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우리 몸은 정교하다. 다이어트를 하면 몸은 기아를 체험하는 것이다.
근육이 빠지고 긴장 상태에 돌입한다.
영양분을 흡수하려고 온 힘을 다한다. 우리 DNA가 그렇게 돼 있다. 그러니 살이 안 빠지는 거다.”
■ 지방이 비만의 주범이라는 오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은 잔 루이즈 칼망이라는 여성이다.
그는 1875년 2월 21일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인 아를에서 태어나 1997년 8월 4일 사망할 때까지 122년 하고도 6개월,
정확히는 4만4724일을 살았다(1999년판 기네스북에 등재). 85세에 펜싱을 시작하고, 100세가 넘도록 자전거를 탔던 할머니는
모든 음식에 올리브유를 발라서 먹고, 일주일에 초콜릿 1kg을 규칙적으로 먹었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끼리 가장 흔하게 하는 말이 있다.
“지방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뚱뚱해진다. 그래서 건강도 해친다.”
무심코 믿었던 이 말이 진실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세계 최장수인 칼망의 사례는 어떻게 설명할 텐가.
물론 한 사람의 사례를 일반화하려는 건 아니다. 아래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분명 지방은 억울하다고 할 수 있다.
지방은 비만의 결과이지 결코 비만의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누명을 벗지 못했던 지방의 ‘한’을 오늘 풀어주고자 한다.
지방과 설탕으로 만들어진 초콜릿은 한때 비만을 초래하는 ‘주범’으로 낙인찍힌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초콜릿이 오히려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초콜릿 다이어트’에 관한 책까지 나올 정도다. 특히 ‘다크’ 초콜릿의 효용성을 강조하는 사람이 많다.
다크 초콜릿은 설탕의 비율을 줄인 대신 카카오 분말을 조금 더 넣은, 즉 카카오지방의 비율을 많이 높인 것이다.
보통의 초콜릿보다 당연히 열량이 더 높다. 여기서 열량(지방)이 높을수록 다이어트에 좋다는 ‘역설적인’ 추론이 가능해진다.
미국 퍼듀대 연구팀이 지난해 국제학술잡지 ‘행동신경과학(Behavioral Neuro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는
“지방 대체제(열량과 콜레스테롤이 없는 합성 지방)가 살을 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오히려 살이 찌도록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 포함됐다.
미국의 경우 저칼로리 음식 및 음료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했는데도 비만인구는 매년 3%씩 늘어나고 있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2007년 “저지방 식품이 곧 저칼로리 식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저지방 식품을 먹은 실험대상자들은 식사량이 많아져 결국 평균 28%나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더라는 게 요지다.
텍사스대 의대의 헬렌 하즈다 박사는 474명을 다이어트 음료를 마신 그룹과 마시지 않은 그룹으로 나누어 허리둘레를
측정(평균 9.5년간 세 차례씩)했다. 그 결과 다이어트 음료를 마신 그룹의 허리둘레 증가비율이 훨씬 높았다.
일명 ‘황제 다이어트’라고 불리는 ‘앳킨스 다이어트’는 지방의 누명을 벗겨줄 핵심 증거 중 하나다.
로버트 앳킨스 박사는 1963년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되 지방과 단백질은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주창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예방의학연구소의 크리스토퍼 가드너 박사는 과체중 여성 311명(평균 40세)에게
그룹별로 네 가지 다이어트를 시도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탄수화물은 적게, 지방은 많이’ 먹는 앳킨스 다이어트가 가장 효과(평균 4.7kg 감량)가 컸다.
탄수화물을 많이, 지방을 적게 먹는 ‘런(Learn) 다이어트’는 2.59kg, 탄수화물-단백질-지방 비율을 4 대 3 대 3으로 섭취하는
‘존(Zone) 다이어트’는 1.61kg 감량에 그쳤다. 물론 앳킨스 다이어트의 효과도 6개월뿐이다. 2년이 지나면 대부분은 실패한다.
그러나 단기간이나마 효과를 볼 수 있었던 다이어트 방법이 ‘지방을 많이 먹는’ 방법이었다는 것은 분명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칼로리 생각하다 건강 망친다
지방을 ‘죄인’으로 만든 용의자 중 하나는 칼로리 측정법이다. 칼로리 측정은 살을 빼기 위해 고안한 것이 아니다.
100여 년 전 미국의 농화학자 윌버 올린 애트워터는 열량(영양)을 좀 더 잘 공급하기 위해 칼로리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영양과잉보다는 영양부족이 더 큰 이슈였다. ‘다이어트’라는 용어도 원래는 적당한 영양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국의 농업과학자 존 보이드오어가 1936년 펴낸 ‘음식, 건강과 소득’을 보더라도 그렇다.
책에는 영국 전체인구 중 규정 식사량을 채울 수 있는 소득층은 절반뿐이었고, 인구의 10%는 영양부족 상태였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칼로리는 타파의 대상이자 사람들의 적이 됐다. 논리적 구조는 이렇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g당 4Cal의 에너지를 갖고, 지방은 g당 9Cal를 지니고 있다.
지방을 먹으면 탄수화물이나 단백질과 같은 양이더라도 두 배 이상의 에너지를 섭취하는 것이 된다.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서 칼로리를 소모해도 지방을 많이 먹으면 소용없다는 것이다. 산술적으로는 무조건 맞는 얘기다.
그런데 한 가지, 전제가 잘못됐다. 칼로리 이론은 어떤 조건에서든 섭취한 모든 음식이 일정하게 소화, 흡수된다고 가정하고 있다.
알코올은 g당 7Cal의 열량을 갖고 있다. 지방보다는 낮지만 탄수화물이나 단백질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도 애주가라고 ‘무조건’ 뚱뚱하지는 않다.
우리 몸이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은 포도당(탄수화물)이다. 그러니 흡수도 잘한다.
몸에는 주요 에너지원인 포도당을 세포 안으로 집어넣는 펌프가 있다. 반면 지방을 강제적으로 세포에 넣어주는 펌프는 없다.
먹는 족족 흡수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반면 비축용으로는 지방이 탄수화물보다 훨씬 우월하다.
무게당 열량이 훨씬 높고, 수분도 불필요하다. 지방끼리 쉽게 뭉쳐 저장이 편하고 독성도 없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소모된다.
쓰고 남은 포도당이 비축용 지방으로 전환되는 이유다.
정리하자면 비만은 ‘먹어서 흡수되는 지방’보다는 ‘포도당이 전환돼 저장된 지방’의 책임이다.
지방 섭취를 무조건 줄이면 포만감이 작아지고, 먹는 즐거움도 사라진다. 자칫 더 큰 폭식을 불러올 수도 있다.
‘진범’을 잡지 못한 채 엉뚱한 용의자를 괴롭히는 과오는 범하지 말자.
살빼기 정석은 적게 먹는 것밖에 없다
건강한 몸의 가장 큰 적은 불량한 지식이다. 누군가가 전한 불확실한 정보들이 우리의 몸을 망치고 있다.
다이어트 역시 마찬가지다. 잘못된 지식에서 출발한 다이어트는 실패할 게 뻔하다.
물론 먹는 양을 줄이지 않는 한 현존하는 다이어트 방법이 모두 무용지물이지만….
이달 27일 미국의학협회저널(JAMA)에 이를 뒷받침하는 논문이 실렸다.
미국 보스턴아동병원의 카라 이벨링 박사팀은 저지방 식단을 활용해 체중을 줄였더니
저당(低糖) 또는 저단백질 다이어트보다 평균대사량이 220Cal나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대사량이 줄어들면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찔 수 있다. 요요현상이 쉽게 온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방보다 더 심한 차별을 받아온 것이 있다. 필자가 누명을 벗겨주고자 하는 주인공은 바로 콜레스테롤이다.
혹자는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동일한 물질이라고 오해한다.
어떤 이는 심장병의 원인으로 지목된 콜레스테롤을 몸 안에 들이지 않기 위해 지방을 멀리했다.
언제인가부터 ‘좋은 콜레스테롤’과 ‘나쁜 콜레스테롤’을 구분하고 있다. 한마디로 다 틀렸다.
콜레스테롤, 네 정체가 뭐냐?
‘C₂7H₄6O’ 콜레스테롤의 정체다. 탄소(Carbon) 원자 27개와 수소(Hydrogen) 원자 46개, 그리고 산소(Oxygen) 원자 1개로
이뤄진 유기화합물. 18세기 후반 담석에서 처음 발견된 콜레스테롤(cholesterol)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담즙이라는 뜻의 ‘chole’와 고체를 의미하는 ‘stereos’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체내에서 콜레스테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불포화지방으로 인해 벌어진 세포막을 채워줌으로써
세포의 안정성과 막 투과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래서 불포화지방이 많은 뇌에 콜레스테롤이 가장 많다.
뇌의 중량은 전체 몸무게의 2%밖에 안 되지만 뇌가 보유한 콜레스테롤은 몸 전체 콜레스테롤의 25%나 된다.
콜레스테롤은 또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 담즙산 등 스테로이드 계열 호르몬을 합성하는 원료가 된다.
이렇게 중요한 콜레스테롤이 왜 인간의 적이 됐을까. 미국에서는 1930년경부터 심장병이 급격히 증가했다.
미국의 ‘전미 콜레스테롤 교육프로그램(NCEP)’은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청산가리나 비소만큼 치명적일 수 있다고 못 박았고,
이에 따라 달걀 버터 육류 등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많은 식품은 심장병의 원흉으로 지목됐다.
그래서 1950년부터 미국의 달걀 소비량은 급속하게 줄었고 버터는 마가린으로 대체됐다.
그러나 미국인의 평균 콜레스테롤 수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심장병은 여전히 심각한 질환이다.
한 가지 큰 오해를 한 탓이다. 콜레스테롤이 전혀 없는 식품만을 먹어도 몸속 콜레스테롤 수치는 꿈적도 하지 않는다.
채식만 하는 스님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재보라.
우리 몸의 콜레스테롤 대부분(80%)은 간에서 24시간 꾸준히 합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콜레스테롤을 많이 섭취하면 간에서의 합성이 줄고, 섭취량이 부족하면 많이 합성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유지한다.
동물은 거의 모든 영양소를 식물로부터 얻지만 콜레스테롤만큼은 직접 체내에서 생합성한다.
나쁜 콜레스테롤이란 없다
사람들은 지방을 적으로 삼다가 이내 포화지방과 불포화지방으로 나눠 포화지방만 공격하기 시작했다. 콜레스테롤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콜레스테롤을 독극물 취급하더니 지금은 좋은 콜레스테롤과 나쁜 콜레스테롤로 구분한다.
흔히 고밀도 지방단백질(HDL)을 좋은 콜레스테롤이라고 하고 저밀도 지방단백질(LDL)은 나쁜 콜레스테롤이라고 한다.
이 말부터가 오해다. 지방단백질은 지방과 단백질, 인지질, 그리고 콜레스테롤이 혼합된 형태다. HDL과 LDL을 구분하는 기준은
단백질의 비율이다. 크기가 작은 HDL은 단백질 비율(45%)이 높고, HDL보다 평균 12배가 큰 LDL은 단백질 비율(25%)이 낮다.
HDL이나 LDL이나 똑같은 콜레스테롤이 들어 있다. 그 양만 HDL보다 LDL이 더 많을 뿐이다.
“HDL은 좋고, LDL은 나쁘다”고 하는 것은 “콜레스테롤이 적으면 좋고, 많으면 나쁘다”는 얘기밖엔 안 된다.
게다가 최근에는 ‘HDL은 심혈관에 좋고 LDL은 나쁘다’는 기존 상식과 배치되는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됐다.
미 보건당국은 지난해 5월 심혈관계 질환자 3414명에게 LDL을 낮추는 고지혈증치료제와
HDL을 높이는 니아신(니코틴산·수용성 비타민B군의 일종)을 함께 투여하는 임상시험을 32개월 만에 중단시켰다.
중간 검토 결과 혈중 HDL 농도는 높아졌지만 심장마비 위험을 줄이지 못했고 오히려 뇌중풍(뇌졸중)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2006년에는 세계 최대 제약사인 화이자가 혈중 HDL 농도를 높이는 신약을 개발하던 중
사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나 연구를 중단했다.
굳이 HDL과 LDL의 선악을 따지려면 단백질을 조사하는 게 맞다.
미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여성 3만2826명과 남성 1만8225명을 최장 14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이들 중 관상동맥질환을 보인 634명을 연구해 보니
체내 HDL-C(지방단백질 표면을 감싸는 10종의 단백질 중 하나인 ‘apoC-III’을 포함한 HDL)가 많은 경우
오히려 심장질환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래도 콜레스테롤을 의심할 텐가
달걀은 콜레스테롤의 보고다. 그래서 아직도 달걀을 쉽게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지방을 먹으면 몸속에 지방이 쌓여 살이 찌고,
콜레스테롤을 먹으면 콜레스테롤이 쌓여 심장병에 걸린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은 2010년 6월, 이전 50년간의 자료 조사와 자체 연구를 통해
“식품으로 섭취된 콜레스테롤은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조사 결과에서도 달걀을 많이 먹는 일본, 멕시코, 프랑스, 스페인 등이
관상동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낮았다.
올해 4월 미국 코네티컷대 연구팀도 대사증후군을 앓는 경우 하루 달걀 3개를 먹으면 몸에 이롭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살이 찌면 우리는 지방을 먼저 용의선상에 올린다.
살찐 사람이 심장질환에 걸리면 지방을 먹으면서 함께 섭취한 콜레스테롤 때문이라 여겼다. 그러면서 시간만 허비했다.
지방 탓, 콜레스테롤 탓 이제는 그만하자. 식사량만 줄이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된다.
※ 최낙언(47)은 서울대와 동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한 뒤 과자회사에서 10여 년간 아이스크림을 개발했다.
지금의 향료회사로 직장을 옮긴 뒤에도 10년 이상 다양한 신제품을 먹어보고 공부했다.
4년 전 식품과 첨가물을 다룬 한 TV 프로그램을 보고는 전체를 포괄하지 않는 단편적 정보와 지식이
얼마나 무서운 오해와 편견을 초래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
‘관계형 데이터 제공 방법’(2011년 국내특허 취득)을 활용한 식품 정보 사이트(www.seehint.com)를 만들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최근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지호)를 펴냈다.
- 최낙언 향료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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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론: 지식의 융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