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담이 법 이 전에 주어진 혹은 법보다 우선하는 자연법 및 도덕적 권리(moral right)를 부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물음을 살펴보려면, 당시 자유와 도덕적 권리의 관계에 대한 주류 입장을 알 필요가 있다. 로크와 블랙스톤(W. Blackstone)으로 대변된 그 주류 입장에 따르면, 시민으로서 개인의 자유는 자연법을 모방한 법제에 의해 촉진 가능하다. 그 법제는 자연법에 근거한 도덕적 권리들을 보호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로크의 행복론에서 보았듯이, 자연 상태는 법제 없이 합리적 판단 능력의 발휘만으로도 조화로운 공동체 유지가 가능한 상태이다. 소유를 법적 권리로 보장할 필요가 없는 상태인 것이다. 자연을 이용해 인간에게 유용한 것을 만들고, 유용한 것들을 삶에 정착시키는 것은 신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유용한 것들은 소모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교환 가치를 지닌 화폐의 발명은 필수적이다. 공동체가 복잡해질 수록 개인의 자유와 도덕적 권리를 보호할 통치 권력을 지닌 정부가 필요하며, 정당한 정부는 법치에 근거해야 한다.
블랙스톤에 대한 벤담의 비판은 공평하다고 할 수 없음을 보게 될 것인데, 그 비판은 1776년 작 <정부에 관한 단편(Fragment on Government)>에 잘 나타나 있다. 벤담은 자유를 본질적으로 법과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 이때 그 자유는 ‘법을 포함한 외적 억압의 완전한 부재’를 뜻한다. 사회에서 시민의 자유는 개인의 합리적 능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축소되어야 하며, 시민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로 나뉜다. 개인의 자유는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피해를 방지하는 것에 근거하며, 정치적 자유는 정부의 부당한 억압을 방지하는 것에 근거한다. 법제가 시민의 자유를 보호 대상으로 삼을 때, 권리는 법 이전에 주어진 자연법에 근거한 도덕적 권리와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벤담은 자연법에 따른 법제를 비판한다. 그 비판의 핵심은 법제에 근거한 시민의 자유를 다루는 방식은 자연 상태의 자유에 적용되는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벤담에 따르면, 블랙스톤은 자연 상태의 권리를 법적 권리로 이행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들, 실례로 과다한 세금, 정치적 권력의 집중, 빈부 격차 및 불평등 등 부정적 측면들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블랙스톤은 단지 긍정적 측면들만 강조하면서 시민의 자유가 법제에 의해 쉽게 보호될 수 있다는 단순한 사고방식을 퍼뜨렸다는 것이다.
벤담의 <정부에 관한 단편들>에 묘사된 블랙스톤은 모든 권리를 자연법에 근거시키려는 고지식한 전통주의자, 사회 개선을 가로막는 악의 근원으로 묘사되고 있다. 다수 철학자들은 벤담의 글만 가지고 블랙스톤을 접근하고 평가한다. 하지만 법학 및 법학의 역사를 다루는 학자들은 블랙스톤에 대한 벤담의 비판은 지나친 것이자 공평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블랙스톤은 자연법이 단순하게 시민 사회의 법제로 이행 가능하다고, 그리고 법적 권리들을 자연법에서 직접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그 역시 로크와 마찬가지로 자유를 ‘외적 억압의 완전한 부재로서의 자유’로 규정한 적이 없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로크는 자유에 대해 진정한 행복을 전제했다. 이때 그 행복은 지속성을 갖는 지성적 쾌락이며,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조화를 목적으로 합리적 판단 능력에 의해 조율된 것이어야 한다. 블랙스톤은 시민의 자유를 법제의 보호 대상으로 간주했으며, 법적 권리를 자연법 및 자연법에 따른 도덕적 권리에 직접 대응시키지 않았다. 그에게 자연법 및 자연법에 따른 도덕적 권리란 다양한 문제와 상황과 맞물린 구체적 법적 권리와의 양립 가능성을 따질 때 의미를 갖는 것이다. 즉, 자연법 및 자연법에 따른 도덕적 권리란 법제의 정당화 맥락의 근간일 뿐, 그것 자체가 법적 권리의 직접적 원천은 아니다. 실례로 블랙스톤이 소유권을 절대적 권리로 규정한 영역은 자연 상태의 영역이지 시민 사회의 영역이 아니다. 시민 사회에서 법적 권리로서의 소유권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문제들과 맞물려 복수로 구체화되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 소유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가 된다. 소유권의 무차별적 허용으로 인해 빈부 격차와 불평등이 심해질 수 있다는 문제는 벤담뿐만 아니라 블랙스톤도 고민했던 것이다. 블랙스톤이 법제를 단순히 자연법을 모방한 것으로 여겨 법제의 권리들로 인해 발생 가능한 부정적 측면들을 무시했다는 벤담의 주장을 무조건 수용하기는 힘들다.
블랙스톤이 당시 여성의 투표권을 옹호하지 않았다는 등의 사례를 들어 그가 사회 개선을 원하지 않았다는 식의 벤담의 묘사도 수용하기 힘들다. 벤담이 노예제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다면, 블랙스톤은 노예제 폐지를 적극 옹호했다. 벤담이 보편적 투표제를 통해 민주주의를 옹호했다면, 블랙스톤은 다수의 독재 가능성을 들어 민주주의를 경계했다. 그렇다고 블랙스톤을 반민주적 인물로 규정하는 것은 오류이다. 블랙스톤은 권력의 제도적, 지역적 분산 없이는 시민의 자유는 언제든지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미국 헌법 제정에서 연방제를 강조한 매디슨(J. Madison)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상원과 하원, 내각과 의회 사이의 상호 견제를 가능하도록 해 주는 영국의 감사 제도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과 영국에 국한해 민주주의 법제를 논하는 경우, 벤담보다는 블랙스톤의 영향력이 그 법제에 더 많이 남아 있다. 여기서 다음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 벤담은 왜 블랙스톤을 적대시 했을까?
블랙스톤은 법제 개선을 통해서 사회를 개선시키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정치 체제의 개선이 법제의 개선과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블랙스톤은 사회 개선에서 기존의 질서가 갖는 가치를 무시하지 않았다. 18세기 중엽 이후 가속화된 사회 변화와 함께 발생한 여러 부정적 문제들을 가지고 기존 질서에 함축된 가치 체계가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정책의 효용성을 중시하면서도 기존 질서를 무시하지 않은 블랙스톤은 점진적으로 사회를 개선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역사적 전통의 제한에서 자유로운 인간이란 없기 때문에, 사회의 부정적 문제들을 가지고 기존 질서의 가치 체계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고 대중을 쉽사리 설득할 수 없다. 또한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가치 체계는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블랙스톤은 여겼던 것이다. 블랙스톤에게 사회의 부정적 문제들은 당시 법제와 정치 체제가 자연법에 따른 도덕적 권리 체계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실례로 노예제는 그러한 도덕적 권리 체계에서 허용될 수 없는 것임에도 허용되었다는 것이 블랙스톤의 입장이다.
사회 개선에 대한 블랙스톤의 입장이 온건주의 혹은 점진주의라 할 때, 벤담의 입장은 급진주의이다. 벤담에게 당시 사회의 부정적 문제들은 기존 질서의 가치 체계를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성을 갖는다. 그 가치 체계에 따르면, 자연법에 따른 도덕적 권리 체계는 법 이 전에 주어진 것이며, 법 해석 및 법제의 정당화 기반이다. 더욱이 그 도덕적 권리 체계는 신학적 배경을 갖고 있다. 자연을 이용해 삶에 유용한 것들을 만들고 노동의 대가로 쟁취한 소유는 신에 의해 부여받은 것이다. 종교적 권위가 정치 및 법제 위에 군림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벤담은 법 이 전에 주어진 혹은 법보다 우선하는 자연법과 도덕적 권리들을 부정했다. 이때 그에게 발생하는 부담은 법제 마련 및 정당화에 필요한 이론적 틀이다. 그에게 그러한 이론적 틀은 바로 공리주의이다. 효용의 원칙은 벤담 이 전에도 블랙스톤을 포함한 여러 법학자들이 사용한 것이지만, 그 원칙을 기반으로 공리주의를 체계화하여 법제 마련 및 정당화의 이론적 틀로 삼은 인물은 벤담이다.
벤담에게 법에 우선하는 권리가 있다면, 그것은 딱 하나이다. 바로 시민의 자유이다. 이때 그 자유는 개인들의 합리적 계산을 원활하게 해 주는 장치와 같은 것으로서 법적 보호 대상이 된다. 자유 이외에 법에 우선하는 권리들이란 벤담에게는 불필요한 것이다. 벤담은 법 이 전에 주어진 도덕적 권리를 가정하는 것을 사회 개선의 방해물로 치부했다. 벤담은 추상적인 그러한 권리는 항상 억압자에게 유리하도록 해석되고 법제화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벤담에게 사회에 필요한 권리들은 공리주의의 효용 원칙에 근거해 법제화된 의무들 속에 함축된 것이어야 한다. 자연법 및 자연법에 따른 도덕적 권리를 부정한 벤담은 법보다 우선할 수 있는 도덕적 권리 체계 존재 가능성 자체를 부정해버렸다. 그는 사회의 기능과 맞물린 도덕적 권리들, 즉 법보다 더욱 광의적인 사회적 맥락에서 기능하는 도덕적 권리들의 존재 가능성을 심각히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보게 되듯이, 밀은 공리주의 틀 속에서 신학이나 자연법에 호소하지 않고 그러한 권리들의 존재 가능성을 수용할 수 있는 담론을 생성시켜려 노력했다. 밀이 벤담의 후계자인 동시에 벤담과는 거리를 둔 인물로 평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벤담이나 블랙스톤 모두 사회의 바람직한 개선이 이루어지려면 문제의 공유가 이념보다 우선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한 관점은 현재에도 정착하지 못했다. 벤담과 블랙스톤의 대립 현상과 유사한 현상은 과거 사방도처에서 발견된다. 20세기 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벤담을 그들의 적으로 몰아 비판했다. 벤담이 개인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간주한 것은 맞다. 또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낙관적 입장을 갖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시장에서 개인 간 거래의 활성화가 재화의 재분배를 촉진시켜 다수의 복지가 개선된다는 사고방식을 벤담의 여러 글에서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벤담은 20세기 초 마르크수주의자들의 지적과 달리 자유와 분배 혹은 분배적 정의가 서로 경쟁하는 관계를 맺는다고 여겼던 인물이 아니다. 벤담에게 분배적 정의는 자유와 경쟁 관계를 맺는 가치가 아니다. 그에게 분배적 정의는 불공평에서 기인한 사회적 문제이며, 그 문제를 발생시킨 원인은 경쟁하는 가치들 중 자유를 우선시했기 때문이 아니다. 벤담에게 그 원인은 단지 부적합한 법제와 정책적 실패이다. 또한 벤담은 정부의 시장 개입 최소화를 목적이자 동시에 수단으로 삼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주장한 적이 없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개입을 벤담이 경계한 것은 맞지만, 개인의 자유를 축소시킬 정도로 빈부 차이가 심화되는 경우 정부의 시장 개입 정책은 벤담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벤담의 공리주의가 곧바로 경제적 자유주의로 이어진 것이 아님에도, 20세기 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경제적 자유주의 비판에서 벤담을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벤담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블랙스톤에 대한 벤담의 비판만큼이나 불공평한 것이었다. 블랙스톤, 벤담, 20세기 마르크스주의자 모두 사회 개선에서 문제의 공유가 이념보다 우선한다는, 그리고 문제 해결 과정에서 이념들은 고려 대상일 뿐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 추구하는 이념에 맞추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정당화했으며, 특정 인물 및 집단을 적으로 상정하여 그 인물 및 집단의 입장을 왜곡시켰다.
* 위 글과 관련하여 다음 두 논문을 추천
Posner, R.A.(1976), "Blackstone and Bentham", The Journal of Law & Economics, Vol.19, No.3.
Schorr, D.B.(2009), "How Blackstone Became Blackstonian", Theoretical Inquire in Law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