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아래 서 있던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5월에도 10월에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를 보면 언제나 강신재 선생의 단편 '젊은 느티나무'의

첫 줄이 떠올랐습니다. "그에게선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봄날 수줍게 솟는 연두는 아름다웠습니다.

여름날 집 밖으로 나간 사람을 창문에 서서 배웅할 때면 

울창한 초록으로 그를 가려 가슴을 철렁하게 하곤 했습니다.


가을이 오면 가장 높이 솟은 잎부터 들기 시작한 붉은 물이 

아래로 아래로 흘렀습니다. 

사람 눈 높이의 잎들은 파래도 저 위 하늘에 닿은 잎들은 붉어

그 적록 동거가 재미있고도 처연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봄인가 전지작업을 했습니다. 

느티나무의 굵은 가지들을 심하게 처내어

나무는 기둥만 남다시피 되었습니다.

전장에서 팔다리를 잃은 젊은이 같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오갈 때마다 그를 어루만지며 제발 살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봄이 오고 다른 나무들에게선 새 잎이 나왔지만

그에게선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몸 기둥을 싸고 있던

표피가 크고 작은 조각으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마침내 어제 아침 전지를 담당했던 회사 대표가 왔습니다.

전기톱으로 그의 허리께를 잘랐습니다.

바짝 마른 속살을 보니 그는 죽은 지 한참이었습니다. 


그의 시신은 너무 커서 그대로 옮길 수 없었습니다.

네 차례인지 다섯 차례인지 전기톱이 그의 시신을 갈랐습니다. 

20여 년 나이테가 동강 또 동강 났습니다.

자꾸 눈물이 솟았습니다. 

젊은이의 장례식장에 있을 때처럼 가슴이 아팠습니다.


오후가 되니 그 섰던 곳은 말끔히 정리되어

피처럼 쏟아지던 톱밥 한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자리엔 이웃했던 옥잠화가 태연하게 앉아 있고

옥잠화 있던 자리엔 여러 그루의 어린 라일락이 

처음부터 거기서 자란 듯 평화롭게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집 앞 느티나무는 사라졌지만

제 안의 느티나무는 제가 사라지는 날까지

제 안에 있을 겁니다. 그 젊은 모습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