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이후 영국 정치 및 법학 역사에서 자연법에 따른 도덕적 권리는 법에 앞서 주어진 것 혹은 법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자연법에 따른 도덕적 권리는 법제 정당화의 보편적 원리처럼 여겨졌다. 법에 명시된 법적 권리는 그러한 도덕적 권리에 의해 정당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려 했던 벤담에게 법적 권리의 정당화 원리는 최대 다수의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원리이다. 다른 사람의 행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개인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조율한다고 할 때, 벤담에게 법에 앞서 주어진 혹은 법보다 우선하는 도덕적 권리란 허구이다. 공리주의의 원리만으로 법적 권리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적 권리가 근거해야 하는 또 다른 도덕적 권리를 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의 법적 권리와 의무의 관계에 대한 벤담의 입장은 무엇인가?
<도덕과 입법의 원리 입문(An Introduction to the Priciple of Morals and Legislation)> 제 16장 범죄의 분류를 다루는 곳에서 벤담은 법적 권리와 법적 의무의 논리적 등가 관계를 강조한다. 특정 법적 권리는 그것의 혜택을 받는 사람의 관점에서 본다면 의무와 동일하다. 특정 법적 의무 역시 그것을 준수한 결과에 만족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본다면 권리와 동일하다. 이러한 기준에 따를 때, 누구가 권리 X의 행사로 이득을 얻는다면, X는 그에게 의무이다. 역으로 누구가 의무 X의 준수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면, X는 그에게 권리이다.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준수가 이득의 관점에서 균형을 이룬다면, 그 둘은 논리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적 권리와 의무의 논리적 등가 관계는 교육, 복지를 논할 때는 무리 없이 성립하는 듯하다. 교육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교육의 의무화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며, 또 교육을 통해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교육을 권리로 규정하는 데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에 대해 권리와 의무를 혼용하여 사용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모든 법적 의무가 법적 권리로 여겨질 수 있을까? 실례로 국방의 법적 의무에 대해서도 누구나 그것을 법적 권리로 규정하는 데 동의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는 논외로 하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적 권리와 의무의 논리적 등가 관계에 대한 언급 속에 감춰진 벤담의 속셈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 속셈이란 법적 권리와 의무의 관계에서 의무의 우선성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정치적 관점에서 법적 권리와 의무의 관계를 접근할 때, 그 둘의 논리적 등가 관계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특정 권리 혹은 의무의 선별 과정은 논리적 작업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관점에서 법적 권리와 의무의 관계를 접근할 때, 그 접근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 하나는 통치 집단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민중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통치 집단의 관점에서 법적 권리와 의무의 관계를 접근할 때, 법적 의무가 권리에 우선한다. 실제 법을 제정하는 권력인 통치 집단은 사회 유지에 필요한 규범을 법적 의무로 명시하고, 권리는 그러한 의무에 반영되는 것일 뿐이다. 반면에 민중의 관점에서 법적 권리와 의무의 관계를 접근할 때, 법적 권리가 의무에 우선한다. 민중의 관점에서 법은 개인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여 제정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벤담에 의하면, 법적 의무 속에 함축된 권리는 개인의 다양한 요구와 맞물린 주관적 권리보다 객관적으로 다룰 수 있다. 사회의 규범들은 관찰 가능한 행위를 통해 드러난다. ‘어떤 규범이 특정 행위를 유도한다’는 것은 ‘그 규범이 특정 방식으로 그 행위의 당위성을 함축함’을 뜻하며, 법의 핵심 기능은 그러한 당위성의 타당성을 따져 의무로 규정하는 것이다. 벤담에게 권리는 그러한 법적 의무 속에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 의무가 권리에 우선한다. 법적 의무가 근거하는 규범은 사회적 타당성 검토를 통과한 것이며, 그러한 타당성 검토에서 행위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따질 필요가 없다. 법적 의무와 권리의 관계를 통치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이렇게 의무를 우선시하는 것은 법제의 객관성 확보에 유리하다는 것이 벤담의 입장이다. 그런데 법 제정의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있는 통치 집단이 기득권 유지를 목적으로 법을 농락한다면, 법제의 객관성 운운은 다수에 대한 소수의 억압을 정당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는 벤담에게 이러한 고민을 해소시켜 주는 탈출구와 같다. 벤담은 주기적인 선거로 민중이 정부를 심판하는 것에 의해 정치적 권력의 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벤담은 통치의 관점에서 법을 접근했기 때문에, 그의 민주주의는 일정 기간 동안 정부의 독재를 허용하면서도 선거를 통해 정부의 권력을 제어하는 방식의 정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벤담과 연관된 법 실증주의는 법의 근간을 관찰 가능한 사회적 현상들로 설정한다. 법은 사회적 현상들에 근거한 인간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경험 이전에 주어진 자연법이나 자연법에 따른 도덕적 권리와 같은 것을 가정해서는 안 된다. 또한 법과 도덕의 분리를 강조한다. 법은 법이고 도덕은 도덕이기 때문에, 법 자체에 어떤 도덕적 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법제가 그러한 도덕적 가치를 가정하여 정당화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법과 도덕의 분리, 즉 법제를 도덕과 분리하여 다루어야 한다는 입장이 반드시 둘 사이의 상호 관계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강한 의미의 혹은 배타적 법 실증주의(exclusive legal positivism)과 약한 의미의 혹은 포괄적 법 실증주의(inclusive legal positivism)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를 맺는다.
배타적 법 실증주의 전통에 따르면, 법은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거나 합의한 도덕적 권리들에 의해 제한될 필요가 없다. 배타적 법 실증주의 옹호자들 상당수는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는데, 법이 다루는 사회적 현상들, 특히 행위 규범을 반영하는 현상들은 궁극적으로 자연 과학의 지식에 근거해 환원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법학자 켈젠이 배타적 법 실증주의의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을 비판한 이후, 법은 사회 구성원들 다수가 공유 가능한 도덕적 권리들을 부분적으로 고려해 제정되어야 한다는 포괄적 법 실증주의가 주목을 받았다. 행위 규범을 반영하는 사회적 현상들을 자연 과학에 근거해 설명할 수 있더라도, ‘이것은 이렇다’는 식의 서술적 설명 방식에서 ‘이런 행위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규범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연법과 같은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개념을 동원하여 규범성을 정당화하는 것은 법 실증주의 옹호자들에게는 형이상학적 환영에 사로잡힌 것에 불과하다. 법에서 고려하는 당위성은 어디까지나 특정 행위 규범들에 대한 다수의 합의 가능성, 그리고 자유주의와 같은 특정 정치 체제의 타당성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잠정적인 것이다. 정의를 다수가 공유 가능한 도덕적 권리들의 모임으로 규정하는 경우, 포괄적 법 실증주의는 특정 시대에 요구되는 정의를 법제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 실증주의 전통에서 벤담을 다룰 때, 그는 배타적 법 실증주의 옹호자라고 할 수 있다. 행위 규범을 반영하는 사회적 현상들 모두는 벤담에게는 쾌락 증진과 고통 회피라는 자연적 성향에서 기인한 것이며, 도덕은 긍극적으로 그러한 자연적 성향에 근거한 심리학적 설명의 대상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벤담은 통치의 관점에서 법적 의무를 권리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여기에는 개인들의 다양하며 주관적인 요구와 맞물린 권리들을 먼저 고려하여 법제를 마련하는 것보다는 통치의 관점에서 의무를 먼저 고려하여 법제를 마련하는 것이 더욱 객관적이며 효율적이라는 벤담의 동기가 깔려 있다. 특정 규범을 법적 의무로 규정하고 그 타당성을 따지는 벤담의 기준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원리이다. 그 기준에 따르면, 사회 전체에 걸친 쾌락의 총합을 높이는 결과를 산출하는 행위에 대해 그렇지 못한 행위보다 더 강제적인 법적 당위성을 부여해야 한다. 벤담에게 사회의 정치적 질서란 법 이전에 고려할 수 있는 도덕적 권리들로서의 정의보다는 효용 원칙에 따른 유용성에 기반을 둔 것이다. 벤담에게 정의는 공리주의에 따라 잘 짜여진 법제에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의가 실현되지 못한 사회일수록 당연히 다수가 만족할 수 없는 사회라는 것은 벤담도 인정한다. 정의를 집단적 차원에서 다수의 요구와 맞물린 권리들이라고 할 때, 정의가 실현되지 못한 사회 상태는 법제의 수정을 암시하는 단서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정의 자체가 법제의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원리는 벤담에게는 법제 마련의 기준이자 동시에 목적이며, 정의는 법제의 실질적 기능을 평가하는 수단이다. 여기서 심각히 고려해야 할 물음은 다음이다.
• 법적 권리와 의무의 관계를 논할 때, 통치 집단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과연 민중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보다 공리주의의 원리에 더 부합하는 것일까?
위 물음에 대한 벤담의 대답은 충분치 못하다. 통치의 관점에서 법적 의무를 권리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법제의 객관성을 마련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벤담을 주장을 일단 수용하자. 그 주장에는 법적 권리의 사회적 기원이란 통치 집단에 대항한 개인들의 다양하며 주관적인 요구들이라는 입장이 깔려 있다. 그러한 개인들의 다양하며 주관적인 요구들을 법에 우선하는 도덕적 권리, 특히 추상적인 인권과 같은 것으로 정당화하여 법적 권리들로 허용하는 경우, 지나치게 많은 법적 권리들을 허용해야 한다. 이때 법적 권리들에 대응하는 의무들의 수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벤담의 법 이론 틀에서 법적 권리와 의무는 서로 대응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법적 권리들의 수적 증가와 의무들의 수적 증가로 이어진다. 개인들의 다양하며 주관적인 요구들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하여 법적 권리를 의무보다 우선시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사회가 무정부주의 상태로 빠지기 쉬워지고, 결국 의무들의 수적 증가가 발생하여 개인의 자유의 억제와 함께 다수의 행복은 실현될 수 없다고 벤담은 생각한 것이다. 정치 세력이 주기적으로 물갈이 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 틀 속에서 좀 더 객관적으로 다룰 수 있는 법적 의무를 권리보다 우선시하는 경우, 의무의 지나친 수적 증가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벤담의 공리주의 틀 내에서 법적 권리를 의무보다 우선시해야 한다고 여긴 동시대 인물들도 있었다. 실례로 동인도 회사에서 안정적 자리를 잡기 전까기 벤담의 재정적 후원을 받았던 제임스 밀(J. Mill)을 들 수 있다. 제임스 밀은 <법제(Jurisprudence 1825)>에서 법적 권리가 의무에 우선한다는 입장을 펼쳤다. 법과 정치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법적 권리의 수를 조정할 수 있다면, 법적 권리를 의무보다 우선시하는 것이 더 민주적이라는 것이다. 제임스 밀의 이러한 입장은 공리주의 틀 내에서 법적 권리와 의무의 관계를 통치 집단의 관점이 아니라 민중의 관점에서 접근한 결과이다. 벤담과 제임스 밀 모두 공리주의를 근간으로 급진적 정치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이다. 법적 권리와 의무의 관계에 대한 벤담과 제임스 밀의 입장 차이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 두 사람 사이의 짧은 기간 동안에 산업의 발전으로 사회의 변화가 가속화되었고, 중산층과 노동자 계층의 수적 확장과 함께 개인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법제에 반영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러한 인식의 확산 속에서 제임스 밀은 민중적 관점에서 법적 권리와 의무의 관계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보게 되듯이, 정의에 기반을 둔 사회의 정치적 질서 개념이 공리주의와 양립 가능하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입장은 부분적으로 아버지 제임스 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