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은 MBC에서 1999년 11월 22일부터 2000년 6월 27일까지 방영된 MBC 창사기념 특별기획 드라마로, 조선시대 최고의 명의 허준의 삶을 그린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을 원작으로 한 퓨전 사극입니다. 허준은 대한민국 역대 사극 중 최고 시청률 64.8%로 부동의 1위를 현재까지 지키고 있는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허준을 다룬 드라마는 지금까지 총 네번 방영되었는데, 1976년에 ‘집념,’ 1991년에 ‘동의보감,’ 그리고 1999년에 이 ‘허준’이란 이름으로 방영되었고, 2013년에 ‘구암 허준’이란 제목의 드라마로 방영했습니다. 이 글은 1999년의 드라마 ‘허준’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광렬, 황수정, 김병세 그리고 이순재가 주연급으로 출연했으며. 역대 허준 드라마들 중 최고의 시청률로 국민 드라마의 반열에 오른 작품입니다. 1991년 작 "동의보감"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일부 인물의 성격과 구도가 새로이 각색되었으며, 내용상으로는 1991년 작보다 조금 더 나아가서 허준의 ‘동의보감’ 편찬 완료 이후 죽음까지 간략하게나마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원작자 이은성 선생이 당초 구상했으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집필하지 못한 결말 부분인, 선조의 후계 구도를 둘러싼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허준 말년의 파란만장한 역정은 이 작품에서도 그려지지 못했습니다.


캐스팅과 관련해 본래 전광렬 자리에는 김상중 등이 거론되었으나 영화 촬영 등의 이유로 고사하자 전광렬이 허준 역으로 간신히 낙점됐으며 황수정이 맡았던 예진 아씨 역은 김지수 송윤아 등에게 제의가 갔지만 역시 개인사정으로 거절하여 황수정이 천신만고 끝에 낙점되었고 홍충민이 분한 다희 역은 당초 홍리나가 낙점되었으나 KBS 1TV ‘누나의 거울’ 캐스팅으로 고사했었다는 후문입니다. 유의태 역의 이순재는 위의 세 작품과 영화판 "집념"에 모두 출연하였는데, 영화판 "집념"에서는 주인공인 허준 역으로, TV 드라마 세 작품에서는 모두 허준의 스승인 유의태 역으로 나왔습니다. 실로 유의태 전문 배우라 할 수 있습니다.


중견배우 임현식 이 맡은 '임오근'의 애드립과 폭소를 자아내는 연기도 인기에 한몫 하였던 것으로 평가됩니다. 대본에 없는 애드립을 작렬시키다가 연출가의 자제요청을 받다 못해 나중에는 애드립의 자문을 임현식에게 구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스페셜판에서는 NG모음에 아예 '임오근이 문제'라는 코너가 따로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오죽 인기가 많았으면 원작에선 중간에 사라지는 이 캐릭터가 허준과 함께 과거에 1차 급제해 약제 업무를 맡는데 이어 내의녀 홍춘과의 러브라인(!)까지 그려졌으며, 허준이 사망하는 엔딩에서까지 살아남게 됩니다. 명대사는 "줄을 서시오~"와 "홍춘이" 허준은 74세에 사망했으니 임오근은 작중에서 무려 94세라는게 함정! 그리고 소설과 1991년판에서 절대악 캐릭터였던 어의 양예수(조경환 분)가 허준을 갈구면서도 인정하고 결국에는 그를 도와주는 캐릭터로 변했습니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양예수가 허준에게 도움을 준 기록이 있어 이 부분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원작과 엄청 달라진 또 다른 인물이 유의태의 아들 유도지입니다. 원작에서는 인품도 능력도 모두 평범한 보잘 것 없는 인물로 처음엔 유의태의 친아들이란 이유로 그를 주목하던 양예수도 ‘호부견자’임을 알고 금방 관심을 거두게 됩니다. 그 대단하던 유의태가 자식농사는 실패했다며, 속을 끓일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고소해하는 장면이 있을 정도. 하지만 드라마에선 허준의 라이벌 및 메인 악역으로 격상되고 실력도 허준에게는 미치지 못할 뿐 상당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극 중반부까지 자신의 아래였던 허준을 하대하고, 허준이 출세해 신분 역전이 이루어지자 사사건건 허준을 시기하고 모함하며 계략을 꾸며 방영당시 거의 국민쌍놈 취급을 받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종영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허준에게 구명 받은 뒤 개과천선, 허준을 마음으로부터 어의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허준을 걱정하고 돕는 등 개과천선합니다. 하지만 종영이 2~3회분밖에 안남은 시점이라 국민쌍놈 타이틀을 벗기에는 너무 늦었다는게 역시 함정!


원작에서 유도지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젊은이였으나 스물 갓 넘은 나이로 취재에 도전했다가 처참하게 깨진 후로 좀 겸손해지나 역시 충청도 버드네 사람들을 외면하고, 아버지에게 질책을 당하자 허준에 대한 열폭으로 아버지에게 대들고는 분가해서 한양으로 떠납니다. 아버지가 대단한 의원이라는 말도 정신승리 정도로 생각했으나 어의 양예수가 자신을 미워하는 걸 보고 아버지가 명의라는 것을 인정은 했으되 자신의 장애물 정도로 보는 등 증오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사행길을 갔다 오고 인품이 변해서 스스로 뉘우치고 허준에게 협조적으로 변합니다. 하지만 허준이 끝나고 방영된 허준 스페셜에서는 여성 시청자들 사이에서 허준과 유도지 둘 중 누가 남편감으로 적합한가 설문조사를 했을 때 유도지가 압승했다는 후문... 아무리 악역이어도 출세가도를 달리고 잘사는 모습을 꼽았고 허준을 고르지 않은 이유로는 '답답하다'였다고 합니다.





이 드라마는 2000년대 이후 사극 붐을 일으킨 작품 중 하나인데 최고 시청률이 무려 64.8%로 이는 역대 드라마 중 3위(역대 1위는 '첫사랑' 65.8%, 2위는 '사랑이 뭐길래' 64.9%)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사극 중에서는 역대 1위입니다. 참고로 당시 경쟁드라마를 양민학살한 주인공(허준과 동시에 상영되었던 드라마 중 일부는 역대 최저 시청률 10위안에 들어갈 정도로 처참한 성적을 냈으며, 정확히 말해 10개 중에 4개가 동시에 나왔던 드라마이고 그것도 1위(바보같은 사랑 - 1.8%)라는 점. 그만큼 압도적인 인기를 가졌었음). 평균 50%를 넘는 시청률로 '나는 그녀가 좋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도둑의 딸', '바보같은 사랑' 등의 드라마의 시청률을 전부 애국가 시청률로 만들어버렸는데 KBS 2TV 월화 미니시리즈 '마법의 성'은 후속작이었던 '나는 그녀가 좋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가 그랬던 것처럼 남자 주인공 캐스팅 문제로 골머리를 썩인 것 뿐 아니라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와 마찬가지로 기획 의도의 변절 탓에 '허준' 탓인지 한 자릿수 시청률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당시 허준 신드롬으로 한의학 붐이 일기도 했으며, 또 난해하기 짝이 없는 ‘사암침법’을 복원한 것으로 유명한 금오(金烏) 김홍경에 의하면 이 드라마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한의사의 위상이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 전까지는 사이비 의학 취급을 받아 '어르신'들이 아니면 찾아보지도 않던 한의원이지만 허준 붐을 타고 대중들이 한의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허준 방영 당시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의사협회에서 응급실까지 폐쇄하는 고강도 파업에 의한 반사효과까지 겹쳐서 한의원의 인기가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고 그 세태가 신문 만평에도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반면 역사적 고증 오류도 적지 않은데 대표적으로 후궁 소생 왕자군이 친모를 '어마마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궁중 예법상 후궁 소생 왕자군도 어마마마는 중전뿐이고, 자기 친모도 공빈 마마, 인빈 마마 또는 어머니로 불러야 마땅합니다. 왕자군들의 친모라 하더라도 왕자군들에게 '아들'이라고 불러서도 안 되고, 반말을 할 수도 없으며, 존댓말을 써야합니다. 왕자군/옹주는 대군/공주와 마찬가지로 무품무자(無品無資)로 내명부의 품계를 받은 후궁보다 높습니다. 또한 종9품 참봉이 대전내관, 상궁과 맞먹는 것도 황당하고, 그 밖에 전라우수사 이순신도 나옵니다(이순신 장군은 전라 좌수사 이고 당시 전라우수사는 이억기 장군). 참고로 대전내관은 4품 이상이고 대략 각 전각(후궁들이나 왕자들의..)에 있는 내관들이 5~6품 정도이고 잡무를 보는 내관들도 모두 7품 이상입니다. 참봉(9품)이 맞먹을 수 있는 8~9품 이하는 드라마에 나오지 않습니다(상원, 빗자루 들고 청소하는 내관) 임금을 직접 만나는 상선은 종2품으로 참판 급이며 상온은 정3품 당상관 급입니다. 9품의 참봉이 궁궐내에서 맞먹을수 있는 사람은 앞서 말한 상원(내관 최하품계 9품)이나 말단 나인 그리고 의녀들뿐입니다.





덧붙여 여담입니다만 개인적으로 극중에서 거슬리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예법에 어긋난 어투입니다. 다음에 포스팅 할 ‘대장금’ 글에서도 언급할 부분인데, 즉 극 중 허준이 임금인 선조를 상대로 말을 할 때 ‘제 스승님(유의태)께서 이러저러 하셨습니다’라는 식으로 자주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스승을 지존의 자리에 있는 임금보다 윗자리에 놓는 말투로 제대로 예법에 맞추려면 ‘소신의 스승인 유의태가 이러저러 하였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이는 ‘허준’ 스토리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고수하는 말투인데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부분을 작가나 연출가가 신경을 쓰지 않은듯해 보입니다. 이는 드라마 ‘대장금’에서도 똑 같이 반복된 부분이기도 합니다. 장금이도 극 중 임금인 중종을 상대로 말할 때 자신의 스승인 한상궁을 임금보다 높여 말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릅니다(작가나 연출가가 군대가서 이등병 때 고참들에게 쥐어 터져가며 말투를 배웠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전광렬은 해당 드라마로 당해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는데, 당해 대상을 두고 경쟁한 상대는 드라마에서 함께 연기했던 황수정이었습니다. 황수정은 당연히 대상 다음인 최우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 드라마의 OST로 조수미가 부른 ‘불인별곡’이 유명합니다. 본디 이 드라마는 총 40부작으로 제작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청률이 높아지고 인기가 많아지자 연장방송을 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60여부 작으로 완성되게 됩니다. 계획에는 없는 임진왜란 피난장면과 전투장면이 연장방송으로 인해 생겨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