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US Open은 일단 날씨가 무지하게 덥고 습했다. 기초체력이 단단하게 단련된 선수들도 헉헉 거리고 고개를 절래절래... 얼음 수건은 물론이고 아이스 조끼도 등장하고, 선수들이 휴식을 취할 때는 선풍기가 돌아가고... 2주동안 모든 선수들이 그야말로 땀 흘리며 뛰었다. 


<여자 부문>


여자부문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결승전이었다. 


일본선수로 처음으로 그랜드 슬램 우승자가 된 나오미 오사카. 이제 스물인 이 선수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세살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옮겨와 자랐기에 미국인이라고 해도 될 듯. 아버지는 아이티인이라 혼혈인데 일본에서 태어났을 때 편의를 위해 어머니의 성을 땄단다. 젊은 선수치고 밝고 철없는 느낌보다는 뭔가 한이 많은 듯한 이미지다. ㅋㅋ 어떤 면에선 지난 동계 올림픽때 스노우 보드 금메달을 따낸 클로에 킴을 떠오르게 하는 선수다. 암튼 경기 내용상 누구도 뭐라할 수 없이 좋은 경기를 보였고 앞으로 기복없이 플레이한다면 메이져 대회에 자주 등장할 것 같다. 


문제는 이 결승경기에서 벌어진 드라마다. 여자 테니스에서 드라마라면 단연 세레나 윌리암스. 그녀의 코치가 명백한 손짓을 하면서 코칭을 하고 있는 것을 심판이 보고 1차 경고를 주었고, 세레나는 최대한 울화를 참으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규칙상 코치의 잘못도 경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수십년 프로생활을 한 그녀도 잘 알고 있었을 듯. 암튼, 그후에 자신의 서브경기를 지키지 못한 세레나는 드디어 화를 참지 못하고 라켓을 내던져 박살을 냈다. 2차 경고. 한 포인트를 상대에게 내어주는 벌칙이다. 1세트를 2-6으로 완패당한 후 2세트에서 3-4으로 자신이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 경기를 0-15으로 시작하게 된 세레나는 완전히 뚜껑이 열려서 폭발하고 말았다. 


그래서 심판에게 아주 무례한 태도로 끝없는 악언을 계속 해대었다. 마치 "너, 내가 누군줄 알고 이러는 거야?" 라는 태도였다. 자신이 최고라는 안하무인식의 마음가짐으로 "당신은 평생 내 경기에서 심판을 하지 못하게 될거야"는 말도 서슴치 않았다. 그녀는 과거에도 화를 참지 못하고 심판들에게 악언을 한 경우가 심심치 않았었다. 자기 맘에 들지 않은 콜을 한 라인 맨에게 "또 한 번 그러면 테니스 볼을 네 목구멍에 쑤셔 넣어버릴거야"라고 한 것은 잘 알려진 에피소드이다. 암튼, 무례한 폭언을 듣다 듣다 너무 심했다 판단한 심판은 3차 경고를 주었고, 이는 한 포인트가 아닌 한 게임을 벌칙으로 주는 거였다. 결과는 3-5. 


대회 관련자까지 코트로 불러낸 그녀는 급기야 심판의 조치는 "성차별적"인 거라는 주장까지 이어갔다. 온통 난리를 한참 벌이다가 어찌 어찌하여 코트로 돌아간 세레나는 그 게임을 이겨 4-5로 만들어냈지만, 다음 게임에서 오사카가 다시 한번 깨끗한 승리를 하여 결국 패배하였다. 


(이번 대회 중 너무 땀에 젖어버린 셔츠를 갈아입은 여자 선수에게 경고를 준 심판이 있었는데, 그것은 완전한 "성차별"이다.)


23번의 그랜드 슬램 우승자인 그녀. 많은 팬들이 있고 많은 젊은 선수들이 우러러보는 그녀. 스포츠는 이기는 날도 있고 지는 날도 있는 법인데, 자신의 ego가 너무 커져서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일까. 최근에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된 그녀. 여자는 아이를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고 했는데, 예외는 있는가보다. 스무살의 새로운 챔피언이 탄생했는데, 창피한 줄도 모르고 감정처리를 못하면서 어리석은 주장을 계속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과, 누군가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 능력은 다른 것이란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게다가 그러한 분별력없는 그녀의 행동에 미국의 무식한 관중들은 무조건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충격적이었다. 아, 저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뽑힐 수가 있었구나... 황당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남자 부문>


준결에 이르기 까지 남자 부문은 여자 부문보다 좀 더 흥미로왔다. 


일단 페더러가 16강전에서 탈락했다는 점. 호주의 밀만이라는 선수에게 어이없는 패배를 당했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29세의 밀만은 어깨를 비롯하여 2번의 수술끝에 프로 테니스선수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주택융자 브로커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던 선수인데, 이번 승리로 인하여 갑자기 스타가 되었다. 그가 죠코비치까지 이겨낼까 싶었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ㅎㅎ


또한 나달과 도미니크 팀과의 대결도 주목할 만했다. 물론 5세트까지 끌고가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 결국 승리한 나달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테니스를 좀 아는 사람으로서 그 경기를 지켜보았다면 객관적으로 팀이 훨씬 나은 경기를 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나달은 그날 운이 조금 더 좋아서 이긴 거지, 실력으로 이긴 것은 아니라는 것. 나달이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아, 드디어 나의 한계가 왔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는 매치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하드 코트에선 말이다. 


체력적으로 무리한 4-5시간길이의 경기를 이어가던 나달은 결국 준결에서 기권하고 말았다. 무릎 통증이 아주 심했던 모양. 그의 무릎은 특히 하드 코트에서 문제가 되었었고, 그의 경기 스타일을 보았을때 지금까지 경기를 해온 것이 놀라울 정도다. 아무리 나달의 팬이지만, 팬이기 때문에 그의 위대함을 손상시키는 게임을 더이상 지켜보고 싶지 않고 또 본인이 고통을 느끼면서까지 경기를 계속해야 할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다. 이미 테니스 역사상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걸 이룬 선수니까. 


이번 기회에 페더러와 나달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보고 공동 기자회견이라고 열어서 이제는 후배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주기로 했다고 발표하는 게 어떨까 상상해본다. ㅋㅋ


죠코비치와 델 포토로 (엄마 말씀은 스페인어로 델 뽀또로란다 ㅎㅎ) 간의 결승은 마치 축구경기를 응원하는 듯한 아르헨티나 군단이 열심히 "올레 올레 올레 올레오~"를 외쳐댔지만, 델 포토로가 살짝 부족했다. 2세트는 타이 브레이크까지 갔지만 실수 몇 번이 결국 패배로 이어졌다. 델 포토로도 부상을 여러번 겪고 힘든 재활을 해낸 의지의 선수이긴 한데, 게임을 할 때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승부근성이 좀 딸린다. 죠코비치는 별로 힘든 경기를 치르지 않고 다른 선수들이 서로 치고 받는 사이에 어느 덧 또 하나의 그랜드 슬램을 하나 보탰다... 고 하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이번 대회의 남자 부문은 결승보다는 16강에서 준결까지의 과정이 흥미진진했다고 하겠다. 앞으로 세계 랭킹 구도에 변화도 올 것 같고 연말까지 다른 대회들도 있지만 톱 랭킹을 차지하고 있는 노장들이 뭔가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우리의 정현은 어디로 간 것일까. 1라운드만 이기고 2라운드에서 완패하여 짐을 싸야 했던 정현. 발바닥이 아직 완치가 안되었다는 썰이 사실일까. 만일 사실이라면, 아직 나이가 어릴 때, 시간이 있을 때, 완치가 될 때까지 경기를 쉬고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건강관리를 해야 할텐데... 지난 번 호주 오픈때 반짝 떴다가 사라지는 별이 되기 싫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