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측 한 변호사가 박근혜 후보측으로 부터 불출마를 협박 받았다고 했다.
박근혜 후보는 9월 10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불출마 종용사건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친구사이 전화통화를 너무 침소봉대 해가지고 그게 뭐 사찰이니 협박이니
이렇게 공방을 벌이는 것을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틀 뒤 전화통화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주장한 택시기사 이 모씨가
"둘의 대화가 친구 사이의 대화는 아닌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승객이) '안 원장에게 대선 출마하지 말라고 해라. 대선 나오면 죽는다'고 말했다"며
"'(안 원장이) 최근까지 음대출신 30대 여성을 사귄 것과 뇌물사건을 우리가 조사해서 알고 있다'고도 했다"고 주장했다.
정치의 계절이다. 옛날로 치면 후임 제왕의 문제를 논하는 때다.
너도 나도 공(功)을 세워 한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듯이 전공을 올리기에 정신이 없다.
2,600년 전 개자추가 자꾸 생각나는 계절이다.
- 개자추 이야기
晋의 패업은 문공의 아버지 헌공때부터 시작되었다.
헌공에게는 8명의 공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 태자로 정해진 申生과 中耳, 夷吾(이오)가 현명하고 출중하였다.
헌공 12년(BC 665)에 나중에 얻은 여인 여희로부터 해제가 태어났다.
이때부터 헌공은 8명의 공자를 멀리하게 되고 여희는 자신의 아들인 해제가 대를 잇게 하려고 음모를 꾸몄다.
신생이 보낸 음식과 술에 여희가 독약을 타서 헌공 앞에 대령하였고, 내시에게 먹였더니 내시는 즉사하였다.
신생이 헌공을 죽이려 한다는 모함을 하여 신생은 자살을 하게 하고 중이와 이오는 다른 곳으로 망명을 떠나게 된다.
5년 후에 헌공이 죽자 이극이 반란을 일으켜 해제를 죽이고 다른 나라에 도망가 있는 중이를 왕으로 모시고자 하였으나
중이는 극구 사양하였다.
이에 夷吾를 모시고 와 왕에 오르니 그가 晋의 혜공이다.
혜공은 비밀리에 형인 중이를 암살하려고 자객을 보낸다.
이를 알아차린 중이는 12년간 망명해 있던 땅을 떠나 제나라로 갔다.
이때 나이 55세였으며 제나라에서는 중이를 환대하였다.
제나라 환공도 일찍이 망명 생활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공녀를 중이의 아내로 삼게 하는 등 극진히 대접하였다.
공녀는 가신 조쇠와 상의하여 제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귀국할 수단을 생각해 냈다.
중이에게 술을 많이 먹여 술에 취해 잠들었을 때 수레에 싣고 길을 떠났다.
여러 제후국을 거쳐 진나라에 도착하니 秦나라의 목공은 그를 환대하였다.
목공은 중이에게 군사를 주어 晋나라로 복귀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19년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晋나라의 王으로 복귀하니 그의 나이 62세였고 晋의 文公이 되었다.
이때부터 개자추는 물러나 초야에 묻혀 살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호언이 자기가 큰공을 세운 것처럼 이야기한 것을 듣자
병을 핑계로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청빈을 즐기면서 스스로 몸을 굽혀 짚신을 삼으며 그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문공이 군신들을 크게 모이게 하여 논공행상을 할 때 개자추가 보이지 않았으나
바쁜 와중이라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가게 되었다.
개자추가 사는 집의 이웃에 해장(解張)이란 사람이 살고 있다.
그는 개자추가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자 속으로 매우 불공평하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또한 성문 밖에 붙어 있던 문공의 조칙이 써 있는 방(榜)을 보게 되었는데 그 방문(榜文)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스스로 자기 공을 고하기를 바란다.>
개자추의 노모가 부엌에서 일하다가 해장이 전하는 말을 듣고 말했다.
몇 가마의 곡식을 구하여 조석으로 식사라도 배불리 먹으면, 짚신을 삼아서 궁색하게 사는 것보다야 낳지 않겠느냐? ”
혜공(惠公)과 회공(懷公)이 부덕하여 하늘이 그들의 군위를 뺏어 주공에게 준 것입니다.
제가 그들과 같은 동류에 속했다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생을 돗자리를 짜면서 살아 감히 하늘의 공을 자기의 공이라 하며 이를 탐하지 않겠습니다. ”
네가 허벅지 살을 베어 내서 모신 것을 잊지나 않게 하면 어떻겠느냐?”
우리 모자가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숨어 이 더러운 시정에서 벗어나 살자꾸나!”
“ 이 아들은 평소에 면상산(綿上山)이라는 곳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산은 높고 계곡은 깊어 오늘 당장 가도록 하겠습니다. ”
풀로 옷을 만들어 입고 나무 열매를 따먹으며 살면서 남은 여생을 마치려고 했다.
단지 해장(解將)만이 그 일을 알고 글을 써서 밤중에 조문 앞에 걸었다.
문공이 아침에 조회를 하는데 근시 중에 한 사람이 그 글을 보고 떼어 와서 문공에게 바쳤다. 문공이 그 글을 읽었다.
옛날에 내가 위나라를 지날 때 먹을 것이 떨어지자 그가 자기의 허벅지 살을 떼어 내어 국을 끓여 나에게 바쳤다.
내가 저지른 잘못을 어떻게 그에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구나!”
문공이 그 이웃 사람을 잡아오게 하여 개자추가 간 곳을 물어 보면서 말했다.
개자추가 스스로 상을 구하는 것을 치욕으로 알고
그 모친을 등에 업고 면상산(綿上山)의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습니다.
문공은 “ 그대가 만약 이 글을 걸어 놓지 않았더라면 과인은 개자추의 공을 잊어 먹을 뻔했다.”
개자추가 사는 곳을 찾아보려고 하였다.
문공의 일행이 면상산에 당도하자 첩첩한 산 봉오리들은 연이어 솟아 있었고 온갖 풀과 나무들은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시냇물은 졸졸 흐르고 하늘에는 조각 구름이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으며 나무들 위에 앉은 새들이 울어대자
산골짜기에서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서 울렸다.
문공이 데리고 온 군사들이 아무리 애써 찾았지만 개자추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마치 ‘산 속에 있는 것은 틀림이 없는데 구름이 너무 깊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겠노라!'
이는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도사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다는 뜻의 訪道子不遇(방도자불우)라는 제목의
시 중에 나오는 시구와 같았다.
訪道子不遇(방도자불우)
- 개공사에 있는 개자추 초상
주위의 농부들을 불러오게 하여 문공이 친히 묻자 농부들이 말했다.
이 산 아래에서 쉬면서 물을 마시더니 다시 등에 업고서 산 속으로 들어간 것을 보았습니다.
몇 일이 지나도 도저히 그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문공이 얼굴에 노한 기색을 띄고 해장에게 말했다.
“ 개자추가 어찌 나에게 이렇듯 한을 심하게 품고 있는가?
내가 듣기에 개자추는 효자라서 만일 산에 불을 놓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그 모친을 등에 업고 산 속에서 나올 것이다!”
위주(魏犨)가 앞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어찌하여 그 한 사람만을 갖고 이렇듯 번거롭게 하십니까?
오늘 개자추가 주군으로 하여금 어가를 몇 일간이나 머물게 하여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하였습니다.
만일에 그가 불을 피해 산 속에서 나온다면 신이 마땅히 그에게 수치를 알게 해주겠습니다.”
군사들이 두 모자의 해골을 거두어 문공에게 가져와 바쳤다.
문공이 보고 눈물을 흘렸다. 문공이 좌우에게 명하여 면상산(綿上山) 밑에 사당(祠堂)을 짓고 제사를 지내 주도록 했다.
면상산 주위의 땅에서 나오는 세수(稅收)를 모두 사당에 제사를 지내는 비용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부근에 살던 농부들에게 명하여 매년마다 제사를 지내는 것을 주관하도록 했다. 문공이 다시 좌우에게 명하였다.
이것은 내가 개자추에게 지은 죄를 조금이나마 용서를 빌고자 함이다.”
산을 태운 날이 삼월 오일 청명절(淸明節)이었다.
그리고 산에 불을 지른 날을 한식(寒食)절로 정하고
전국에 영을 내려 사흘 동안 불을 지피거나 밥을 짓지 말고 찬밥을 먹도록 했습니다.
나라 안의 사대부들은 개자추가 불에 타 죽은 것을 추모하여불을 지피지 않고 익히지 않은 찬 음식을 한달 동안 먹었는데
후에 날짜를 줄여 삼 일로 했다.
- 면산에 있는 개자추를 모시는 개공사
고려의 문신 이규보는 개자추에 대해 이렇게 읊었다.
寒食感子推事(한식감자추사)
- 한식일에 자추의 옛일에 감탄하여 - 이규보
衆鱗化雲雨(중린화운우) : 뭇 벌레 구름과 비에 은택을 받을 때,
一蛇不與爭(일사불여쟁) : 외로운 뱀 한 마리 함께 다투지 않았었지.
未見恩波潤(미견은파윤) : 내려지는 은혜의 물결을 보지 못하고
反爲燥炭烹(반위조탄팽) : 도리어 숯불 속에서 삶기게 되었구나.
綿山山上火(면산산상화) : 면산의 마루까지 타오른 불길
已忍焚人英(이인분인영) : 뛰어난 인재 그만 태워 죽였구나.
胡不放神燄(호불방신염) : 어찌 사나운 불길 널리 놓아
焚滅千載名(분멸천재명) : 전하는 이름까지 태우지 않았는가.
遂使後代人(수사후대인) : 드디어 후세 사람들에게
聞名輒傷情(문명첩상정) : 이름 듣고 마음 아프게 하였는가.
每至百五辰(매지백오진) : 해마다 한식일이 되면
萬屋禁煙生(만옥금연생) : 집집마다 연기 금하는 일 생겨났구나.
不及炎岡日(불급염강일) : 곤륜산 옥과 돌이 모두 탈 때
一勺江水淸(일작강수청) : 한 굽이 맑은 강물 미치지 못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