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은 거의 누워서 보냈습니다.

몸과 마음 두루 쉬려면 적당한 소음이 필요하니 

텔레비전을 켜놓고 누워 있었습니다.

출연자들의 천박한 말장난 때문에 켜둘 만한 체널이 드물어

수학 가르치는 채널과 영어 가르치는 채널을 켜두곤 했습니다.


일요일은 어머니와 둘째 동생을 만나 '세 모녀 점심'을 하곤 했지만

그것도 걸렀습니다. 저는 나갈 수 없는 형편인데 동생은 어떤가 문자로

안부를 물으니, 아프던 허리가 더 악화돼 외출이 힘들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어떠신가 전화를 드리니 지난 일주일 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 모녀 점심'은 '세 모녀 투병' 혹은 '세 모녀 휴식'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세 사람의 일요 점심이 시작된 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이니 

4년여가 되었는데, 이번처럼 세 사람이 다 아파서 만나지 못한 건 처음입니다.


동생은 '이번 주가 우리의 고난주간이네'하는 문자를 보냈는데

그 '고난주간'이라는 말이 좀 놀라웠습니다.

'고난주간'은 그리스도교에서 에수님 생애의 마지막 일주일,

즉 예루살렘에 들어온 날부터 부활하는 날까지를 뜻한다고 하는데,

그리스도교인도 아닌 동생이 그 용어를 쓰니 놀라웠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저도 종교적 용어를 쓰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신자가 아니어도 주변에 신자가 많고 철학서나 종교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거기 등장하는 종교적 용어를 시나브로 익혀 쓰는 일도 있으니까요.


종교에 귀의하지 않고 살다가 나이 들어 신자가 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지구의 중력을 견디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져 휠체어, 목발, 유모차 등

무엇엔가 의지하지 않고는 직립조차 힘들어지듯, 

정신적 '홀로 서기'가 나날이 힘들어지기 때문이겠지요.


이 힘겨움은 인간 공통의 조건이니 신자들이 모든 유형의 사람들을 포괄하는 건

당연합니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

어리석은 사람, 영리한 사람... 


어머니와 동생과 저는 그리스도교 신자도 불교 신자도 아니지만

예수님과 부처님을 존경하며 그분들을 흉내 내며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우리의 '고난주간' 끝에도 부활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신자가 아니니 그런 순간은 없을 거라고요? 과연 그럴까요? 

예수님은 그때 그리스도교 신자이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