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윔블던 대회는 많은 놀라운 일들로 가득찼다. 


우선 페더러의 좌절. 우승을 할거라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받으면서 룰룰루 쉽게 16강에 올랐던 그는 남아공출신의 꺽다리 앤더슨에게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배를 당했다. 


그렇게 페더러를 꺽은 앤더슨은 대학교때 (테니스 선수치고 대학교 다닌 사람이 별로 없지만) 함께 테니스를 치던 미국의 이스너와 4강 대결을 하게 되었는데 무려 6시간 36분이라는 마라톤 경기를 벌인 끝에 승부가 났다. 5세트는 타이 브레이크가 없다는 윔블던 규정에 따라 끝없는 줄다리기를 했는데 최종 스코어는 26-24. 결국 4세트후에 4세트를 더 경기한 거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다. 그나마 코트를 여기저기 뛰어나니기 보다는 강서브로 대결하는 경기였기에 조금 나았지만, 그래도 인간적으로 너무 심한 것 아닐까. 경기 후 두 사람은 결과에 따른 감정보다는 이제 끝났다는 안도의 모습이 컸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달와 델 포트로와의 16강전은 테니스가 이래서 재미있구나를 느끼게 해준 명승부였다. 4시간 47분간 두 사람 모두 공 하나하나에 혼신을 다 쏟아 경기하는 열정과 마치 체스를 두듯이 이런 저런 방법을 다르게 써보는 모습이 재미를 더했다. 많은 미디어에서 올해 최고의 경기라고 꼽았을 정도. 


앤더슨-이스너전이 길어지는 바람에 이틀간 진행된 나달과 죠코비치 4강전도 그에 못지 않았다. 5시간 15분이 걸렸지만, 죠코비치가 세트 스코어 2-1로 앞선 상황에서 경기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나달에 불리한 상황이었는데 다음 날 경기는 나달이 2-2를 만들면서 다시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사실 그 전날 밤 세번째 세트 타이 브레이크에서 너무나 많은 기회를 놓친 나달은 많이 아쉬워서 잠도 잘 못잤을 것. 그런데 그 다음날 경기에서도 그는 많고 많은 기회를 어쩐 일인지 흘려보내는 일이 많았다. 결과는 3-2, 5세트 10-8. 그렇다고 죠코비치가 날로 승리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전 델 포트로와의 경기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결과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경기가 끝난 후 나달은 자신이 패자라는 사실보다는 수준 높은 경기 내용에 좀 더 촛점을 맞추는 느낌.


죠코비치는 팔 꿈치 부상으로 오랫 동안 투어를 하지 못했고 올해 프랑스 오픈에서 랭킹 72위에 불과한 무명의 선수에게 어이없이 패배한 후 인터뷰에서 기자들에게 매너없는 모습을 보여 비판을 샀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윔블던에 출전 안 할지도 모르겠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는데, 어찌 된 것인지 마음이 변해서 출전을 했다가 결국 우승을 하게 된 것. 혹자는 나달과의 대결이 있었기 때문에 죠코비치가 이렇게 예전 수준으로 경기할 수 있게 된 거라고 한다. 경쟁을 통하여 예전 실력이 나오게 되었다? 그래도 만일 나달-죠코비치가 4강전이 아니라 16강전이었다면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여전히 갸우뚱하게 된다. 


암튼 만신창이가 된 몸을 질질 끌고 결승전에 나온 앤더슨이 패배한 것은 너무 당연한 게 아닐까. 그래도 이번이 그의 두번째 메이져 결승 진출이었기에 그에겐 의미가 있을 듯. 이스너와 아주 유사한 게임을 가진 그는 이스너보다 좀 더 날카로운 스트록을 구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자 부문에선 또 많은 사람들이 우승할 거라고 예상한 아기 엄마 세레나 윌리암스가 결승전에서 독일의 커버 (한국에선 '케르버'라고 부르는 듯)에게 패배했다. 커버는 스태피 그라프 이후 최고의 독일이 낳은 여자 테니스선수로 자리 잡았다. 세레나는 패배후 인터뷰에서 커버의 공이 생각보다 쎄서 약간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을 쎄게 치기론 세레나인데 그녀를 놀라게 했을 정도면 어느 정도인건지? 


올해 윔블던대회의 결과는 모두의 예상과 다른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훨씬 더 흥미로왔던 걸로 기억될 듯.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남자 4강에 오른 모든 선수가 30대였고, 여자 결승에 오른 두 선수도 모두 30대라는 점이다. 도대체 젊은 선수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10년이 훌쩍 넘도록 예전의 선수들이 계속 준결, 결승에 진출하는 이유는 그들이 정말 100년에 나올까 말까한 천재들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젊은 선수들의 정신력이나 헝그리정신이 예전보다 못하기 때문일까.


한국의 정현 선수는 발목부상을 뿌리치고 올해안에 다시 토너먼트에 참가할 수 있는 건지... 이런 저런 생각이 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