별로 없어 어렵게 찾아내 그림을 몽땅 사면서 친해졌던 작가가 지금은 매우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돼지가 그런 생각지 못한 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는 이종영 관장. 하지만 그 작가는 처음으로 그 그림들의 가치를 알아주었던 이관장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하더군요. 소중한 인연도 돼지가 가져다 준 선물인 셈이네요.
그뿐만이 아니라 방역에 대한 교육도 확실하게 해줍니다. 집에 가면 손을 씻듯 농장에서도 소독을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그러한 규칙들만 잘 지켜준다면 돼지는 결코 지저분하고 위험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죠.
이종영 관장은 돼지가 상징하는 ‘더럽다, 둔하다’와 같은 이미지를 바꿔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분뇨 처리가 어렵고, 냄새 난다고 해서 혐오 산업으로 치부되지만 단백질을 공급하는 에너지원인 돼지를 키우고, 또 돼지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정성으로 돌보아야 하는 양돈산업은 사실 생명산업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는 것이죠. 박물관의 옆에 마련된 ‘치유정원’도 그런 이관장의 마음이 담긴 공간입니다. 돼지와 함께, 또 자연과 더불어 한층 더 성장하는 그런 곳으로 돼지박물관을 운영하는 것이 이종영 관장의 현재진행형인 꿈입니다.
돼지를 직접 볼 수 있냐는 부탁을 드렸더니, 오잉? 저를 집으로 안내하는 관장 내외. 엄마를 잃고 젖을 뗀 스무 마리 남짓 되는 미니돼지들을 집 안 방에서 돌보고 있었는데요. 침대 위 이불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돼지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저를 바라봅니다. 코를 킁킁대며 눈을 맞추는 아기 돼지들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네요.
앗, 그런데 이때!! 박스에 살고 있는 아주 작은 돼지들이 박스를 훌쩍 뛰어 넘더니 자신의 화장실을 찾아가 볼일을 봅니다. ‘돼지가 대소변을 가리다니!’ 문화 충격에 빠져있는 저에게 “그럼요, 돼지가 얼마나 똑똑한 동물인데요.”라며 자랑이 끊이지 않는 모습이 영락없이 돼지엄마 그대로네요. 돼지를 향한 애정은 마지막 질문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관장님께 돼지란?”이라고 묻자 이종영 관장은 망설임 없이 대답하더군요.
“나에게 돼지란, 인생의 동반자죠. 죽을 때까지 평생을 함께할 가족이요.”
지난 11월 14일 개관한 돼지박물관에 약 1,400여 명의 관람객이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앞으로도 미니돼지쇼를 비롯해 돼지저금통 기획 전시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준비 중에 있다고 하는데요. 다양한 복돼지들도 만나고, 살아있는 돼지와 함께 다양한 체험도 즐기고, 다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바비큐도 먹을 수 있다고 하니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