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Body) 이야기

여자의 산, 여정의 산

 

김세옥 큰돌산악회

♣ 사진은 삽입, 편집하였습니다

 

 

 

등반가들은 몸의 물질성과 몸이 지배하는 유기적인 세계를 ‘몸적’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등반가들은 몸에 집중해야 하는 등반을 통해, 몸(body)이 가진 힘(power)에 대한 자각과 정신을
지배하는 ‘몸적’ 체현(embodiment)을 축적한다.


한편 사회에서 ‘몸’은 무엇이 요구되고,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굳이 여성주의를 건드리지 않아도 몸의 정치학에 관한 담론은 매우 난해하고 복잡하다.
탈근대의 주된 화두는 ‘몸’과 ‘공간’이라고 할 정도로 몸은 많은 이론들이 경합하는 주제이다.
쉽진 않지만 등반과 관련지어 몸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근대 이후 많은 담론들이 몸의 육체성과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데카르트적 이분법에 균열을
내고자 했지만 몸보다 정신을 우위에 두며 자연과 문명, 여성과 남성을 나누는 이분적 사고는
여전히 뿌리 깊다.
인간의 모든 경험은 몸으로 이루어진다.
몸은 마음을 설명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등반가들은 ‘몸적’ 성취인
등반을 통해 몸의 강력함을 인식하고 그 몸이 어떻게 정신을 지배하는지 경험하게 된다.
그런 경험을 통해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이분법의 모순을 가장 잘 느끼게 되는 것이다.
몸의 역학과 정신의 조화로 등반은 실천되고 몸의 단련과 수행으로 등반적 성취는 이루어진다.
등반의 성취는 ‘몸적’인 쾌락이면서 동시에 정신의 충만함이기도 하다.
결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몸과 마음이 융합하여 성취되는 무엇’인 것이다.

 

 

 

 

 

시장이 요구하는 외모로 훈육되는 몸

 

소비자본주의와 상업주의하에서 몸은 가장 가시적이고 막강한 개인자본이다.
오늘날 몸을 일종의 상품자원으로 인식하고 투자하는 현상은 이전의 어느 시대보다 강하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자원으로서 작동하는 몸을 ‘육체자본’이라고 불렀다.
몸은 물리적인 유기체로 생명력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지위, 노동, 취향 등이 반영된
육체자본이 된다.

 
시장에서 요구하는 몸을 만들어 자본화하려는 욕망들이 충돌하면서 몸은 자본, 젠더, 계급이

경합하는 장이 되고 있다.
축적하기에 시간이 걸리고 쉽게 드러나지 않는 다른 문화자본, 지식자본에 비해 육체자본은

잘 가시화되고 사회에서 작동하는 힘 또한 강력하다.
이런 이유로 (시장이 선호하는) 예쁘고 날씬한 몸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 제어 불가능한

무한궤도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팔수 있다고 상상할 수 없었던 인간적, 감정적

영역마저 상품화시키고 있는 소비자본주의 하에서 몸은 이미 상품화의 첩경을 걷고 있다.
그런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해당 권력과 시장에 편입되지 못한 자들의 열등감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극대화된 육체자본에 대한 선호는 가시화된 외양, 외모만을 중시하고 이것이 권력이 되게
만든다.

 
잘난 외모 앞에서는 범죄마저도 용서된다.
잘생긴 범죄자들에 대한 대중의 과한 호응이나 동정은 더 이상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동성애자, 퀴어문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직된 한국사회가 트랜스젠더 하리수는 공중파에서
수용하고 커밍아웃한 홍석천은 심하게 냉대했다.
이 대조적 사례는 동성애 혐오가 트랜스젠더 혐오보다 더 커서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어떤 측면보다 ‘미모’가 더 강한 사회적 권력임을 보여준다.
이런 현실은 더 우월한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만든다.

 
미스코리아 폐지 운동으로 성과를 거둔바 있는 여성단체들이 최근 여성민우회를 중심으로
<렛미인> 폐지운동을 하고 있다.
“60분짜리 성형외과 광고”라고 비난받는 <렛미인>은 아주 뚱뚱하거나 보기흉한 외모를 가진
여성을 선정해서 온갖 성형으로 미인으로 만드는 과정을 자극적으로 보여준다.
<렛미인>의 문제는 성형만능에 대한 극단적인 신뢰와 외모지상주의를 심각하게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생활이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불편한 외모를 가진 여성들의 열등감을 거둬내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는 취지가 무색하다.
출연자들의 ‘Before& After’ 의 모습을 자극적으로 대비하여 극적인 변화를 과장함으로써
과도한 성형을 정당화한다.
상상할 수 없는 온갖 종류의 성형이 마치 미인이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일인 것처럼
보여주는 것은 성형만능과 외모지상주의를 넘어 돈 벌기의 ‘끝판’이 아닐 수 없다.

 

 

 

 

 

사회가 훈육한 ‘유순한 몸’을 갖지 않은 여성등반가

 

남성의 몸보다 여성의 몸은 훨씬 복잡다기한 육체자본으로서의 양상을 드러낸다.
여성에게 몸은 개인자본일 뿐 아니라 재생산을 위한 사회자본이기도 하다.

몸이 상품화된 자본주의 하에서 여성들은 시장이 원하는 대로 마르고 근육이 없는 유순한 몸을

스스로 선호한다.

 
그러나 더 나은 등반을 위해 일상적으로 몸을 단련하고 강화시키는 노력을 하는 여성등반가의
몸은 이런 육체자본화 욕망의 코드와는 어긋난다.
여성등반가들의 몸은 과도하게 근육이 발달하고 다른 신체에 비해 팔이 길거나 손, 발가락이
휘어지거나 굽어 있는 경우가 많다.
중력을 거스르는 등반의 특성상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등반 근력을 강화시키는
운동에 집중하다보면 마른 몸이긴 하나 전완근, 어깨, 등근육 등 특정부위의 근육이 발달되어
‘유순한 몸’과는 다른 몸을 지니게 된다.

오로지 등반욕망을 위하여 단련된 몸은 사회적으로 욕망되는 몸과는 거리가 있다.


등반을 막 시작한 여성들은 등반으로 인해 이상적인 육체자본으로부터 멀어지는 자신의 신체
변화에 대해 저항한다.
이 저항감은 등반 욕망이 커지고 등반을 지향하게 될수록 사라지는데 이런 과정을 겪으며
등반가로 성장한다.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자 하는 사회가 훈육한 유순한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비로소 유순하지

않은 몸을 지닌 강한 등반가가 되는 것이다.
난이도 있는 등반을 위해 십 수 년씩 강한 근력을 유지하기 위해 신체 단련에 집중해온 여성

등반가들은 시장과 자본이 원하는 육체자본이 아닌 자신의 등반 욕망을 위한 몸을 지니게 된다.

 
강한 의지로 오래 단련한 자신의 몸이 시장의 선호범주에 벗어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 여성등반가들의 태도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등반이라는 남다른 경험을 통해 오래 누적해 온 공간적, 몸적 경험들은 등반가로서 뿐만 아니라

여성주체로서의 자의식을 구성해 온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몸은 쾌락의 대상이었지 쾌락의 주체가 아니었다.
사회가 훈육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몸을
단련한다는 점에서 여성등반가들의 몸은 반가부장적이고 비자본주의적인 가치를 만들어낸다.
‘몸적’ 체현을 통해 여성의 몸은 자기정체성의 실천과 저항의 장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욕망을 추동하는 생산의 장이 될 수도 있다.

 
그 어떤

시장과 권력에도 소환되지 않는 강한 주체적 자아로, 몸은 이렇듯 정신을 추동하고 구축한다.
여성등반가들은 공간을 제압하는 바로 그 ‘몸적’ 체험을 통하여 등반가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주체를 스스로 구축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