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의 작은 절 개심사(開心寺).

얼마전 여기를 다녀왔다.

절 이름대로 마음을 열려고...

입구에 쓰인 표지석 대로 마음을 씻고(洗心洞),

마음을 열고(開心寺) 가라는 말처름 한없는 여유를 전해주는 절이었다.

유홍준 교수의 해설이 아니더라도 나무 기둥 하나하나가 생긴 그대로다.

내 마음의 무명(無明)을 베어낼 칼을 찾는다는 심검당(尋劍堂) 기둥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을 비추어 보라는 경지(鏡池) 옆에 있는 백일홍이 그 아름다움을 한창 뽐내고 있었다.

 

 

백일홍

                 -장만호

 

개심사 배롱나무

뒤틀린 가지들

구절양장(九折羊腸)의 길을

허공에 내고 있다

 

하나의 행선지에 도달할 때까지

변심(變心)과

작심(作心) 사이에서

마음은 얼마나 무른가

무른 마음이 파고들기에

허공은 또 얼마나 단단한가

 

새가 앉았다

날아간 방향

나무를 문지르고 간 바람이,

붐비는 허공이

배롱나무의 행로를 고쳐놓을 때

마음은 무르고 물러서

 

그때마다 꽃은 핀다 문득문득

핀 꽃이 백일을 간다

 

 

빈집의 약속 / 문 태 준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별이 보고 싶은 날에는

개심사 심검당 볕 내리는 고운 마루가 들어와 살기도 하였다
어느 날에는 늦눈보라가 몰아쳐 마음이 서럽기도 하였다

겨울방이 방 한켠에 묵은 메주를 매달아 두듯

마음에 봄 가을 없이 풍경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하릴없이 전나무 숲이 들어와 머무르는 때가

나에게는 행복하였다
수십 년 혹은 백 년 전부터 살아온 나무들,

천둥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나무들
뭉긋이 앉은 그 나무들의 울울창창한 고요를

나는 미륵들의 미소라 불렀다
한 걸음의 말도 내놓지 않고 오롯하게 큰 침묵인 그 미륵들이

잔혹한 말들의 세월을 견디게 하였다

그러나 전나무 숲이 들어앉았다 나가면 그 뿐,

마음은 늘 빈 집이어서
마음 안의 그 둥그런 고요가 다른 것으로 메꾸어졌다
대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은 듯

마음이란 그냥 풍경을 들어앉히는 착한 사진사 같은 것
그것이 빈집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 개심사 심검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