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클레이 코트에서 벌어지는 프랑스 오픈 테니스 토너먼트. 올해도 파리의 에펠탑을 저멀리 배경으로 벌어졌는데, 예년처럼 비가 내려 경기가 중단되고 선수들은 운동화에 묻어있는 진흙을 털어내면서 코트 왼쪽 오른쪽을 뛰어다니면서 열심히 싸웠다. 그 모습 자체에서 에너지를 느끼고, 이기고 싶은 열망을 느끼고, 감탄하고 ... 그래서 한 순간 순간을 즐기게 된다.


<여자 결승 - 드디어 해낸 할럽!>

아기 엄마가 된 세레나 윌리암스가 캣츠우먼 의상 - 까만 잠수복? -을 차려입고 출전했지만 흉부 근육 (pectoral muscle)의 통증으로 중간에 기권을 하고 말았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출산한지 일년도 되지 않아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을텐데 조급하게 출전할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하고. 뭔가 증명하고 싶었을까.


암튼, 그녀가 기권을 하고 나자 우승의 길이 갑자기 훤하게 열리면서 "더 많은 가능성"에 희망을 가진 선수들이 더 열심히 뛴 느낌. 결승은 작년 US오픈 우승자인 미국의 슬로언 스티븐스와 루마니아의 시모나 할럽의 대결이었다. 특히 시모나 할럽은 이번이 네번째 그랜드 슬럼 결승전이었고 세번째 프랑스 오픈 결승전에 오른 기회였기에 모두들 내심 "이번엔 이겨야 할텐데"하는 심정이었다. 지난 호주 오픈에서 워즈니아키가 드디어 우승을 해냈을 때와 비슷하달까. 심적 부담이 많아서인지 첫 세트를 내준 할럽은 역전을 하여 마지막 세트를 6-1로 완승하면서 짜릿한 승리를 했다.  


<남자 결승 - 11번째 우승을 이뤄낸 나달>

올해 프랑스 오픈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다면, 아마도 이탈리아 선수인 마르코 체키나토 (Marco Cecchinato, 25세, 랭킹 75위)의 등장일게다. 몇년전 경기결과를 조작하는 사건에 연루되어 출전 금지를 당했던 그는 항소끝에 불명예를 씻었는데, 여전히 그를 향한 시선이 별로 곱지 않았던 것도 사실인듯. 이런 저런 이유로 그랜드 슬램에 출전할 기회 (이번이 네번째)도 별로 없었고 항상 첫라운드에서 탈락했었는데, 이번 프랑스 오픈에서는 랭킹 10위, 8위선수를 물리친 후 죠코비치까지 물리치면서 준준결승에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의 경기를 지켜보니 그냥 어쩌다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죠코비치와의 경기를 보면 감정적이기 쉬운 이탈리아 선수답지 않게 (ㅋㅋ) 아주 차분하게 경기를 운영하고 흥분하거나 덤비지 않고 자기 실력을 발휘할 줄 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죠코비치는 자꾸 새로 올라오는 신인선수들에게 패배를 당하니 짜증이 날 만도 하다. 이번 패배후에 인터뷰에서 성의없이 "I don't know"만 되풀이했다가 미디어로부터 엄청 욕을 먹는 분위기.


지난 15여년간 페더러, 나달, 머레이, 죠코비치가 장악해오던 남자 테니스계에서 이제 서서히 새로운 신인들이 "심각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하긴 그럴 때가 되긴 했다.


암튼 이번 프랑스 오픈 결승에는 모처럼 페더러-나달 세대 (주로 30대)가 아닌 24세의 신세대 선수 도니미크 티임이 결승전에 올라 나달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소위 "신세대"라고 할 수 있는 선수가 4대 메이져 결승에 오른 것은 2016년 캐나다의 라우니치가 윔블던 결승에 오른 이후 처음이다. 특히 지난 해 모든 메이져와 올해 호주 오픈까지 페더러와 나달이 나눠 가져간 상황에서 뭔가 새로운 얼굴이 나타난 것만 해도 손뼉을 쳐줄 일이다. 게다가 티임은 나달이 올해 클레이 시즌을 휩쓸고 있던 와중 마드리드 오픈에서 나달을 이겼고 지난 해 로마 오픈에서도 나달을 이긴 적이 있어 완전히 희망이 없는 경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1세트의 긴장이 나달의 승리로 끝나면서 결국 세트 스코어 3-0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무리 떠오른 우승 후보긴 하지만 그래도 생애 첫 그랜드 슬램 우승에 올랐다는 걸 감안하면 끝까지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려 애씀으로써 아주 좋은 경기를 보여줬다고 생각된다. 독일의 신예 아즈베레도 함께 메이져 우승후보로 거론되지만 아직까지 메이져 결승에 오른 적이 없으니 티임의 자신감이나 입지가 좀 더 좋아진 건 아닐까 싶다.


지난 호주 오픈 도중에 부상으로 기권한 이후 심신으로 고생했던 나달은 오늘 시상식에서 눈물을 훔치는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2005년 혜성처럼 나타나 프랑스 오픈 우승을 해내 모두를 놀라게 했던 19세 소년이 이제 32세의 청년이 되어, 여전히 자신이 사랑하는 스포츠, 자신을 사랑하는 팬들 곁에 있을 수 있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울컥해버린거다. 


우승후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몸이 버티는 한, 자신이 테니스를 함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한, 계속 테니스 선수로 뛰겠다고 밝혔다. 그게 대체 앞으로 얼마나 더 갈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