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신문을 보며 룸메이트와 '미국이 너무 하네, 이렇게 몰아세우면 북한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하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은 오늘 판문점에서 열기로 했던 남북고위급회담을 연기했습니다.

북한은 '맥스선더(Max Thunder)' 훈련을 문제삼아 회담을 무기 연기했다지만 실제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으로 대표되는 미 행정부의 '오만'이 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시각으로 지난 11일 폼페이오 장관은 강경화 외무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빠르게 비핵화하는 

과감한 조치를 취한다면...북한이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저는 이 말이 아주 불쾌하게 들렸습니다.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느라 한국민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지 

폼페이오가 알고 하는 말인가, 미국이 '협력'하면 한 나라의 번영이 금세 이루어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13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ABC와 CNN에 출연해 북한이 만들어놓은 모든 핵무기는 해체해서 미국 테네시 주 오크리지로 반출해야 한다며, 핵무기 해체는 미국이 직접하겠다고 했습니다. 볼턴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국이 하라는 대로 하면 대북제재가 해제되고 민간 자본의 대북 투자가 허용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볼턴과 폼페이오는 상대의 자존심을 아랑곳하지 않는 미국식 '외교'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북한이 경제 발전을 위해 핵무기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면 그건 북한 내부의 사정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라는 대로 하면 먹고 살게 해줄게' 하는 식으로 말하는 건 대화 상대인 북한을 모욕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니 북한도 반감을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어떤 이유로든 북한이 오랜만에 활발하게 대화에 나섰으니 그 분위기를 이끌어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 힘써야 할 미국이 다시 힘을 내세워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대사관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할 때 가끔 미국 외교관들로부터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좋은 일을 하는데 왜 그만큼 인정받고 사랑받지 못할까?' 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반미시위도 그들로선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상대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곤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줄 때는 받을 때보다 더 조심해야 합니다. 행여 그 사람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아래 기사에 쓰인 대로 우리 정부가 북한의 고위급회담 연기에 대해 '당혹'했다면, 우리 정부는 아직 미국과 북한을 잘 모르는 것이겠지요.

사족: 북한의 핵을 뺏고 남한의 핵 개발을 막으려는 미국의 정책은 1968년에 체결된 핵확산금지조약(NPT: Non-Proliferation Treaty)에 근거한 것인데, 사실 이 조약은 당시에 핵을 보유하고 있던 국가들만이 핵무기를 보유할 권리가 있다고 명문화함으로써 다른 나라들의 핵 개발을 막은 불평등조약입니다.

아래는 남북고위급회담 연기에 관한 머니투데이 기사입니다.

 北, '맥스선더' 이유로 고위급회담 중지..정부, 北 의중 파악중(종합)

박소연 최경민 기자북한이 16일 우리측의 맥스썬더 훈련을 이유로 이날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개최키로 했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함으로써 향후 정세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통일부는 이날 "북측은 오늘 새벽 12시30분쯤 리선권 단장 명의의 통지문에서 우리측의 맥스선더 훈련을 이유로 고위급회담을 무기연기한다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이어 "이에 따라 오늘 예정된 회담은 개최되지 않는다"며 "정부 입장은 유관부처 협의를 거쳐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우리측의 '맥스선더'(Max Thunder) 훈련이 '판문점선언'에 대한 도전이며 한반도 정세의 흐름에 역행하는 군사도발이라며 이날 개최키로 했던 남북고위급회담을 중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중앙통신은 "11일부터 남조선당국은 미국과 함께 남조선 전역에서 우리에 대한 공중선제타격과 제공권장악을 목적으로 대규모의 '2018 맥스 썬더' 연합공중전투훈련을 벌려놓고 있다"며 "이번 훈련은 판문점선언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며 좋게 발전하는 조선반도(한반도) 정세 흐름에 역행하는 고의적인 군사적 도발"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북과 남은 이번 판문점선언에서 조선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나갈데 대하여 합의하였으며 이를 미국도 전적으로 지지하였다"며 "남조선당국과 미국은 4.27선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규모의 연합공중훈련을 벌려놓음으로써 우리가 보여준 평화애호적인 모든 노력과 선의에 무례무도한 도발로 대답해나섰으며 선언리행을 바라는 온 겨레와 국제사회에 커다란 우려와 실망을 안겨주고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남조선당국이 우리의 주동적이며 아량있는 노력과 조치에 의해 마련된 북남관계 개선과 조미(북미)대화 국면이 이번 전쟁연습과 같은 불장난소동을 때도 시도 없이 벌려놓아도 된다는 면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다"고 경고했다.

중앙통신은 "선의를 베푸는 데도 정도가 있고 기회를 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며 "판문점선언은 그 어느 일방의 노력으로써는 이행될 수 없으며 쌍방이 그를 위한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힘을 모아 조성해나갈 때 비로소 좋은 결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남조선에서 무분별한 북침전쟁 소동과 대결난동이 벌어지는 험악한 정세하에서 16일로 예견된 북남고위급회담을 중지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며 "북남고위급회담이 중단되게 되고 첫걸음을 뗀 북남관계에 난관과 장애가 조성된 것은 전적으로 제정신이 없이 놀아대는 남조선당국에 그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도 남조선당국과 함께 벌리고 있는 도발적인 군사적소동국면을 놓고 일정에 오른 조미수뇌상봉(북미정상회담)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는 미국과 남조선당국의 차후태도를 예리하게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국과 미국 공군은 지난 11일부터 2주간 한미 연합작전 능력을 높이기 위해 맥스선더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미국 공군의 레드 플래그(RED FLAG) 훈련을 벤치마킹해 한미 공군이 연 2회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연합훈련이다. 이번 훈련에는 미국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인 F-22 랩터 8대가 참가했다. F-22 랩터가 대규모로 한반도에 전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8일 북측에 '판문점선언' 이행방안 협의를 위한 남북 고위급회담을 14일 개최할 것을 제안했고, 북측이 전날(15일) 통지문을 통해 16일 남북 고위급회담을 개최할 것을 수정제의해왔다. 이에 남북은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 후 19일 만에 회담장에 마주앉을 예정이었다.

북측이 판문점 고위급회담 시작 10시간도 남기지 않고 개최를 일방적으로 취소한 데 대해 정부는 당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보내온 전통문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맥스선더 훈련의 일정과 규모는 현재로서 조정 계획이 없다고 설명했다.

맥스선더 훈련이 이미 시작한 시점인 12일 북측이 공개적인 풍계리핵실험장 폐기의사를 밝히고 우리측의 고위급회담 제의를 수락한 점을 감안할 때, 북측이 현재의 대화 흐름을 완전히 단절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남북·북미대화 해빙무드에서 판문점선언을 근거로 한미를 대상으로 압박에 나서면서 협상력을 높이는 등 다양한 포석이 깔린 조치로 풀이된다.

박소연 최경민 기자 soyunp@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