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산과 선운사고창 청보리밭 두곳을 하루에 동시에 여행하려고 했는데,

고창 청보리밭은 많은 인파로 인한 진입로 부터 차량이 지체되는 바람에

선운산과 선운사로 만족을 해야 했다.


선운산은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에 속하지만 별도의 주봉은 없다,

선운산 주변으로 해발 200m에서 400m 사이 여러 봉우리가 에워싸고 있는데,

모든 봉우리를 다 오르내리면서 종주를 하려면 대략 20여 km의 거리가 된다.

예전 선운산의 좌측 봉우리인 구황봉에서 비학산~청룡산까지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도 선운산 경내구경까지 15km 정도 걸은듯 하다. 


그런데 예전 사진자료가 다 사라져 버린 탓에 100대 명산 중 

정작 올랐으면서도 선운산의 인증사진이 없다.

그래서 10년 만에 다시 선운산에 정상 인증사진을 담으로 다시 올랐다.

그런데 산악회를 따라온 탓에 선운산의 상징적인 주봉인 수리봉만 오르고 선운사 사찰 구경 후

고창 청보리밭으로 계획을 잡은 탓에 

수리봉 등산으로 만족하고 남은 시간은

선운사 사찰관람으로 대신하고,

정작 고창 청보리밭으로 향했는데, 밀려드는 차량으로 인하여

계속 지체되는 바람에 귀가시간이 늦어지는 관계로 포기하고 말았다.

더구나 이 날 선운산 산행도 경치가 좋다는 참담암에서 낙조대길은

산불방지기간이라고 사람이 지키고 출입을 막는 바람에 반쪽짜리 산행이 되었는데..흑 흑


고창 청보리밭 안갈줄 알았다면

선운산 봉우리 2~3봉을 더 오를걸을....



모든 사진 클릭하면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다.

높이 : 335m
위치 : 전북 고창군 아산면

특징, 볼거리

선운산

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도솔산(兜率山)이라 하였으나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禪雲寺)가 유명해지면서 선운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주위에는 구황봉(298m)·경수산(444m)·견치산(345m)·청룡산(314m) 등의 낮은 산들이 솟아 있다.

선운산 주봉은 도솔산, 수리봉으로 불리는 선운산 뒤 봉우리로 대부분의 자료에는 선운산을 336m로 표기하고 있으나 현재의 지형도에는 선운산 표기는 없고 천왕봉 329m로로 표기되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전국 산 높이 정비사업"에 의하여 2007년 12월 발행한 "한국의산지" 산명사전편에는 335m로 표기되어 있다.

선운산은 그다지 높지는 않으나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릴 만큼 계곡미가 빼어나고 숲이 울창하다. 봄의 매화와 동백, 가을 단풍이 절경을 이룬다.

골이 깊고 물이 맑으며 수림이 울창하여 절경을 이룬 하늘과 바다가 한 빛으로 붉게 물들어 태양이 바닷물 속으로 빠져드는 황홀한 경치를 볼 수 있는 낙조대, 신선이 학을 타고 내려와 놀고 갔다는 선학암 등과 봉두암, 사자암, 용문굴, 만월대, 천왕봉, 여래봉,인경봉, 구황, 노적봉 등 많은 명소가 있다.

선운산은 동백숲으로 유명하다. 4월에는 동백꽃과 벚꽃, 진달래꽃이 한데 어우러져 흐드러지게 핀 장관을 볼 수 있다. 동백숲(천연기념물 184호)은 선운사 뒤쪽 5천여평의 산비탈에 수령 5백년을 자랑하는 동백나무 3천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춘백으로도 불리는 선운사 동백은 가장 늦게 핀다. 하동의 매화가 지고난 4월부터 꽃봉오리를 터뜨린다. 절정은 4월 하순, 선운산 동백은 4월초부터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여 5월초순까지 피어나 선운사 뒤쪽 동백숲은 꽃병풍을 두른 듯 장관을 연출한다.

미당 서정주는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라고 늦은 동백을 노래하고 있다.

제주도와 울릉도 여수 오동도의 동백숲이 유명하지만 이곳 선운산 동백숲을 으뜸으로 친다. 나무의 평균 높이가 6m, 수관의 직경이 8m 내외이며 가장 큰 나무는 그 밑부분의 지름이 80㎝에 달하며 동백숲 주변에는 다른 나무가 자라지 않아 순림에 가깝다.

선운산 입구 바위 절벽에는 내륙에서는 제일 큰 송악(천연기념물 제367호)이 자라고 있다. 또한 송악 못지 않게 유명한 나무가 수령 6백년을 자랑하는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호)이다. 장사송은 적송으로 큰 가지가 여덟으로 갈라져 우리나라 8도를 상징하는 듯 하다.

선운산에는 고찰 선운사(禪雲寺)가 있다. 한때 89개의 암자를 거느렸던 선운사에는 현재 도솔암, 참당암, 석상암, 동운암이 있다.

인기명산 [37위]

경관도 수려하지만 선운사 주변의 동락군락지는 국내 제일을 자랑한다. 봄맞이산행으로 3월, 동백산행으로 동백이 만발하는 4월, 10월 가을산행순으로 인기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산세는 별로 크지 않으나 숲이 울창하고 곳곳이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경관이 빼어나며 천연기념물 제184호인 동백나무 숲이 있는 등 생태적 가치가 크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79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백제 위덕왕 24년(577년) 검단선사가 창건한 선운사(禪雲寺)와 수령 5백년의 동백나무 3천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선운사 동백 숲이 유명하다


선운산의 조망...좌측으로 부터 사자바위 비학산 청룡산 배맨바위 천마봉 낙조대 등이 조망된다.


선운사 주차장






입장료 3000원 벌려고 사찰 우측 능선으로 오른다.


연분홍빛 철쭉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식상암



벌깨덩굴


꽃마리와 자주괴불주머니



미나리냉이




마이제 입구 암자


조팝나무(?)


산이 높지 않다 보니 이내 정상이 보인다 ...수리봉





수리봉에서 조망..견치산(개이빨산)이 보인다.


견치산을 줌으로



멀리 서해바다도 보인다. 이날 자욱한 미세먼지로 인하여 시계가 불과 3~4km 정도라 바닷가 구별이 잘 안된다.



경수산쪽 조망



수리봉을 조금 지나 조망바위에서 바라다 보이는 선운사..뒤로 경수산과 소요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선운사를 줌으로


각시붓꽃


도솔제 저수지와 좌측으로 구황봉 중앙 사자바위 우측으로 비학산이 보인다.



사자바위를 줌으로


선바위인가?



비학산






중앙에 둥근 바위가 배맨바위라고 한다.




파노라마 사진 클릭해 보세요.


좌측으로 부터 사자바위 비학산 청룡산 천마봉이 조망된다.

 


좌측 사자봉과 우축 천마봉이 조망된다.



애기나리




금창초





뽀리뱅이







진흥굴




장사송





도솔암













도솔암에서 바라다 본 사자봉과 천마봉




용문담 계곡








마애불상



미나리아재비


반디지치



광대수염



개별꽃 중에는 큰개별꽃, 개별꽃 덩굴개별꽃 등이 있는데 사진의 개별꽃은 큰개별꽃 같이 보이는데 구분을 잘 못하겠네요.


벌깨덩굴


선운산 동백나무숲




이하 선운사...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도솔산은 선운산(禪雲山)이라고도 하며,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기도 하였다.

도솔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선운사는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서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재들을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특히 눈 내리는 한겨울에 붉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선운사 동백꽃의 고아한 자태는 시인ㆍ묵객들의 예찬과 함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첫 번째 설은 신라의 진흥왕(재위기간 540∼576)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크게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함으로써 이 절의 시초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에 신라의 왕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시대적ㆍ지리적 상황으로 볼 때 검단선사의 창건설이 정설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단스님의 창건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이를 신이하게 여긴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다. 이 자리에 절을 세우니 바로 선운사의 창건이다. 검단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절 이름을 '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또한 이 지역에는 전쟁 난민이 많았는데, 검단스님이 불법(佛法)으로 이들을 선량하게 교화시켜 소금을 구워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주었다. 마을사람들은 스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해마다 봄ㆍ가을이면 절에 소금을 갖다 바치면서 이를 '보은염(報恩鹽)'이라 불렀으며, 자신들이 사는 마을이름도 '검단리'라 하였다. 선운사가 위치한 곳이 해안과 그리 멀지 않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염전을 일구었던 사실 등으로 미루어보아, 염전을 일구어 인근의 재력이 확보되었던 배경 등으로 미루어 검단스님이 사찰을 창건한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