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서......

  내가 어느 항구를 향해 가야 할 지를 모르고 있다면

그 어떤 바람도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19년 신중년 사회공헌활동 사전 직무교육 때 강사한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 살 수 없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공헌함'은 행복의 초석이며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을 느낀 연수였고  70대는 신중년이라니 룰루랄라!!!!

 

 강화도 여행!

 두 번 다녀온 곳이지만 그 먼 길을 여행지로 선택해서 떠난 날은

봄비가 내린다는 예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이른 아침 7시 출발. 

대구시 시니어 대학생들로 구성된 '여동회'에서

80여명이 떠난 당일 여행은 강회도 보문사, 강회도 콘돌라,석모도미네랄 온천 족욕,

광성보를 돌아 보는 코스였는데 우산을 받쳐 들고 사진 촬영에....... 무리였다.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 피로가 급습해 왔지만  그래도 여행은 설렘을 주는 삶의 활력소!

 

 

 

 

 

                            강회도 곤돌라

 전망대까지 총 연장 700m 구간을 30기의 캐빈으로 운영.

강화 씨사이드 리조트 곤돌라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서해안 낙조를 편안하게 전망할 수 있는 시설로

탑승객 2,400명/h, 루지 썰매 1,200대/h를 동시에 수송할 수 있는 전세계 최초의 유일한 시스템이란다. 

곤돌라를 타고 오르면 3면으로 바다가 눈앞으로 펼쳐지지만 우천관계로 시야가 흐려 보이지 않는 아쉬움 

곤돌라 안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낙조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니 1박2일로 다시 와야할듯......

 

 

 

 

 

 



 

 

 

전망대

 

 

 

 

 

 

 

 

봄비가 내려 북녁땅을 볼 수 없는 아쉬움

 

 

 

 

 

 

해수관음성지

  보문사(普門寺)

 

 

 

 선덕여왕 4년(635) 회정대사가 금강산으로부터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절을 세우고 普門寺라 하였다.

보문사는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서 절을 창건 후 14년이 되던 해에

고씨성을 가진 어부가 바닷가에서 불상과 나한상 22구를 그물로 낚아올려

절의 우측 석굴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 때로부터 이 석굴에 기도를 하면 기적이 이루어져 많은 신도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절 뒤편에는 마애석불이 조각되어 있으며 그 앞에서 보이는 서해풍광 또한 일품이다.

보문사 경내에는 300여명의 승려들이 수도했을 당시 사용하였다는 큰 맷돌과

향나무, 1975년에 주조한 범종이 있다.

 

 

 

 

 

 

 

 

 

 

 

 

 

천인대에 조성한 500나한

 

 

 

 

 

 

 

 

 

 

 

                                                                         법음루와 범종각

 

 

 

                                               보문사 와불전

 

 

 

보문사 와불

 

 

 

 

 

 

 

 

                                                                             보문사 석실

 

 

 

 

 

 

 

 

 

 

 

 

 

 

 

 

 

 

 

 

 

 

 

 

 

 

                                                                                        마애석불 좌상 보러 가는 길

 

 

 

                                                                                          용왕단과 소원지

 

 

 

                                                                           눈썹바위

 

 

 

                                                                             보문사 마애석불 좌상

 

 

 

 

 

 

 

 

 

 

신미양효의 치열한 격전

광성보

 

 

 광성보는덕진진,초지진,용해진, 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이다.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1233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외성을 쌓았는데,

이 성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성으로 바다길을 따라 길게 만들어졌다.

광해군 때 다시 고쳐 쌓은 후 효종 9년(1658)에 광성보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숙종 때 일부를 돌로 고쳐서 쌓았으며, 용두돈대, 오두돈대,화도돈대,광성돈대 등 소속 돈대가 만들어 졌다.

영조 21년(1745)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었는데 ‘안해루’라 하였다.

이곳은 1871년의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용감히 싸우다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하였으며 문의 누각과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파괴되었다.

1976년 다시 복원하였으며, 광성보 경내에는 신미양요 때 순국한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와

신미순의총 및 전적지를 수리하고 세운 강화전적지, 수리한 것을 기록한 비석 등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