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동양 3국의 정원은 자연축소적 정원이 많다.

일본 정원에서 특히 연못을 파고 그 흙으로 인공적 가산(假山)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중국의 별궁인 이화원의 경우 그 연못이 크서 배가 다니며,뒤의 가산 또한 높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산을 만들기 보다 계곡 물가에 정자를 짓는 형태가 많다.

드물게 진주의 용호정원(龍湖亭園)은 연못을 파낸 흙으로 가산을 만든 정원이 있다.

 

중국의 시인묵객들이 최고의 산으로 노래하는 무산(巫山)의 빼어난 봉우리를

무산십이봉이라 부르며,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다.

무산이 시인묵객들의 이상향이 된 것은 그 속에  선녀가 산다는 전설 때문인 듯 싶다.

 

무산은 중국 사천성에 실제로 있는 산인데 그 산에 선녀가 실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

 

 

초나라 양왕이 무산의 고당(高唐)이라는 곳을 유람하다가 낮잠을 자게 되었다.

 

 

꿈을 꾸는데 한 부인이 나타나 잠자리를 같이 해 주길 간청하였다.

 

 

하룻밤 열락을 나누고 부인이 떠나면서 말했다.

 

 

'저는 무산의 양지쪽 높은 언덕에 사는데, 아침에는 구름(雲)이 되고, 저녁에는 비(雨)가 됩니다.'

 

 

양왕이 꿈에 깨어 보니 과연 그러하였다.

 

 

무산지몽(巫山之夢)이니 운우지정(雲雨之情)이니 하는 남녀간의 정교를 표현하는 말의 유래이기도 하다.

 

 

실제로 정자 내부에는 선녀가 내려와 같이 놀자는 강선대(降仙臺) 편액이 걸려 있다.


진주의 용호정원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세조 때 단종 복위를 꾀하다 자결한


충정공(忠貞公) 박심문(朴審問)의 18세손 박헌경(朴憲慶)이


일제강점기 때인 1922년, 해마다 거듭되는 재해로 굶주림이 심하자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할 목적으로


현재의 취로사업 형식을 취해 토지와 현금을 주어 이 정원을 조성케 하였다.


경내에는 600여 평 규모의 원형 연못인 용호지(龍湖池)가 있고,


연못 주위에는 무산십이봉을 상징하는 12개의 가산(假山)을 조성하였다.


연못 속에는 팔각정자인 용호정(龍湖亭)이 세워져 있는데  이 정자에 갈려면


배를 타고 건너 가도록 운치있게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