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시대에 왕이 되면, 그 나라의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왕의 사유물로 인정되었다. 그 모든 것을 마치 내 것 처럼 귀하게 여기고 다스리라는 것이다. 성군에 의한 왕도정치의 본질이다. 대신 왕이 등신이라 혼자 다 해 쳐먹으려 들면, 그 왕의 모가지를 쳐 버려야 한다는 강력한 맹자류 유교 이념으로 철저히 무장된 정도전에 의해 조선은 건국되었고, 신하들이 날뛰는 꼬락서니 못봐주겠는 이방원이 정도전을 위시한 고려시대 절개지사들을 모조리 쓸어죽여 버렸으며, 그러한 바탕 위에서 Great King Sejong 이 탄생한다. 세종이 한마디 하면, 신하들은 찍소리 못했던 것이다. 세종의 위대함 뒤로, 그와같은 비참한 비합리가 바탕이 되어 있다.

왕권국가는, 20세기 시작과 함께 종료되어야 했을 선천시대의 유물이었다.

2.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한민족의 역사에 존재하는 모든 왕들보다 더 큰 권력을 쥐고 이 나라의 하늘과, 땅과 사람 위에서 군림하였다.

3.
그랬더니,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자기도 이승만 쯤 되어야 어디가서 나 대통령이요 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된 모양이다.

4.
김대중과 노무현은 스스로 그들과 다르길 원했지만, 왕권 사회를 혁파하지 못하고 상당부분 계승해 버린 대한민국의 군사적 보스 사회는 그들을 왕으로 모시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동안 대통령 직속기관처럼 묶어 놓았던 경찰을 슬쩍 놓아주자 80년대를 방불케 하는 강권으로 사람들을 찍어 눌렀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 그 고삐를 아직 단단히 묶지 못하고 있을 때, 경찰은 여전히 80년대 식 용역 무리배와의 협동 작전을 펼치다 그만 연약한 사람들을 불태워 죽여 버리는 사고까지 저지르고 말았다.

5.
노예는 무한한 자유를 원하는 듯 하지만, 정작 자유가 주어졌을 때 그 자유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노예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자유란 곧 스스로 책임진다는 소리인데, 그 부담감을 짊어 지고 사느니 차라리 주인이 시키는대로 따르고 사는 것이 훨씬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많을 것이다.

6.
젊은 나이에 대학 병원 과장이 된 의사가, 한 달에 120만원도 겨우 벌어 오는 방송작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냥 집안 살림이나 잘 해. 그까짓 것 얼마나 된다고 그러니?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집안 꼴은 집안 꼴대로 엉망진창이고, 네가 번 돈 그거 고스란히 애한테 다 들어가잖아. 그러니 차라리 네가 애를 맡아서..."

남편은 진심으로 아내를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병원 과장이 감당해야 할 업무부담으로 가사노동분담할 여력까지는 없다. 아내를 무한히 이해해 주고 싶지만, 일찍 집에 돌아 와 봤자 쇼파에 우두커니 앉아 텔레비젼이나 보는 아들을 대하기도 부담스럽고, 가사도우미 아줌마와 뻘쭘하게 인사 나누기도 싫다. 그 모든 허전함을 아내가 채워 준다면, 자기는 훨씬 더 훌륭한 의사, 훌륭한 아빠 그리고 훌륭한 남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내는 그 쉽고 단순한 일상의 카테고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7.
아내는 훌륭한 사대부가의, 훌륭한 가부장의, 훌륭한 영감의, 노예가 되기 싫은 것이다. 돈 120만원이 노동에 비해 너무 적은 보상이라면, 그것이 어째서 아내의 문제인가.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철학이 부재한 이 사회의 문제이지. 아내는 오히려 위로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아내가 갖고 있는 자유에 대한 가치를 남편이 귀하게 여겨준다면, 아내는 훨씬 더 훌륭한 작가, 훌륭한 엄마 그리고 훌륭한 아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8.
성형수술을 무조건 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자기 얼굴만큼 자기 소유물일 수 있는 것도 드물다. 내 얼굴에 내돈 내고 칼 좀 댄다는데 무슨 참견이랴. 그런데 그것도 정도것이다. 자신의 인간적 격조는 그대로인데, 제 아무리 얼굴을 뜯어 고친들 무엇이 그리 크게 달라질 것인가. 얼굴 고쳐 취업과 결혼? 부디, 장기근속 적금착착 그리고 엄친남 엄친딸 얼짱 몸짱 씩쓰팩과 결혼하길 바란다.

9.
왕정과 민주, 사유와 공유, 자유와 책임.
이들 상대개념들이 힘차게 충돌하여 건전한 혼융물을 만들어 내지 못한 20세기의 후유증이 4대강이다.

10.
1000년전 전남 영암 월출산에 도선사라는 사찰을 지은 도선국사는, 신라의 패망후 새 국가의 탄생을 예견하였다. 당과 발해가 무너지고 거란이 흥기할 것이라는 것을, 인터넷도 없던 그 시대에 이미 꿰뚫고 있었다는 말도 된다. 신라가 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전체가 변하는 힘에 우리 민족이 휩쓸려 들어가버리지 않도록 방비하는 것을 그 선각자는 중요하게 여겼을 것이다.

신라 이후의 국운을 다시 융성하게 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고, 도선국사는 전국을 순례하며 풍수지리상 우리민족에게 힘이 될 명당자리에 무려 500개의 사찰을 건립한다. 비록 위태로운 문제도 많았지만, 덕분에(?) 고려는 500년을 살았고, 유교국가 조선에서도 당당히 주류 종교로 살았으며, 달마류 대승불교의 명맥은 중국보다도 일본보다도 한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대불대학교와 대불산업단지 할 때의 그 대불'大佛'이 바로 그 대불이다.

국운 융성을 위한 지리적 노력이 갖는 스케일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나마 이제 반쪼가리 난 땅에, 온 나라가 들러 붙어도 1000년 전에 살았던 중 한 사람만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