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마음에 드는 글은 쓰지도 못했는데, 제 방엔 글이 넘쳐납니다.

카페의 연갈색 냅킨부터 각양각생 스프링 노트, 전단지 뒷면, 고지서 뒷면 등

제 방안엔 떠오르는 단어들을 끌어 안고 있는 종이가 수없이 많습니다.


책꽂이들은 책의 무게에 휘어지고 꽂힌 책들 앞 좁은 공간에는 

선물받은 책갈피와 그림엽서 사진엽서 카드 등이 쌓여 있습니다. 

가끔 책꽂이의 책을 빼보듯 그 엽서와 카드들을 다시 읽습니다. 

문장과 행간에 넘치는 사랑과 격려 덕에 눈시울을 적실 때도 있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가끔, 내가 갑자기 죽으면 누가 이 방을 치운다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정리 못하는 저와 수십 년 함께한 가족이 치울 수밖에 없겠지요. 

제게 '정리불능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내려준 것도 그들이니까요.


그들에게 느끼는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면 조금이라도 치워야 합니다.

한아름을 덜어내는 건 힘들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 매일 한 장씩이라도

갖다 버려야겠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집어든 종이는 1Q84츄러스라는 동네 카페의 냅킨,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가끔 카페에서 책을 보다 보면 잠이 밀려온다.

명상하는 사람처럼 눈을 감고 카페와 꿈 사이를 떠돌면

이윽고 어떤 순간을 만난다. 죽은 내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것 같은... 리모델링, 왕짜증, 이만오천원, 냉면, 비빔국수...


저들은 대개 구십구 퍼센트 하찮은 것들, 대체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쓸데없는 말들을 주고받는 것이다. 혹시 저들 중에 의미있는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매우 외로울 것이다."


겨우 이걸 끄적인 누런 냅킨이 내 책상 한쪽에 앉아 있은 지

백일도 넘은 것 같습니다. 아이고...

하찮은 대화로 시간을 보낸다고 남들을 폄하하면서

저 자신은 이렇게 하찮은 글 쪼가리를 붙들고 있었던 겁니다. 


잘가라, 글 쪼가리! 내 책상은 오늘 꼭 너만큼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