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거세게 불어 거리는 어느새 낙엽 천지입니다. 태풍 '란(Lan)'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산 일대엔 강풍 경보가 내리고 해상엔 풍랑 특보가 발효되어 어선의 출항이 금지됐다고 합니다. 

새삼 바람의 무서움을 느낍니다.


태풍처럼 지구의 표면을 휩쓰는 바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만드는 바람도 있습니다. 

치맛바람은 오래 전부터 이 나라에 불기 시작한 바람인데, 이 바람이 '연예 바람'과 합해져 

어린 자녀를 연예인으로 키우려는 부모들이 많아졌습니다.  


방송계에는 연예인 바람과 함께 '시사(時事) 바람'이 분 지 오래입니다.

소위 '종편'으로 불리는 '종합편성채널'이 허용되면서 온종일 시사와 연예를 다루는 채널이 늘어난 탓이 큽니다.


이런 바람 속에서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FM95.1MHz)' 같은 프로그램을 5년 7개월 동안이나 

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tbs 덕택입니다. 오늘 아침 마지막으로 '즐거운 산책'을 하면서 그동안 

이 프로그램을 위해 애써주신 분들과, 이 프로그램을 들으며 격려해주신 분들을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그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히 2012년 3월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함께 했던 노경래 피디와 노희준 작가, 

뒤이어 '즐거운 산책'의 작가로서 오랜 시간 좋은 원고를 써주신 정선임 작가, 노 피디에 이어 '즐거운 산책'을 맡아 애써준 김현우 피디와 정수선 피디, 저를 격려하고 지도해서 '즐거운 산책'을 더 나은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황정호 피디와 이영준 피디, '즐거운 산책'이 한 시간으로 줄어든 후에 이 프로그램을 맡아 애쓴 

이현주 피디, 손보람 피디, 장연선 작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오늘 '즐거운 산책...'은 단풍 얘기로 시작했습니다.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는 계절엔 사람들도 옷을 갈아입는데, 

옷만 바꿔 입지 말고 마음도 새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첫 곡은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엘 콘도 파사(El Condor Pasa)'였습니다. 

가사 내용은 단풍이나 나무와 상관없지만 멜로디에서 가을 냄새가 나서 이 노래를 들려드렸습니다. 

'El Condor Pasa'는 영어로 'If I could'라니 '할 수(만) 있다면'쯤 되겠지요?

이 노래는 1913년 페루의 작곡가가 만들었는데 나중에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불러 세계적으로 히트했으며, 

페루에서는 애국가와 비슷한 대접을 받는다고 합니다.


박혜은 맥스무비 편집장과 함께하는 '영화 읽기'에서는 일본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김구 선생의 젊은 시절을 그린 '대장 김창수', '스타워즈' '007' '반지의 제왕' 등 할리우드 영화의 

음악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스코어: 영화 음악의 모든 것', 2008년 28세의 나이에 타계한 배우 히스 레저

(Heath Ledger)'의 전기 영화 '아이 엠 히스 레저', '블랙 스완'으로 유명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마더!'를 

소개하고, 히스 레저가 출연했던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에 나왔던 린다 론슈타트

(Linda Ronstadt)의 노래 'It's so easy'를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 중 한 사람일 박혜은 편집장은 '즐거운 산책' 초기부터 '영화 읽기'를 해주셨습니다. 박 편집장님께 깊이 감사하며 내내 건강히, 왕성히 활동하시길 빕니다.


권태현 출판평론가와 함께하는 '책방 산책'에서는 김용택 시인이 아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 <마음을 따르면 된다>와, 저명한 의사이자 작가인 디팩 초프라와 하버드대 신경학과의 루돌프 탄지가 함께 쓴 <슈퍼 유전자>를 

읽었습니다. 권태현 평론가가 소개한 <슈퍼 유전자>의 내용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의 유전자 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5퍼센트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바뀐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긍정적인 변이가 일어날 수도 있고 나쁜 변이가 일어날 수도 있으며, 달라진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 

전해지기까지 한다니 놀랍고도 두렵습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책방 산책' 말미에는 <마음을 따르면 된다>가 상기시킨 가곡 '내 맘의 강물'을 테너 팽재유 씨의 노래로 들었습니다. 권태현 출판평론가는 '즐거운 산책'이 시험 방송을 시작하는 날부터 함께해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감사합니다.


'문화가 산책'에서 소개한 소식 중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 '역사를 몸으로 쓰다'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2017 기증작가 홍성도 초대전' '시차(時差) 그리고 시차(視差)'가 있었습니다. 

'문화가 산책' 후에는 두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고 낙엽 구르는 길을 걷다 보면 떠오를 것 같은 노래, 

줄리엣 그레코의 'Les Feuilles Mortes(고엽)'를 들었습니다.


오늘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찰나라는 단어로 마쳤습니다찰나를 고유한 우리말로 아는 분들이 많지만

찰나(刹那)’절 찰()’어찌 나()’가 결합된 한자어로 지극히 짧은 시간즉 순간을 뜻합니다.

일요일 아침을 ‘즐거운 산책'으로 시작한 지난 57개월을 돌아보니 찰나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단어를 마지막 단어로 골랐고, 마지막 노래도 지미 스트레인의 '찰나'였습니다.


그동안 일요일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즐거운 산책'과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거듭 깊이 감사드리며,

연예와 시사의 광풍 속에서도 문화와 교양의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힘을 모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래에 '들여다보기'에서 읽어드린 제 글 '이별'을 옮겨둡니다.


이별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은

이별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자유를 느끼게 하는 이별이 있는가 하면

깊은 슬픔을 남기는 이별도 있는데요,

지난 몇 년 동안에도 나뭇잎처럼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기로 영생을 얻은 로빈 윌리엄스와 히스 레저,

노래로 각성과 위로를 주던 레너드 코헨과 조동진,

권투하듯 열심히 부정과 싸웠던 무하마드 알리,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을 끌어올린 신해철,

슬픈 전설이 되어버린 화가 천경자,

훌륭한 학자지만 외로운 작가였던 마광수,

온 국민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 세월호 희생자들...

 

아무리 이별을 피하고 싶어도 이별 없는 삶은 없고

아무리 나뭇잎이 떨어져도 나무들은 여전한데,

어떻게 살아야 언젠가 재회의 순간이 찾아올 때

부끄럽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