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돈대


전등사에서 내려와 점심을 먹고 광성보로 향했다.

광성보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강화 12진보()의 하나이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도로 천도 후,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쌓은 성이다.

이후 조선 효종 9년(1658년) 강화유수 서원이 광성보를 설치했고 이후 석성으로 고쳤다.

병인양요(1866년)때는 프랑스 함대, 신미양요(1871년)에 미국 극동함대와 격전을 벌였던 현장이기도 하다.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 건설을 위해 함대를 보냈는데 한양 길목에 강화해협과 광성보가 있었다.  



광성보 성문인 안해루

복원된 광성돈대의 포좌

 대포


안해루 오른쪽으로 소나무 숲길이 있다. 숲길을 따라가면 무명용사비, 쌍충비각, 손돌목돈대, 용두돈대 등이 나온다.

무명용사비는 신미양요때 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전사한 51명의 용사들의 넋을 기리는 비다

용사들은 비 아래 7기의 무덤에 나눠 봉안되어 있다. 쌍충비각에는 무용용사들과 순국한 어재연, 어재순 형제의 순국비가 있다.

 


어재연, 어재순 형제 순절비


용두돈대 가는 오른쪽 언덕에 손돌목돈대가 있다. 오르지 않고 지나갔다.

손돌목은 강화와 김포사이 좁은 해역으로 급류가  흐르는 곳이다.

이 해역에 용두돈대, 손돌목대가 자리잡고 있다. 진도 울돌목과 같은 해협이다.

손돌은 고려시대 뛰어난 뱃사공으로 왕의 피신을 도와 손돌목을 무사히 통과 했으나 죽임을 당했다.

이후 손돌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손돌목이라 이름지었다. 그의 무덤은 반대편 김포에 있다.



용두돈대


용두돈대는 용의 머리처럼 해협으로 돌출된 자연 암반에 설치된 해안초소다.

손돌목대에 속한 아주 중요한 요새로 손돌목에서 훤히 내려다 보인다.

손돌목의 거센 물결을 바라보면서 뱃사공 손돌을 잠시 그려보았다.


손돌목 급류

용두돈대에서 본 해안포대

용두돈대




용두돈대와 손돌목돈대 사이 해안에 포대가 있다. 3기의 대포를 배치했다.

광성돈대,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해안포대가 촘촘하게 강화해협을 지키는 것이다.

그 위로 초지진, 덕진진 등이 배치되어 있다.



손돌목대



광성보 답사를 마치고 초지대교 아래 초지진으로 왔다. 고종시대 미국함대, 일본함대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곳이다.

일본 함대 운양호에 패하여 강화도수호조약을 맺게되고 인천, 원산, 부산의 개항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어서 일본이 주권을 강탈하고 한일합방을 통해 45년간 식민지가 되는 단초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초지진 전경


월남전 참전 군함


초지대교


초지진


서구열강들이 식민지 확장에 혈안이 되었을때 조선은 과연 무엇을 했는가?

쇄국정책, 선진 문물의 배척, 등 세계사적 흐름을 읽지 못한 무능한 왕조, 결국 나라를 빼았기는 치욕을 당했다.

초지진 앞을 도도히 흐르는 물살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건만 45년간 식민 잔재는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 

질곡의 역사다. 결국 강력한 국력이 없으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힘쎈자에게 먹힌다는 진리를 잊어서는 않될 것이다. 


초지진 소나무

초지대교에서 본 초지진



바이크족


강화도를 떠나 숙소가 있는 월미도에 왔다.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산책도 할 요량으로...

몇해전 모습하고 조금은 변한 듯하다.


월미도 닻 조형물


저녁 노을로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잔잔한 바다엔 화물선, 여객선 들이 쉼없이 드나든다.

월미도 해변엔 연인, 친구, 길객들이 거닐고 있다.

해넘이의 서정을 더욱 느낄수 있도록 음악분수도 돌렸다.



음악분수


역객선



저녁을 먹고나니 연안 상가와 조형물 등에 불이 들어왔다

월미도 밤 분위기는 더욱 운치있다. 길객인 나는 술도 깰겸 월미도 연안을 천천히 걸었다.

크레이지 러브 조형물, "미치도록 사랑??", "미친사랑??"...무얼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 





월미도 상륙 조형물

회전차



숙소호텔


호텔 체크인하고 근처 아트플랫폼, 차이나 타운 밤 구경에 나섰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인천광역시 원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중구 해안동 일대의 근대 개항기 건축물(1888년 지어진 舊일본우선주식회사, 1930~40년대에 건축물 등)을 리모델링하여 조성된 문화예술 창작공간이다.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전시 및 공연, 시민참여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함으로써 예술가에게는 창작공간이 되고, 시민에게는 예술을 함께 나누는 문화예술 향유의 광장이 된다. (아트플랫폼 홈피 자료 인용)


아트플래폼


아트플랫폼 조형물





차이나 타운이다. 변한건 거의 없다

다만 인화문쪽에 병마토용이 새로 설치되어 있다. 


왕희지






차이나타운의 작은 가게다.

은은하게 불빛이 새어 나온다.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 느낌이다.

밤 산책의 묘미를 더해준다.

 



공자



삼국지거리를 통과해 식당과 월병가게가 많은 곳까지 왔다.

막바지 저녁 장사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수제월병 2박스를 구입해 돌아왔다.






경극가면


호텔로 가는 중에 한중원을 들렀다.

전등이 켜져 정자며 정원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삼국지거리

다음날 아침 많은 비가 내렸다.

비가 내렸지만 아트플랫폼, 차이나타운, 자유공원을 산책했다.

간간한 바닷바람이 상쾌했다. 공원곳곳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아트플랫폼시장


2박 3일간의 파주, 강화 인천여행을 마쳤다.

북녁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도라전망대, 평화전망대를 답사했다.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 확대에 맞서 치열한 접전을 펼친 강화도 광성보 등 요새도 답사했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언제든지 강자에 먹힌다는 점을 다시금 느끼게되었다.

- 여행 : 2018. 10. 25~ 10.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