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


약현성당정면/문화재청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건물로 1892년 프랑스인 신부 코스트가 설계·감독하였다.

길이 약 32m, 너비 12m의 십자형 평면 구조이며 비교적 소규모의 성당이다. 옆면 창

은 처마 높이가 낮아 뾰족아치가 아닌 원형아치로 되어 있으나, 앞면의 출입구와 옆면

좌우로 돌출한 출입구 창 부분이 각기 뾰족아치를 이루어 고딕 모양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교회건축이라는 점과, 순수한 고딕양식은 아니지만 벽돌로

된 고딕성당으로 후세의 한국 교회건축의 모범이 되었다. 그리고 천주교 박해시대에

수많은 순교자를 낸 서소문 밖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 있다는 장소의 역사성으

한국 천주교회사와 건축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정동교회/문화재청

고종 광무 2년(1898)에 준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개신교 교회건물이다. 본래

는 십자형으로 115평이었으나 1926년 증축때 양쪽날개부분을 넓혀서 현재는 175평의

네모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원래 건물은 그대로 두고 양 날개 부분만 늘려지었기 때문

에 건물의 원래모습에는 손상이 없다.


층건물로 벽돌쌓기를 하였으며, 곳곳에 아치형의 창문을 내어 고딕양식의 단순화된

교회당 모습을 이루고 있다.돌을 다듬어 반듯하게 쌓은 기단은 조선시대 목조 건축의

솜씨가 배어있어 주목된다.이 교회당의 종은 장식없는 내부 기둥들의 겉모습과 함께

소박한 분위기를 지니기 있다. 소박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북미계통의 단순화된 교

회건물이다.

 


명동성당/문화재청


명동성당은 코스트(Coste) 신부가 설계하였고 파리선교회의 재정지원을 얻어 건립

되었다. 본래 순교자 김범우의 집이 있던 곳으로, 블랑주교가 김 가밀로라는 한국인

명의로 사들였다.그후 1887년 한국과 프랑스사이에 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1898년 완

성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로 쌓은 교회이며, 순수한 고딕식 구조로 지어졌다.평면은 십자

형이며 본당의 높이는 23m, 탑의 높이는 45m이다.고딕양식의 장식적 요소를 배제하

면서 그대로 본떴고, 공간의 고딕적 느낌은 외부보다 내부에서 더 강하게 주어졌다.


건축에 사용한 벽돌은 우리 나라에서 만든 것으로, 그 모양이 20여종에 달할 뿐 아니

라 색깔도 붉은것과 회색 2종류가 있다.이들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조화있고 아름

다운 건물을 완성하였다.

 

                                          성공회 성당/문화재청

 

로마네스크 양식의 3층 교회건물이다.조선 고종 27년(1890)에 우리나라에 온 성공회

1대 주교인 코프의  전도활동으로 성공회의 기초가 잡히게 되자, 3대 주교인 마크 트

롤로프가 건립하였다.영국인 딕슨의 설계로 감독관 브로크가 1922년에 공사를 시작

하여 1926년 5월에 완공하였다.

十자형의 평면구조를 갖고 있는 이 교회는 기초부와 뒷면의 일부는 화강석을 사용하

고 나머지 벽체는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지었다.건물 전체에 공간상의 높낮이를 다르

게 하여 율동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종탑부는 중앙의 큰 종탑과 그 앞의 작은 종탑이 생동감있게 연결되어 있다.서

울 성공회성당은 일제 침략기에 서양인에 의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설계된 본격적

인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대구 계산성당/문화재청

1886년 로베트(Robert.A.P)신부가 경상도 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하다가 1897년에 현

재의 계산동 성당 자리에 있던 초가집를 임시성당으로 사용하였다.1899년에 한식 목

조 십자형의 성당을 지었으나, 다음해 화재로 불에 타 1902년에 현재의 성당을 짓게

되었다.

설계는 로베트 신부가 하고 중국인이 공사를 맡았다고 한다.당시 대구에서는 처음인

서양식 건물로, 입구에 두 개의 종각에 우뚝 솟아 ‘뾰족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성당

건축은 고딕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화강석 기단 위에 붉은 벽돌을 쌓고

검은 벽돌로 고딕적인 장식을 하였다.

 

대구 지방에서 유일한 1900년대 성당 건축물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대구 제일교회/문화재청

경북지방에 처음 생긴 기독교회로, 선교사들이 이 지방을 개화시키기 위해 근대적 의

료 및 교육을 전개했던 곳이다.고종 32(1895) 부산에 있었던 북장로교 선교본부가 대

구로 옮겨지고, 광무 2년(1898)에 기와집 4동을 교회당으로 사용하였다.

계속해서 신도가 늘어 1908년에 재래양식과 서구 건축양식을 합작시킨 새로운 교회

당을 지었다.1933년 신도들의 헌금과 중앙교회의 성금으로 교회당을 새로 짓고 제일

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그 후 1937년에 이주열 권사가 높이 33m의 종탑을 세웠고,

1969년에 내부공사를 하고 1981년에 건물 뒤에 156평의 성전을 늘렸다.

현재 이 건물의 전체적인 양상은 평면이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이고, 앞면 중앙에 현관

을 두고 오른쪽에는 종탑을 세운 간결한 고딕 건물이다.1층은 사무실·유치원·청소년

예배실로 사용하고, 2층은 전체를 예배실로 사용하고 있다.

대구 제일교회는 대구의 수 많은 교회 건물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고, 기독교가 근

대화에 기여한 상징물로서 근대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전주 전동성당/문화재청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풍남문 밖에 지어진 성당이다.프랑스 신부인 위돌박이 설

계·감독을 하였고 1914년 완성되었다.회색과 붉은색 벽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은 겉모

습이 서울의 명동성당과 비슷하며,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 매우 아름운 건물로 손

꼽힌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

 


성공회강화성당/문화재청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 11월 15일 건립된 동서길이 10칸, 남북길이 4칸인 한식

중층건물이다.이 성당은 서양의 바실리카식 교회건축 공간구성을 따르고 있으나 가

구 구조는 한식 목구조와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는 점이 특징이다.

구조와 외관을 한국전통 건축양식에 적응시킴으로서 외래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

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성공회 강화성당은 서쪽에 출입문을 배치하

여 서구 형태를 취하면서 전체적으로는 배(船)모양을 본 떠 뱃머리인 서쪽에는 외삼문

및 내삼문과 동종을 배치하고, 중앙에는 성당을 두었다.

후미에는 사제관을 배치하여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며 우리나라 건축사 연구에 귀중

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영천자천교회전경


자천교회는 1903년 4월 권혁중이 설립한 교회로, 현 교회당 건물은 그 해 10월에 건립

되었다고 하는데 당시의 관련자료나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이 건물은 우진각 지붕의

단층 목조 한옥 교회당으로 평면은 장방형으로 정면 2칸이고, 측면 4칸이다.

내부 천장은 지붕틀이 그대로 노출된 연등천장이며, 지붕틀은 절충식의 트러스구조이

나 구조수법이 다소 조잡하다.횡칸에는 각각 2개씩의 지붕틀을 설치하여 2개의 기둥이

평보를 받치고 있는데 부재의 치목이 거칠고 결구수법이 격식에 맞지 않아 보이나 전

체적으로 자연스러운 구조미를 느끼게 한다.

이 건물의 내부공간 구성적 특징은 부재의 치목과 결구수법 외에도 내부 열주에 의해

공간이 양분되어 있고, 열주 사이에 남·녀석을 구분하기 위해 칸막이를 설치하였던 흔

적(장부구멍)과 강단부에서 중앙 열주를 멈추어 넓게 하고, 양쪽으로 기둥을 세워 예

배석을 향한 시선의 방해를 막음과 동시에 강단과 예배석의 공간을 분절시켜 주고 있

는 점이다.

개신교 선교 초기의 시대적·건축적 상황과 교회건축의 토착화 과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



김제금산교회/문화재청

1908년 전주선 교부의 데이트(Lews Boyd Tate) 선교사기 지은 한옥교회이다.조선

예수교 장로회의 사기(事記)에 의하면, 처음의 교회는 1905년에 5칸으로 지었으나,

190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현재 금산교회 옆으로 1988년에 새로 지은 교회본당과 사택이 들어서 있다.건물은

남북방향으로 5칸이며, 여기에서 동쪽으로 2칸을 덧붙여 뒤집힌 ㄱ자 형태를 이룬다.

내부는 통칸으로 이루어졌으며, 남북방향 5칸과 동쪽방향 2칸이 만나는 곳에 강단을

설치하여 남쪽으로 남자석, 동쪽으로 여자석을 분리하여 마련하였다.

이는 한국 초기 교회건축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로 한국 전통사회의 남녀구분이

라는 큰 문제를 ㄱ자형 건물을 지어 남녀가 나뉘어 예배를 보게 함으로써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한국의 전통 건축양식과 서양식 교회의 특징을 조화롭게 결합시킨 이

교회는 초기 교회건축의 한국적 토착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건물로, 건물 각

구조물의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문화재로 지정·보존하고 있다.


횡성풍수원천주교회


강원도에 있는 성당으로, 원래 이곳은 조선 고종 3년(1866) 병인양요로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면서 천주교 신도들이 피난처로 삼아 모여 살던 곳이다.고종 27년(1890)

프랑스인 르메르 신부가 1대 신부로 부임하여 초가 20칸의 본당을 창설하였다.

그 후 고종 33년(1896)에 부임한 2대 정규하(1893∼1943) 신부가 직접 설계하여 본당

을 지었는데, 융희 1년(1907) 중국인 기술자와 모든 신도들이 공사에 참여하여 현재의

교회를 완공하였다.건축 양식은 고딕식으로, 앞면에는 돌출한 종탑부가 있고 출입구는

무지개 모양으로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두꺼운 동판을 깔았고, 내부에는 기둥들이 줄을 지어 있는데, 벽돌 기둥처럼 보

이게끔 줄눈을 그려 넣었다.풍수원 천주교회는 한국인 신부가 지은 강원도 최초의 성당

이며, 한국에서 4번째로 건립된 유서 깊은 절충식 고딕 건축물이다.

출처 : 이보세상  |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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