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과 목회서신-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

 

 

1. “목회”라는 용어

 

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는 오늘날 흔히 “목회 서신”으로 불리운다. 그러나 이것들이 언제나 그렇게 불리운 것은 아니었다. 신약 성경의 목록이 최초로 언급된 책인(주후 170년)“무라토리 정경”은 이것들을 교회들과 공동체들에 쓰여진 바울의 다른 편지들로부터 구별하여 개인 편지들로 구분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1250년경)는 디모데전서가 디모데에게 “감독의 훈련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는 “일종의 목회지침”이었다고 말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17세기경에는 이 편지들이 “감독 편지”(The Pontifical Letters)로 언급되었다.

 

1726-1727년에 폴 안톤(Paul Anton)은 할레에서 일련의 강의를 하였는데, 그는 이 강의 중에 이 세 편의 글들을 “기독교 사역을 위한 준비 및 안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최고의 본이 되는 글들”이라고 언급하였다. “목회서신”이라는 칭호는 그 이후로 이 편지들에 적용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서신들의 목적을 정의해 준다. 이 서신들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인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을 알게 하려고” 집필되었다(딤전 3:15).

 

2. 역사적 배경

 

로마에서의 1차 투옥으로부터 석방된 후 바울의 세부적인 생활의 내용들을 재구성하는 것은 어렵다. 사도행전은 이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목회 서신 자체 내의 언급들로부터 이 시기의 역사를 추정해 보아야 한다. 이 서신들은 제한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건들의 전후관계가 어느 정도 모호한 상태이다.

 

바울이 (행 28:30)에 언급한 2년간의 옥중 생활이 끝나고 석방되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 시기에 수감되어 있다가 순교를 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비록 바울은 이 당시의 구금이 있기 전에 스페인을 방문하고 싶다는 희망을 표하였지만(롬 15:28), 목회서신은 이 계획된 사업이 실현되었다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하지만 목회서신은 그가 그의 다른 희망 즉 아시아와 마게도냐에 있는 그가 전에 수고했던 지역들을 재 방문하고 싶다는 희망(몬 22절, 빌 2:24)은 성취하였음을 시사해 준다.

 

바울이 그레데를 경유하여 동방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바울은 그레데에 디도를 남겨 두었는데, 이는 바울 자신이 그 곳에서 시작한 일을 계속하게 하기 위해서였다(딛 1:5). 아마도 바울은 잠시 에베소를 방문하였고 디모데에게 그 곳에서의 사역을 감독하는 권한을 부여했던 것 같다. 바울은 에베소로부터 계속 여행하여 마게도냐로 갔고, 거기서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다. 그가 디모데에게 제시한 교훈들은 에베소에서 많은 사역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음을 시사해 준다(딤전 1:3). 그는 마게도냐에서였거나 아니면 그가 겨울을 보내기로 계획했던 니고볼리로 가는 도중에 디도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디도는 아데마 또는 두기고와 그레데에서 임무 교대를 한 후, 니고볼리에서 바울과 합류하였다(딛 3:12).

 

바울은 마침내 드로아, 고린도, 밀레도를 방문하였다. 그는 체포되어(체포된 장소는 확실하지 않다) 로마에 투옥되었다. 바울은 그 후 디모데 후서를 썼다(딤후 4:12-20). 이번 투옥은 이전보다 훨씬 심각했으므로 바울은 석방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그는 자신의 끝 날이 오기 전에 자신을 방문해 줄 것을 디모데(그의 “사랑하는 아들” 딤후 1:2)에게 부탁하였다. 바울은 네로의 통치 기간 동안에 순교하였다. 그러나 64년의 대 박해 중에 순교하지는 않았다. 만일 이 특별한 박해가 진행 중에 있었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디모데에게 와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로마 기독교인 자신들도 그들의 신앙 때문에 죽음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면 그가 재판에서 “처음 변명”하는 동안에(딤후 4:16) 그들 중 아무도 그이 옆에 없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개탄해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의 저작은 63년 이전이거나 아니면 67년 이후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

 

 

3. 수신인

목회 서신은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맡도록 한 디모데와 그레데의 교회를 맡도록 한 디도에게 쓴 편지들이다.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들은 종종 디모데에 대하여 언급한다.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이고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다. 바울이 그의 제 2차 전도 여행 동안에 루스드라를 방문하였을 때 그는 이미 기독교인이었다(행 16:1). 이때 디모데는 바울의 동료로 동참하였고, 바울의 가장 신실한 동료들이요 동역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가끔 바울은 어려운 사명을 맡겨서 그를 파견하였다. 그는 바울이 로마에 갇혀 있는 동안 사도와 함께 있었다(빌 1:1, 골 1:1). 바울이 그를 에베소에 남겨두고 떠났을 때 그는 비교적 젊었다(딤전 4:12). 몆 구절들은 그가 소심한 편이었음을 시사해준다. 그의 건강도 언제나 좋았던 것 같지는 않다(딤전 5:23).

 

사도행전에는 디도가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바울의 서신에는 언급되어 있다. 그는 바울을 통하여 개종하였다(딤 1:4). 그는 헬라인이었다(갈 2;3). 바울은 제 3차 전도 여행 동안에 디도에게 어려운 사명을 부여하여 고린도로 보낸다. 그가 돌아온 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헌금을 독려하기 위해 다시 그를 그 곳으로 보냈다. 바울은 첫 번째 로마 옥중에서 풀려난 후 디도에게 그레데 교회를 맡겼다. 우리가 디도에 관하여 얻을 수 있는 마지막 정보는 그가 달마디아로 갔다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선교 사역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 곳으로 갔던 것이 거의 분명하다(딤후 4:10).

 

“목회”라는 명칭은 디모데후서 보다는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에 훨씬 더 적용된다. 비록 디모데후서는 목회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분류상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편지이다.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는 어조에 있어서 훨씬 공식적이며 디모데와 디도에게 뿐만 아니라 그들이 돌보고 있는 교회들을 향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다. 각 서신에 있어서 종결을 짓는 인사는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이다. (딛 3:15)에는 “너희 무리”라는 용어가 첨부되어 있다.

 

 

4. 동기

세 편지는 모두 짧은 시간을 간격으로 쓰여졌던 것 같다. 이 편지들의 공통 목적은 디모데와 디도를 현재와 미래의 책임들을 감당하도록 무장시키는 것이다. 비록 이 편지들이 교회 치리에 관한 상당한 교훈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각 편지의 기본 목적이 단순히 정보와 교훈을 제공하는데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쓰게된 이유들은 다른 목회 서신들을 쓴 이유보다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는 (때때로) 그의 소심한 계승자에게 그의 높으신 부름에 합당하게 행동하라는 최종적인 경고와 권면을 한다(1:6,8,13-, 2:1,22, 3:14, 4:1-). 바울은 그를 만나기를 갈망하고 두 번씩이나 속히 오라고 그에게 촉구한다(4:9,21).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일이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한다(4:6).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를 괴롭히는 불 경건한 사람들에 관하여 경고하고 그들을 피하라고 권면한다. 디모데는 그가 바울로부터 들은 바를 또 다른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2:2).

 

디모데전서와 디도서 배후의 목적들은 일목요연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바울은 얼마 되지 않아 그들과 헤어졌을 뿐이다. 분명 편지들에 포함된 상당한 내용은 이미 개인적인 대화를 통하여 논의되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교회에서 직무를 맡은 자들의 자격에 관하여 이같이 상세한 정보를 제시해야 했던 이유는 이 편지들이 각처에 있는 바울의 대표자들의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의도되었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본다. 그레데에서의 사역 여건들이 어려운 것임을 나타내 주는 디도서의 암시들은 이러한 주장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바울은 여러 번 위대한 기독교 교리들에 관하여 그의 말을 들어왔었던 친구들에게는 신학적 논문을 써 보낼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목회서신은 기본적으로 “실천적인 문제”에 관심을 둔다. 이 편지들은 교회 내에서의 많은 기능들과 활동들에 대하여 언급을 한다. 바울은 그의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촉구한다.

 

* 신앙의 전통적 가르침을 성실하게 따를 것

* 이단적 가르침으로부터 신앙을 지킬 것

* 지역 교회들에 있어서 자격 있는 직원들을 임명할 것

* 공중 예배를 경건하게 드리고

*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위치와 책임을 감당함으로 모범적 생활을 영위하도록 권고할 것

 

5. 거짓 가르침에 대한 경고

 

1) 거짓 가르침의 성격

목회서신을 주의하여 읽어보면 디모데와 디도의 능력을 훨씬 벗어난 중요한 다른 문제들이 있음을 알게된다. 양편 저작 모두에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대한 염려가 중심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교회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 중 몇 사람이 거짓 교사의 가르침에 굴복하였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리하여 목회서신에서 일관된 관심은 직무를 맡을 자격 및 성직 임명에 있어서의 분별력이다. 교회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가. 교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자신들의 이단을 가르치는 불순종하는 사람들, 허탄한 말을 하는 사람들, 유대교화 하려는 기만 자들(딤전 6:4,5,20-21)은 비록 그들이 율법 교사들이라고 주장하기는 하나 그들은 율법의 참된 의미와 율법이 기독교인들의 생활에서 잦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딤전 1:6-10). 심지어 그들은 감히 율법 위에 자신을 놓는다.

 

나. “신화와 끝없는 족보”(딤전 1:4),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4:7),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딛 1:14)를 좆는 사람들.

 

다. 물질은 악하며 결혼은 배척되어야 하고 특정한 음식들은 먹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딤전 4:1-5)

 

라. 부활은 이미 지나갔다고 가르치는 사람들(딤후 2:18). 이 이단은 1세기 영지주의의 모든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2) 거짓 가르침에 대한 답변

목회 서신은 정통 신앙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동을 요구하면서 이단과 부도덕을 함께 취급한다. 정통성을 호소하기 위하여 많은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용어들은 이때쯤 기독교 신앙의 교리가 체계를 이루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이 용어들은 “믿음”(딤전 1:9), “진리”(딤전 3:15), “진리의 지식”(딤전 2:4), “가르침”(딤전 4:16), “명령”(딤전 6:14), “경계”(딤전 1:5), “바른 말의 본”(딤후 1:13) 등이다. 바울은 거짓 교리를 퍼뜨리는 자들을 책망하고 그들의 마음이 부패되었음을 선언한다(딛 1:15-16). 이단에게는 한 두 번 경고가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 후에는 아무도 그와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딛 3:10).

 

이와 반대로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딛 2:9-10).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 책임 있는 청지기들이다. 바울은 하나님께 먼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 책임 있는 청지기들이다. 바울은 하나님께 먼저 자기에게 맡겨주신 복음을 디모데에게 위탁하였다(딤전 1:11, 6:20). 디모데는 그 진리를 지키고 그것을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한다(딤후 1:12).

 

참된 신앙은 세례와 함께 시작하며(딛 3:5), 기독교적 양육에 의하여 자라난다(딤후 3:15). 디모데는 3대째 기독교인이었다(딤전 1:11, 6:20). 양육에 있어서 성경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성경은 회중에게 낭독되고 또한 가족 공동체 가운데서 사용되어야 한다.(딤전 4:13, 딤후 3:15).

 

교회 지도자들은 고난(딤후 1:11-12)과 싸움(딤전 1:18)을 각오해야 한다. 디모데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자기 훈련을 성취하기 위하여 고난을 견뎌야 한다(딤전 6:12). 그는 용기 있는 군인, 농부, 경주 자들이 그들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치르는 대가를 기억해야만 한다(딤후 2:1-7). 당국자들로부터 박해가 있을 것이며, 바울 자신도 이러한 박해를 무수히 받았다(딤후 3:11-12). 각 사람은 인내로 이러한 어려움들을 견뎌내야만 하고, 불 신앙을 배척하고 근실하며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딛 2:6-7,12, 3:1-2). 종들은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의 주인에게 순종해야 한다(딤전 6:1).

 

신자들은 결혼, 특정한 음식들과 포도주를 금하는 것 등 거짓 교사들이 주장하는 금욕주의적 사상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딤전 4:1-5, 5:23).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므로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사용해야 한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은 있지만 참된 경건을 위한 연습은 이 세상과 내세에까지 유익하다(딤전 4:7-8).

 

돈과 물질적 재산을 탐내는 데 대한 엄중한 경고가 주어진다(딤전 6:6-10, 17-19). 이러한 것들을 탐내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시험에 빠지게 하며 그들의 구원을 위태롭게 한다.

 

 

7. 감독/ 장로와 집사

목회서신은 감독/ 장로(딤전 3:1-7), 그리고 집사(3:8-13)의 자격을 정의한다. 그리고 감독/장로들을 임명하는데 고려되어야 할 요소들을 제시한다(딛 1:5-9). 디모데(딤전 4:6-16, 6:11-16, 딤후 1:8-14, 2:1-7, 14-26)와 디도(딛 3;8-11)에게 주어진 교회적 관행에 관한 충고는 마찬가지로 미래의 성직자들에게도 해당된다. 감독 후보는 의롭고 청렴하게 사는 사람이어야 하며, 유능하고 예의 바른 교사이어야 하며, 자신의 위치에 대하여 분명하며 또 그것을 감당할 수 있어야만 한다. 즉 그는 오랜 동안 신실한 자로 입증된 자라야 한다. 그는 자기 가정을 현명하고 훌륭하게 다스릴 수 있어야만 한다. 만일 그가 자기의 가정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면 그가 교회를 돌아보는 일도 잘 감당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그는 교회 안팎에서 존경을 받아야 한다. 초대 교회는 그 성공의 새로운 희망을 새로운 체제에 두지 않았으며, 다만 예수 그리스도와의 생명력 있는 관계를 맺고 있는 새 사람에게 희망을 두었다.

 

감독/ 장로는 신중한 과정을 거쳐서 선택되고 안수를 포함한 의식을 통하여 직책에 임명되어야 한다(딤전 4:14, 딤후 1:6). 이렇게 임명된 자들은 교회로부터 재정적 도움을 받도록 되어야 한다(딤전 5:18). 감독/ 장로에 대한 불평은 신중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딤전 6:19).

 

여성들은 화려한 장식을 피하고 교회에서 남성들의 가르치는 권위를 침해하여 가르치려 하지 말아야 한다(딤전 2:9-15). 교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과부들을 돌보기 위한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딤전 5:3-16).

 

8. 신조들과 찬미들

목회 서신은 초대 기독교 찬미들의 단편들로 보이는 것(딤전 3:16, 딤후 2:11-13)과 초기 신조의 일부(딤후 2:8)를 포함하고 있다.

 

목회서신은 참된 신앙을 신실하게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목회 서신은 “참된 신앙‘을 세부적으로 언급한다. 창조된 모든 것들은 선하다(딤전 4:4). 구원은 이미 나타났다(딛 2:11). 구속의 여사는 이루어졌다(딤전 3:16). 신자들은 하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딤후 4:18). 그리스도의 장래의 역할은 심판자의 역할이다(딤후 4:1-8). 영생은 이미 오래 전에 약속되었지만, 그것은 이제 바울과 그가 복음 전도를 맡긴 그의 계승자들의 설교를 통하여 분명하게 나타났다. ”구주“라는 칭호가 하나님(딤전 2:3, 4:10, 딛 2;10, 3:4)과 그리스도(딛 1:4, 3:6, 역시 딤전 1:2, 2:5 참조)에게 돌려진다.

 

 

9. 목회서신은 누가 기록하였는가 ?

초대 교회는 목회서신을 바울의 저작으로 돌렸다. 하지만 19세기 초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의문시하였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목회서신에서 공격되고 있는 오류들은 2세기의 영지주의의 오류들이다.

 

2) 목회서신은 2세기의 교회 조직의 발전 단계를 반영해 주고 있다.

 

3) 목회서신의 문체, 어조, 어휘는 바울 서신적 특징이 결여됐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 진리를 위하여 마치 검객처럼 싸운다. 그는 거짓된 가르침들의 실상을 분명하게 들춰내기 위해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제시한다. 목회서신에서는 바울의 평상시의 정열과 열의가 나타나 있지 않다. 목회서신은 조직화된 교회가 이단의 물결을 저지해 줄 것을 희망한다. 보다 후대의 어떤 필자가 바울의 단편들을 모아 바울의 이름으로 된 저작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그 당시 아마도 2세기 초 교회에 대한 위협들에 대처하는데 필요한 어떤 권위를 소유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이 바울의 저작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논박할 수 있다.

 

1) 목회서신이 공격하고 있는 이단은 2세기의 영지주의자들이 아니라, 바울 이외의 다른 자료들로부터도 알려지는 유대 영지주의의 한 형태였다.

 

2) 목회서신에 반영된 교회 조직은 1세기 중엽의 교회 조직과 일치한다. 이는 다른 자료들로부터도 알 수 있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117년경 순교)는 그의 저작들에서 상당히 발전된 교회 체제에 대하여 언급해 주고 있다.

 

3) 목회 서신의 용어가 바울의 다른 저작들에서 발견되는 용어와 상당히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독특성은 목회서신이 특별한 상황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의 정신은 각각 다른 상황들에 대하여 적절한 용어를 구사할 만큼 수준이 높으며 자유롭다.

 

이 논쟁은 계속해서 열기를 띠고 있다. 성령께서는 그의 교회를 위하여 목회서신을 제공하는 것을 합당하게 여기셨다. 목회서신의 인간적 기원에 대하여 논쟁하는 것보다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유익하다.

 

 

10. 결론 및 요약

바울은 목회서신을 그의 동역자들인 디모데와 디도에게 써 보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석방된 후 디모데에게는 에베소 교회를, 디도에게는 그레데 섬 교회에 대한 사역을 맡겼다. 바울은 이 편지 중에서 두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교훈 하였다.

 

1) 참된 신앙을 견고히 할 것

2) 이단적인 가르침에 대처하여 진리를 수호할 것

3) 그들의 교회들에 자격을 갖춘 지도자들을 임명할 것

4) 공중 예배를 경건하게 드릴 것

5) 신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본분을 잘 지켜 모범적인 생활을 하도록 권고할 것

 

디모데 후서는 바울의 제2차 로마 옥중 생활 동안에 기록되었다. 당시 사도의 생명은 대단한 위험에 처해 있었고, 죽음이 임박해 있었다.

 

목회서신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는가?

 

 

Ⅰ. 서 론

 

 

이 책은 필립 타우너의 신약학 박사학위 논문이다. 이글에서 그는 최근까지 신약학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기독교 소시민 윤리” 이론을 타파하고 새로운 해석 모델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소위 기독교 소시민 윤리라는 것은 목회서신의 신학이 바울의 주요 서신들의 신학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타우너는 본문 주석을 통해서 목회서신의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윤리 등이 초기 바울서신의 것과 다르지 않으며, 목회서신의 신학적, 윤리적 주제들을 새로운 전망에서 읽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을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주요한 배경적 측면인 세 개의 서신 속에서 명백히 보이는 이단적 운동은 신학과 윤리의 관점에서 볼 때에 그 공동체에 아주 극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으로 판명된다. 둘째, 서신들의 논리적 구조는 ‘쇠퇴하지 않는’ 종말론을 드러낸다. 즉, 그것은 그리스도의 과거와 미래의 모습과 연관된 것으로 ‘이미 얻었으나 아직 도래하지 않은’ 구원의 개념과 선교적인 사명 수행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강조하는 것이다. 셋째, 메시지의 윤리적 구조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관찰 가능한’ 측면에 집중하는 것으로 판명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사건과 회심 그리고 사명에 의하여 동기를 부여받는 일과 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 내용들에 주의하면서 본문의 내용을 요약하고자 한다.

 

 

Ⅱ. 본 론

 

Ⅱ-1. 기독교소시민 윤리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목회서신을 바울 저작으로 보지 않고 바울 이후의 제2세대 저자에 의해 쓰였다고 생가가하는 경향이 많다보니, 자연히 목회서신에 묘사된 이단들도 허구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또한 재림의 지연이 초대교회의 보편적인 위기의 상황이었다고 전제하고 그 위에 여러 가지 그럴듯한 추론들의 누각을 세워 목회서신 전반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여러 면에서 허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목회서신이 요청하는 삶의 유형은 딤전 2:2절에서 요약된다. 분쟁과 부자유가 아니라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이 바로 그것이다. 이글에서 저자는 기독교 소시민적 윤리 해석이 과연 목회서신의 본문 해석에 정당성을 기여하고 있는지 본문에 대한 조심스러운 분석을 통해 살펴본다.

 

 

Ⅱ-2. 배경적인 이야기들

 

 

목회서신이 보내진 교회들의 ‘삶의 정황’ 가운데 바울의 신학과 윤리를 찾아내는 일에 있어서 이단이 미친 결과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단에 관한 직접적인 정보에 기초해 볼 때 우리는 ‘지식’이란 술어가 거짓 교훈 전체를 요약하는 핵심적인 요소를 지칭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거짓 교사들은 엄격하게 외부 자들이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배교자들이었다. 바울이 이단들과의 논쟁에 대한 성격을 몇 가지 진술하고자 한다. 첫째로, 거짓된 교리를 신학적으로 논박할 때 역사적인 그리스도 사건에 자주 호소한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신학적인 논쟁을 하는 과정에서 바울은 자주 자신의 논적들의 슬로건이나 술어를 끌어다 사용한다. 셋째로, 바울이 반대자들과 논쟁할 때 사용하는 또 다른 도구는 자신의 삶의 본보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배경적인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결론들을 내려 보면,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신앙에 관해 살필 때 그들은 혼합적인 형태의 이단이다. 또한 목회서신의 이단이 허구적으로 비역사적인 구조물에 불과하고 개교회의 상황과 관계없이 일반적인 교훈만을 주는 편지라고 생각했던 여러 학자들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 그리고 이단을 검토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단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분명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목회서신에 묘사된 이단들의 정체, 그들의 주장과 활동 방식 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있을 때만 바울이 왜 자신의 신학적이며 윤리적 관심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제시하게 되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Ⅱ-3. 목회서신은 어떤 신학적 교훈을 주는가?

 

 

목회서신의 신학 메시지와 구조를 살피기 위해 저자는 다섯 가지 영역들로 구분한다. 첫째로, 종말론적 개념, 둘째로,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의 칭호들과 활동들에 대한 묘사, 셋째로, 구원론과 전통적인 형식 문들, 넷째로, 메시지와 그 선포, 다섯째로, 교회 론에 대한 일반적 측면들이다.

 

 

Ⅱ-3-1. 종말론과 현세대

 

 

그리스도의 미래 재림과 그의 역사적인 나타나심은 목회서신에서 “에피파네이아”란 술어를 가지고 모두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헬레니즘과 헬레니즘 유대교 문헌에 등장하는 종교적인 “에피파네이아” 용법을 끌어들이되 신약 사상의 패턴을 따라 발전시켜 사용하였다. 재림에 대한 신앙은 이미 표면화되고 있지만 그 영향은 저자의 종말론적인 틀 속에서 평가해야 한다. 재림에 대한 임박한 기대를 함축하는 증거는 딤전 6장13-14절이다. 저자는 재림이 디모데 생전에 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바울이 감람산 강화 전승에 의존하여 신적 주도권과 적극적인 재림의 기대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살전5; 살후 2). 또한 딤후 4장 1절에서도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것”(tou mellountos krinein)에 대한 언급은 그리스도께서 심판자로 나타나실 것이 가까웠다는 것을 드러낸다. 따라서 목회서신에서 재림에 대한 적극적인 기대가 있었음을 반대하는 주장들은 신빙성이 없다. 왜냐하면 재림에 대한 기대는 신약 전체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근본적인 사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목회서신에 나타난 재림의 기대는 종말의 가까움을 기대했던 신약의 사상과 전적으로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Ⅱ-3-2.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그 칭호들과 행위들

 

 

하나님 - 목회서시들에서 하나님은 우선 “아버지”로 불린다(딤전 1:2, 딤후 1:2, 딛 1:4). 하나님의 활동을 묘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성과 초월성에 관계된 칭호들이 있다. 구원 계획 속에서 하나님의 역할과 그를 “구원자”로 부르는 칭호는 그의 백성을 향한 친밀성과 사랑을 표현해준다. 목회서신이 묘사하는 하나님 모습은 한편에서는 그의 초월성과 주권성을 나타내주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의 백성과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준다.

 

그리스도 -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칭호나 이름들은 목회서신에서 ‘구원자’나 ‘중보자’ 그리고 ‘사람’ 등이다. 그리스도에 관한 묘사는 종말론적 심판자인 그의 역할을 통해 확대된다. 기독론적 자료의 대부분은 전통적인 것이며 구원에 있어서 그의 역할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인다. 목회서신에서 바울이 중보자와 인간을 구원론적인 내용으로 선택한 것은 그의 메시지의 중심적 주제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령 - 지금까지 목회서신에서 가장 주목을 받지 못한 부분이다. 목회서신에 나타난 성령을 살펴보면 성령은 신자에게 구원을 주실 때 성령 세례를 통해 일하신다(딛3:5). 결과적으로 신자 안에 내주하시고 일할 수 있도록 그에게 능력을 불어 넣으신다(딤후 1:7, 14). 저자는 또한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신다는 널리 유포된 확신을 가지고 있다(딤전4:1). 그리고 성령은 부활한 그리스도의 존재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게 되었다(딤전 3:16). 목회서신의 성령 이해는 성령의 역동성에 대한 비전이 희미해져가는 후대 교회의 정체된 신학을 시사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초기 바울의 성령 이해와 상당히 일치한다.

 

 

Ⅱ-3-3. 구원론: 신학의 중심축

 

 

구원론은 목회서신의 메시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의 구원자 하나님” 이나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란 문구들의 신학적 의도는 죄인들을 구원하는 본질적인 행위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귀속시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원의 현재적 실재만 아니라 구원의 미래 완성의 필요를 강하게 강조한다. 목회서신에서 강조하는 구원은, 현세대에 중개되는 것은 그리스도 사건, 즉 복음에 대한 선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러한 수단을 통해서 과거의 구원 사건은 현재에도 지속적인 타당성을 얻게 된다. 구원은 단순한 약속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현재적 실재로 경험되는 것이다. 구원은 이런 저런 형태로 시종일관하고도 내면적으로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현현에 연관되어 있다. 또한 목회서신의 저자가 묘사한 구원은 “이미-아직”의 종말론적인 구도이다. 구원은 지금 얻을 수 있는 선물이며, 이 사실은 현세대가 묘사되는 방식을 채택한다. 현세대는 구원의 시대이며, 그 구원이 가능하게 만든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린 시대이다(딛2:11-12).

 

 

Ⅱ-3-4. 메시지와 그 선포

 

 

저자가 보기에 복음 선포는 과거 그리스도 사건과 그 효과들, 그리고 후속되는 교회 시대에서의 구현 실현 사이를 연결 짓는 결정적 연결점인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는 두 부분으로 집행된다. 하나는 역사 속에서 있었던 실재의 그리스도 사건이요, 다른 하나는 복음 선포를 통해서 그것을 집행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부분은 구원이 발생하는데 필요하다. 저자는 동일한 종류의 이 과정이 신앙 공동체 안에서 이미 존재하는 구원을 증진하고 부양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딛2:1-3:8).

 

 

Ⅱ-3-5. 교회와 그 사명

 

 

교회(ekklesia)의 회중 자체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의 현현이다. 목회서신에서 교회에 대한 진술은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3:15), “하나님의 집”(딤전3:15), “큰 집”(딤후2:21) 등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교회는 현세대에서 주어지는 구원에 중심적 강조점을 둔 저자의 의도와 가깝게 상응하는 방식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기초와 기능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의해 모두 결정된다.

 

 

Ⅱ-4. 목회서신은 어떤 윤리적 교훈을 주는가?

 

 

Ⅱ-4-1. 원리의 관점에서 본 그리스도인 존재

 

 

그리스도인 존재는 믿음의 존재와 거기서 귀결되는 삶의 유형으로 묘사된다. 핵심에는 믿음-사랑의 역학이 놓여 있다. 믿음-사랑의 조합은 9개의 덕목들의 핵심을 형성하는데, 그리스도인 존재의 용인할 만한 행위를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속에다 정초시킨다. 저자가 스케치한 그리스도인 존재에 대한 이론적 상은 그의 메시지의 신학적 구조와 일치한다. 그리스도 사건은 여전히 중심에 머물고 있다. 사실 그것은 관찰 가능한 믿음의 삶의 원천이다.

 

 

Ⅱ-4-2. 실천의 관점에서 본 그리스도인 존재

 

 

목회서신에서 저자가 사용한 동기와 어휘 모두 그의 윤리적 교훈을 그 신학적 상관성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신학적 자료의 전승 단편들이 권면을 정초하기 위해 채용되는 곳에서(딛2:11-14; 3:3-7), 신학과 윤리의 연관성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전반적으로, 권면 속에서 존경스러운 행위가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것은 거짓 교사들이 소개한 잘못된 개념들에 대한 필요한 교정책으로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고 결론짓는 것이 안전한 것 같다. 존경스러운 행위를 목적 자체에만 설명하는 기독교 소시민(Chrisitliche Bϋrgerlichket)해석은 저자의 이해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채 과소평가하거나, 또는 윤리적 권면에 그 본질적 의미를 부여하는 선교적 동기를 전적으로 곡해하고 있다. 더욱이, 이 해석은 교회의 선교가 재림에 대한 소망과 더불어 중요성에 있어서 감소했거나 전적으로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계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신자들이 사회 제도들에 참여해야만 했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Ⅱ-4-3. 회중 속에서의 행위

 

 

기도하라는 교훈들은 신약 가훈 전통이 사실상 적용되었지만, 그것이 격려하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갖추어야 할 존경을 받을 만한 자세는 결코 목표 자체가 아니다. 반면에 전승은 그 권면에 내적 일관성을 주입하는데, 그 일관성은 교회의 존재 이유와 기독교인의 생활방식 모두에 대한 조심스럽게 파악한 시종일관한 이해를 드러내준다. 통합적인 이 원칙은 선교적 동기이다; 그것은 공동체의 기도를 규정할 뿐만 아니라, 여인들의 행위에도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여인들은 교회의 목적 또는 교회의 메시지의 어떤 불가피한 결과가 사회적 무정부상태라고 세상에 시사할 만한 행위들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금지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별 신자의 성장이 이 모든 것에서 간과되는 것은 아니지만, 강조점은 분명히 공동체 내에서 존경받을 만한 행위를 해야 한다는 데 놓여 있다. 이러한 강조점은 결국 복음 선교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을 지향한다. 교회에 그 선교적 의무를 상기시키고, 기도하는 일과 증인으로서 존경할 만한 삶의 방식에 온전히 참여할 것을 요청하는 것은 구원이 과거 그리스도 사건 속에서 시작되었다는 그의 선포에 있다.

 

 

Ⅱ-4-4. 지도자에 대한 권면

 

 

사역과 관련하여 디모데에게 주는 가르침들은 바른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이단들에 대항하라고 그에게 명령한다. 이런 방식으로 복음에 대한 위협과, 따라서 거짓 교사로 인해 발생한 선교적 사명에 대한 위협이 제지될 수 있다. 다른 한 관점에서 볼 때, 성실한 사역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의무가 된다. 디모데전서 1:18~19에서 디모데의 복음 선포 소명은 “믿음”과 “선한 양심”의 공식적인 결합과 더불어 나란히 설명되는데, 이것은 그의 경우에 있어서 사역이 믿음의 특별한 성취이며 “선한 일들”과 사랑의 구체적인 실례들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역의 도덕적 측면은 디모데의 임직에 대한 언급을 통해서 더욱 강조된다. 임직은 의무를 내포하며, 이렇게 디모데로 하여금 자신의 임직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거기에 상응하는 신앙고백의 구속력 있는 성격을 다시금 염두에 두게 한다. 사역은 이렇게 윤리적인 문제가 된다. 여기에 못 미치는 것은 디모데와 공동체 모두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사역과 관련한 권면에 있어서 크게 강조되는 부분은 사명의 동기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고난과의 연관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표현된다. 복음을 선포하라는 부름은 또한 고난을 받으라는 부름이며, 이같이 큰 개인적 대가를 정당해주는 명분은 구원이라는 선교적인 목적이다.

 

 

Ⅲ. 결 론

 

 

저자의 메시지의 신학적, 윤리학적 측면이라는 두 구조는 이단들과 그것의 특정한 성격과 결과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그것들이 야기했던 분열의 뿌리에는 복음에 대한 왜곡이 놓여있다. 이처럼, 저자의 교정적이고 신학적이며 윤리적인 반응의 중심에는 믿음과 행위, 바른 신학과 거기에 일치하는 윤리의 재통합이 있다. 그리고 그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교회의 선교적인 기회의도였다.

 

이 논문의 결과들은 세 가지 논쟁점과 관계가 있다. 첫째, 신학과 윤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목회서신을 쓴 저자의 메시지의 구조는 흔히 고려된 것보다 더욱더, 바울의 이전의 메시지들을 아주 더 가깝게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두 번째, 특히 여성들과 노예들에게 주어진 권면을 고려해 볼 때, 그리고 좀 더 많은 자유를 향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사회구조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주목할 때, 복음과 사회적 활동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수면에 떠오른 셈이다. 사회 제도들은 선교적 임무를 위한 필요한 통로가 되며, 그리고 가능한 한 그 문화가 규정하는 대로 그것에 참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이라는 구체적인 문제가 연구과정 중에 피할 수 없게도 다루어졌다. 연구 결과들은, 이 문제에 관한 해답이야말로 교회가 주변 사회와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라는 보다 더 폭넓은 문제와 결부되어 있음을 내어 비추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사회학적인 문제들을 고려해 볼 때, 신약성경 내의 가훈 윤리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가 요청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제11장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 및 디도서)

 

 

딤모데전후서와 디도서는 오랫동안 목회서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용어가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우리가 이 서신들을 목회신학의 교과서라고 부를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회서신이라는 용어는 이 서신들을 다른 책들로부터 구별해 주는 표현으로서는 편리한 것이라 할수 있다. 따라서 이 서신들을 다룸에 있어서 단일 서신으로 서론을 다루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및 수신자

 

본 서신들은 바울의 어떤 서신들 보다도 그 잔정성에 대한 도전이 강하게 있었다. 따라서 이 문제가 목회서신에서 가장 크게 대두 된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먼저 이 저자의 문제에 대하여 제기 되는 반론을 소개하고나서, 목회서신은 바울의 저자임을 논증하고자 한다.

 

바울 저작권에 대한 반론에는 크게 네가지 분야 즉 역사적, 교회적, 교리적,언어적 분야가 있다. 차례로 소개 하고자 한다.

 

[1] 역사적 문제

 

세권의 목회서신 모두에는 바울과 그의 동료들의 삶에 관한 역사적 언급이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① 바울은 마게도냐로 이동중인 반면,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를 맡기 위해 그곳으로 떠났다.(딤전1:3)

 

② 마찬가지로 어느때인가 디도도 그레데 교회를 맡기 위해 그곳에 남겨 졌다(딛1:5) 이 경우 바울 자신이 그레데를 방문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요구된다.

 

③ 바울은 로마에 있을때 자신을 부지런히 찾아 만난 오네시보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딤후1:16,17) 이는 편지를 쓸 당시 바울이 로마에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바울이 로마에 있었다는 것은 결정적이다. 그는 당시 분면 죄수의 몸이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드로아에 두고 온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하면서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 미보는 병들어 밀레도에 있다는 등의 최근 발생한 사건들을 알려주고 있다.(4:13,20)

 

위와 같은 자료들에 비추어 볼때 본서들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역사의 틀에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사도행전의 줄거리 속에 본서들을 끼워놓으려는 시도가 여러차례 있어 왔으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와같은 시도를 불가능한 것으로서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면,우리에게 남아 있는 가능성은 다음의 세가지이다.

 

첫째로,우리는 본서들의 진정성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사도행전 역사 밨의 어떤 시기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할수 있다.이 경우 두번째 로마 투옥이 있었으며,첫번째 투옥과 두번째 투옥사이에 바울이 풀려난 몸으로 계속 전도여행을 하였다는 가정을 필요로 하게 된다.

 

둘째로,우리는 완전히 다른쪽 극단으로 가서 목회서신 전ㅊ히 허구로 꾸며낸 작품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세째는 적어도 역사적 암시에 나타난 몇 명의 인물들은 실제 인물임이 확실하기 때문에 제3의 설명이 요구 되었다. 즉 작품 속에는 일부 바울 자신의 글도 포함되어 있으나, 서신의 대부분은 훗날 바울 추종자가 거짓으로 꾸민 것이라는 것이다.

 

[2] 교회적 문제

 

목회서신속에 어떤 교회 질서에 관한 언급이 있는데 이는 바울 시대의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발전된 것이며, 따라서 목회서신은 바울 시대의 것으로 볼수 없다는 이론이 있다. 이 계통의 비평들은 다음 네가지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첫째, 바울은 교회를 조직하는데 대하여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전 서신들에 비추어 볼때 그의 교회안에 어떤 획일적 정형이 있었던것 같지는 않으며,오히려 바울은 공식적 조직체계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 그들은 목회서신은 각 교회가 공식적 직분자들을 가지고 있었으며,전체적인 과정이 조심스럽게 통제 되었던 후기 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이 이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목회서신이 보여주는 교회 구조속에 반영된 장로의 역활은 주로 전승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말로 장로들이 수행하는 역활이 목회서신을 바울 시대의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 발전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째로,목회서신에 반영된 상황은 어느정도 시간이 경과 했을 것을 요구 한다는 것이다. 특히 디모데전서 3:6절에서 바울이 새로 입교한 자에게 감독의 직분을 주지 말라고 권면한 것을 보면 그것이 잘 나타난다. 이 구절은 조직이 정비된 교회를 암시해 주고 있으며, 따라서 바울 시대 보다는 더 후대의 교회에 훨씬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네째로,디모데와 디도의 지위가 대개 2세기 초의 군주적 감독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장로를 임명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장로보다 훨씬 높은 권위를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교회내의 문제들에 관하여 재판권을 행사 하였는데 이는 오직 그들만이 지녔던 특권이다. 바울 자작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은 또한 이것을 목회서신이 바울시대보다 더 후대의 것이라는 것을 지지하는 근거로 삼는다.

 

또 다른 반대는 목회서신에 반영되어 있는 이단들을 근거로 한것이다. 그 이단들은 바울 시대라기 보다는 영지주의이단들이 발전했던 시대에 속한 이단들이라는 것이다.영지주의는 2세기에 그 절정에 달했다.

 

[3] 교리적 문제

 

여기서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바울의 교리라고 주장되는 것들과 그렇지 않는 것들이 서로 섞여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목회서신들 속에 바울 신학의 여러 특징적인 것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다만 바울의 진정한 글로부터 발췌한 어구들을 그대로 옮겨서 사용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본다. 주된 반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목회서신속에 바울의 특징적 교리들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과 기독교 교리에 대하여 더 상투적인 접근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로부터이다. 전자의 예로서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성령의 사역등의 위대한 교리들이 있다. 그런데 이와같은 것들이 바울의 초기 서신들에 비해 목회서신속에서는 그렇게 탁월하게 부각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근본적인 교리들에 대해 논함이 없이 바울이 이 세 서신들을 쓸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된다.

 

목회서신속에 "믿음' 맡김, '선한교훈' 등의 용어들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큰 비중이 부여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 교리의 전승이 이제 확장 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독교 교리는 이제 미쁜 말씀 혹은 수납된 교리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찬양시로서 정형화 되었다. 그러나 학자들은 바울이 놀랍도록 창조적인 정신을 가졌기 때문에 일부러 그와같은 상투적 수준으로 내려와서 말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바울 저작권을 비판하는 자들에 따르면, 위와 같은 상황들은 사도들의 교리의 전수가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졌던 1세기 말이 교회 상황과 좀더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4] 언어적 문제

 

다른 바울서신들 속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바울서신을 제외한 다른 신약성경 속에서는 자주 발견되는 용어들이 목회서신에서 다량으로 발견된다는 사실을 주된 근거로 삼고 많은 학자들은 목회서신의 진정성을 거부하고 있다.그리고 이것은 단어에서 뿐만 아니라 문체에서도 그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비판을 받아야 하며, 여기서는 비판에 대한 부분은 생략하고, 옥중 서신 자체에 의해 제공된 자료에 따라서 바울의 저작권을 증명하도록 하겠다.

 

①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딤전1:1;딤후1:1) 또는 하나님의 종이요,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딛1:1)이었다.이로서 우리는 이 세 서신들의 경우 저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는 히브리서와는 대조적으로 스스로 증거를 대고 있음을 알수 있다.

 

②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말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이 묘사는 바울에 관한 사도행전과 열 서신에 있는 것과 일치한다. 그 묘사는 양편의 바울은 훼방자요 핍박자 였다. 그리고 회심하매, 그는 반포자와 사도로 하나님에 의해 택정 되었다. 그는 진리를 수호하다가 많은 고난을 당했다.

 

③ 이 사람은 바울의 열 서신과 구조상 비슷한 세 서신을 썼다.

 

④ 이 세 서신들은 일반적으로 바울의 저작으로 인정된 서신들과 사도행전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자의 수신자(디모데와 디도)간의 경우와 같은 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권위를 가지고 서신을 쓰는 자와 그 권위를 인정하는 수신자간의 관계요 영적인 아들과 영적인 아버지의 관계이며,친구와 친구의 관계 이었던 것이다.

 

⑤ 이 세 서신들은 다른 자료들에서 바울의 동료들이요,동역자들로 알려져 있었던 어떤 사람들의 이름을 들어서 언급하고 있다.

 

⑥ 이 서신들은 자기가 세웠던 교회들에 뜨거운 관심을 갖고 있고 그의 문체와 신학이 앞에서 밝힌 데로 분명히바울임을 보여주는 한 저자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증거는 세 목회 서신들 자체에서 얻어낸 결론과 일치하고 있다. 유세비우스는 일반적으로 로마서에서 히브리서까지 바울의 저서로 알려졌던 14권의 책 중에서 히브리서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도 바울의 편지라고 확언 했으며, A.D170년 경 무라토리 단편에도 본 서신을 포함한 목회서신이 바울의 저서로 인정되어 있다. 더욱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디모데 전후서가 이단자들의 오류를 반박하고 있기 때문에 이단자들은 이 서신들을 거부한다고 말하면서 본 서신의 정경성을 옹호하였다.

 

그리고 본 서신의 수신자는 디모데 이다. 사도바울이 본 서신을 써 보낼때 디모데는 에베소에 있었다(1:3) 바울이 두번째 서신을 써 보낼 때에도 디모데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던 것 같다.

 

덧붙여서 설명한다면, 서신자체의 주장을 인정한다면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의 수신인을 결정하기란 쉬운 일이다. 딤전1:3절에서 바울은 내가 마게도냐로 갈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게 한것은-- 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본 서신이 디모데에게 보내졌으며, 그때 디모데는 에베소에 있었음을 분명히 말해 준다. 그리고 디도서1:5절에 보면 디도도 여전히 그곳에 있었음을 볼수 있다. 그런데 디모데 후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그러나 디모데의 상황은 디모데 전서를 보냈던 때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장을 암시해주는 상은 디모데 후서 4장이다. 여기서 바울은 네가 올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13절) 드로아는 에베소에서 유럽으로 가는 도로상에 있었다. 만약 직접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갈수 없을 경우 사람들은 이 도로를 이용하였다. 또한 12절에서는 두기고가 에베소에 파견되었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언급되었다.

 

디도서의 수신인은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1:4)이다 디도에 대해 부가된 묘사는 바울과 디도사이의 친밀하고 따뜻한 관계를 나타내주고 있다. 디도는 헬라 사람으로서 할례를 받지 않아지만 예루살렘 총회때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참석했던 사실을 보면 그 이전부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갈2:1-5). 또한 디도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행15:36-18:23) 이후 그와 계속 동행 하였으며, 고린도에 파송되기도 하고(고후7:6,8:6) 그레데 교회를 돌보기도 하였다(1:5). 이같이 오랫동안 바울과 동역한 디도는 바울에게 참아들(1:4), 동무, 동역자(고후8:23),라고 불릴 정도로 바울의 많은 사랑과 신임을 받은 신실한 주의 종이었다.

 

 

2) 연대 및 장소

 

바울의 첫번째 로마 투옥 연대는 아마 A.D 59-61년 이었던 것 같다.(어떤 학자들은 그 연대를 60-62년,다른 학자들은 61-63년 또는 62-64년으로 보고 있다) 초대교회는 바울이 A.D68년 6월에 자살한 네로 황제에 의해 처형당한 것을 이의없이 증언하고 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겨울전에(딤후4:21) 자기에게 오라고 편지한 점으로 보아 디모데 후서는 A.D67년 이전에 씌여진 것이 분명하다. 더 이르다면,65년 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디모데전서와 디도서가 A.D 62년과 66년 사이에 씌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사도행전 기사에서 자세한 일에 대한 기록이 생략되었다는 것을 감안 한다면 더 앞선 연대도 가능하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A.D 64년 경에 순교했다면, 목회서신의 저작연대는 A.D 64년 경 직전이었을 것이다. 즉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는 바울의 로마 재억류 직전에 쓰여졌을 것이며,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마지막 옥살이 기간에 씌여졌을 것이다.이러한 연대결정은 물론 바울의 저작을 가정한 것이다.

 

집필 장소를 살펴본다면, 서실들의 역사적 자료들과 서로 비교해 볼수 있는 독립적인 자료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서신들내의 자료들을 목록으로 만들고 이 서신들이 쓰여졌을 기간에 사도 바울이 어떠한 활동을 하였을 것인가를 재구성해 볼수 있을 것이다.

 

① 바울은 에베소와 마케도냐를 방문했었던 것 같다(딤전1:3)

 

② 그는 또한 그레데를 잠깐동안 방문하였다(딛1:5)

 

③ 그는 디도에게 편지를 쓴후 그 다음 겨울을 에비로 서해안에 있는 니고볼리에서 보내고자 했다( 딛3:12)

 

④ 디모데후서를 쓴 다음 바울은 로마에(?) 다시 수감 되었다.

 

그는 로마에 있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말하기를 로마에 있을때 오네시보로가 그를 찾아왔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전승에 의하면 바울은 로마에서 순교했다. 이런 사정을 고려 해 볼때 디모데 후서는 로마에서 부쳐졌음을 알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두 서신의 저작 장소는 더 분명하지 않다. 디모데 전서를 썼을때 바울은 마케도냐에 있었다. 이것은 이치에 맞는다. 왜냐하면, 서신에서 그는 이 장소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도는 에비로에 있었거나 에비로에 가는 도중 이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추측이 올바르다면,서신들의 저작 순서는 디모데전서,디도서, 디모데 후서알 것이다.그리고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는 서로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을 것이다.

 

 

3) 목회서신에 나타난 이단사상

 

 

본 서신을 포함하는 목회서신이 쓰여지지 않으면 안될 상황의 저변에는 교회 발전을 위협하는 이단들이 있었다. 그 이단들의 성격과 부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성격

 

목회서신에 나타난 이단들의 성격은 사변적이며,이지적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절대시 하며,교회안에 헛된 변론을 야기 시켰는데 그것에 휩쓸린 자들의 가르침은 어리석은 말다툼에 빠지게 하는 것이었으며, 진리와는 무관한 탁상 공로네 불과 했다. 그런데 이러한 이단자들은 교회내의 거짓되고 교만한 지식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실제적으로는 아무것도알지 못하면서 자신들이 소유한 편협한 지식만이 참다운 구원과 행복을 제공한다고 하는 교만에 빠져 있었다. 그런자들 가운데는 족보를 가지고 헛된 교훈이나 쓸모없는 논쟁을 하고 현실적이지 못한 신화들을 지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2] 부류

 

목회서신에 나타난 부류들은 세가지 부류로 구분할수 있다.

 

① 금욕주의자들

 

이들은 음식에 관한 특별한 규정을 만들었으며,성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여 결혼을 포기 하도록 강요하였다.

 

② 방종자들

 

또 다른 이단자들은 오히려 부도덕한 생활에 젖어 있었다.그들은 성적으로 문란하여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혹하였으며,스스로를 쾌락에 내 던졌다.

 

③ 율법주의자들

 

이들은 할례를 행하였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할례의 시행을 강요하였다. 사실 이들의 진정한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의 전통과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사람들이 만들어 낸 명령을 좇도록 연약한 자들을 유혹하였다. 더욱이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부활은 단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고 더불어산다는 영적 의미라고 주장하여 육신의 부활을 부정하였을뿐 아니라 인간이 경험 하고자 했던 전인격적인 부활은 이미 지나갔다고 주장 하였다.

 

 

2. 역사적 배경

 

 

모든 역사적 증거로 보아 바울이 그의 1차 로마투옥에서 석방된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바울은 그가 석방된후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그런데 목회서신에는 분명히 여러 차례의 여행을 한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면 많은 것들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소개하기로 하자.

 

1) 바울은 석방되자마자 곧 디모데를 빌립보로 보내어 이 소식을 전하도록 했다. 아마도 주후 63년 안팍이었을 것이다. 주후 64년 7월19일에서 24일이후로는 석방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2) 바울은 소아시아를 향하여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디도를 그레데 섬에 떨어뜨려두어 거기에 세워졌던 교회의 조직을 완료시키도록 하였다.

 

3) 사도는 에베소에 도착하고 그가 계획했던 대로 골로새에 이르기 까지 계속여행을 한후에 다시 에베소로 돌아왔다.

 

4) 여기서 그는 빌립보 교인들에게서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 디모데와 합류했다. 그리고 떠나려 할때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하여 에베소에 남도록 하였는바 그곳은 디모데를 필요로 하였던 것이다.

 

5) 바울은 그가 계획했던 대로 마케도냐로 갔다.그는 에베소로 돌아오기를 희망했다.마케도냐에서 그는 서로 내용이 아주 비슷한 두통의 편지,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썼다. 그는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사랑하는 형제에게 청하여 니고볼리에서 그를 만날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6) 사도는 이고니아 바다 동쪽 해안에 위치한 니고볼리로 여행했다. 여기서 그는 겨울을 지냈으며,디도와 합류했다.

 

7) 바울은 서반아로 여행했다.

 

8) 서반아에서 돌아온후 바울은 소아시아로 가서 드로비모가 병듦으로 그를 에베소남쪽,밀레도에 남겨 두었다.

 

9) 드로아에서 그는 가보를 방문했다가 자기 외투를 그의 집에 놓아 두었다. 에라스도가 머물러 있었던 고린도를 경유하여 그는 로마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다시 체포되었다.

 

10) 따라서 바울은 서반아에서 돌아온 후로는 더이상 정치적인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그의 2차 로마 투옥은 가혹하였다. 그리고 그의 투옥은 오래가지 않았다. 2차 투옥 기간중 누가만이 그와 함께 있었다. 데마는 이세상을 사랑하여 그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 버렸다.그레스게는 갈라디아 또는 갈리아로 갔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빨리 자기한테 오라고 명하면서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했다. 이와같은 세세한 것들은 디모데후서에 기록되어 있는바 그 서신은 죽음의 그늘이 이미 사도에게 정면으로 드리워진 때에 기록 되었던 것이다. 그는 사형이 확정되어 수도에서 3마일즘 떨어진 오스티안가에서 참수 되었다. 사도가 사형당하기 전에 디모데와 마가가 로마에 도착했는지의 여부는 우리는 알지 못한다.

 

 

3. 저술 목적

 

만약 바울 저작권을 인정한다면 세 서신들의 목적은 자명하다.디모데전서와 디도서에서 사도는 자신의 절친한 두 동역자들에게 그들이 당시 책임지고 있던 각 교회의 문제 처리 방법을 문서를 통해 교훈해 주려하고 있다. 이 교훈들중 많은 것들이 이전에 말로 전해 졌으며,따라서 이 서신들은 성격상 확증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디도서의 경우에 바울은 편지를 써야할 특별한 용건,즉 니고볼리에서 동역자를 만나기 위해 그를 불러 와야 한다는 용건을 가지고 있다. 이 요구에 대한 이유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디도에게는 세나와 아볼로의 여행을 도울것을 요구하고 있다. 디모데전서에는 재구성이 필요한 특별한 목적을 시사해 주는 자료가 거의 없다. 그러나 비록 너무 불쑥 언급했기 때문에 이것을 서신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기는 대단히 곤란하지만 바울은 언젠가 장래에 디모데가 에베소를 방문해줄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바울은 교회안에 질서있는 조직을 세워나가야 하는 디모데의 임무에 대하여 문서를 통하여 자세히 교훈하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손을 굳게 하고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격려와 심지어 도덕전 도전까지도 줄 필요를 느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디모데후서에서는 매우 다른 상황이 발견된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제 감옥안에 있으며, 그의 생의 마지막에 직면해 있는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성취해온 일들을 뒤돌아보고 있고 자신이 고대하고 있는 면류관을 바라보고 있다. 서신은 교회 조직에 관해 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 오히려 디모데와 그에게 맡겨진 임무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사도는 회상의 분위기에 젖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디모데후서의 결론 부분은 목회서신중에서 가장 개인적 당부가 두드러진다. 디모데에게 되도록 빨리 자신에게 오도록 당부하고 있지만 사도는 오히려 그를 다시 볼수 있을 것에 대하여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앞서 디모데전서에서도 말한바 있지만 사도는 후서를 써 내려가면서 디모데에게 다시 한번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를 할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이상의 것들을 요약하여 세서신의 기록 목적을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수 있을 것이다.

 

1) 디모데 전서

 

① 그가 받은 은사(4:14)와 그의 선한증거(6:12)와 그에게 부탁한 것을 디모데에게 일깨워 줌으로서 그의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하는데 있다.

 

② 에베소 교회에 퍼져 있었던 영혼을 멸망시키는 거짓된 교훈들과 맞부딪칠수 있는 지침을 주고 디모데로 하여금 바른 교훈에 계속 거하도록 권면해 주려는데 있다.

 

③ 공중예배시의 바른 행실에 대한 지침을 두려는데 있다(2장)

 

2) 디도서

 

① 그레데에서 일을 대신 맡아 볼 사람이 거기에 도착하여 인계를 맡게 되는 대로 바울에게 디도를 니고볼리로 오도록 명하기 위해서다(3:12)

 

② 교법사 세나와 말에 능한 전도자 아볼로가 급히 그들의 여행을 계속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3:13)

 

③ 회중,개인,가정, 그리고,사회관계에서의 성결된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데 필요한 지침들을 주려고이다. 이처럼 디도서는 삼중의 목적을 가지고 기록 되었으며, 이중에서 마지막것이 디도서의 대부분에 걸쳐 언급되어 있다.

 

3) 디모데 후서

 

① 사도가 이 세상을 떠날 기약이 임박한 것을 알고서 될수 있는 대로 빨리 디모데로 하여금 로마로 올수 있도록 재촉하려고(4:9,21,참조 4:6-8)

 

② 그를 권하여 바른 교리를 굳게 지키며, 모든 거짓 교훈으로 부터 그것을 변명하며, 선한 군사로서 고난을 인내하도록 하려고 기록 하였다. 이 두번째 목적이 전체 서신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