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순또 바하 꽃이 필 때
-TO Atsuko Honda
곽재구
내 꿈속에 꽃이 핀다면
저런 형상으로 필 것이다
어느 날 신이
내 꿈속의 마을을 방문한다면
바로 저 빛깔의 사리를 입고 올 것이다
누군가 내 꿈속에서
지상의 별들을 모두 잠재울 노래를 부른다면
그는 바로 저 꽃의 눈빛으로 우리를 적실 것이다
고단한 하루 일을 끝내고
아기를 잠재운 어머니가
비로소 떠나고 싶은 짧은 한 세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저 꽃의 순결한 그늘일 것이다
동무여, 가난한 내 노래는
한 잔 2루피 짜리 가게의 불빛보다 침침하고
환멸과 질시로 가득찬 내 영혼은
그믐의 조각배 위 위태롭게 출렁거리나니
언젠가 한 번 꽃 피거든
이 꽃만큼만 피어라
언젠가 한 번 맞을 죽음이거든
이 꽃만큼만 처절하게 시들어라.
2010년 3월 10일
*보순또바하 꽃 : 봄의 말. 또는 봄의 노래라는 뜻을 지닌 꽃나무.
느티나무만큼 큰 꽃나무에 노란색 꽃이 만개한다.
3월의 산티니케탄에 보순또 바하꽃이 피었습니다.
보순또 바하꽃은 노란색입니다.
이렇게 순결하고 이렇게 우아한 노란빛은 본 적이 없습니다. 완벽하고 절대적인 노란빛입니다.
처음 이 꽃을 보았을 때 꽃의 시원을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이 꽃은 어디에서왔는가? 당신의 정원에서 온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꿈. 당신의 힘이 아니라면 이런 꽃을 빚어낼 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보순또 바하 꽃은 키가 큽니다. 미루나무만큼 크지만 살집이 더 있습니다.
보순또 바하가 피어있는 숲의 모습은 깊고 아득한 어둠 속에 핀 촛불을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보순또는 뱅골어로 봄의 말, 봄의 노래입니다. 바하가 무슨 뜻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봄 날의 바하.처음 그 꽃의 정치한 빛을 보았을 때부터 바하를 생각했지요.
당신도 바하를 좋아하는지요?
겨울의 스산함이 아직도 남아있는 봄 밤. 생의 의미를 묻듯 뚝뚝 떨어지는 달빛 같은,
달빛들이 고여 만든 개울물 같은, 생의 맨 마지막 정거장
이름은 끝내 생각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그의 음악을 당신도 좋아하세요?
그래요. 보순또 바하 꽃은 꽃이 아니라 허공에 핀 음악입니다.
지상에 목숨을 부린 모든 생명을 찬양하기 위해 남긴 신들의 부적입니다.
이 신비하고 평화로운 꽃나무의 모습은,
저 꽃나무 아래에 서서 떨어지는 꽃잎을 먹는 소를 바라보고 있다가.
[곽재구] 산문집/우리가 사랑한 1초들 / 펴낸 곳:문학동네
- 바흐 G선상의 아리아,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