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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평면 소식지 ‘고막강’ 발간, ‘산악회’ 조직 향우회 활성화 보람” ◇ 학력 -. 나주 문평남초등학교 졸업 고향이 나주인 사람들. 고향을 떠날 때는 한 가지 이상 이유가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거쳐 고향을 빛내고 있는 사람들을 나주뉴스가 만나 본다. 고향 나주에 대한 자긍심을 품고 사는 출향 나주인 인터뷰가 그것이다. ‘고향을 빛낸 나주인들’을 찾아 이들의 실패와 성공, 애환을 지면에 옮긴다. 이번 인터뷰 대상으로 나주 문평면 출신 나병옥(1948년생) 재경문평향우회 전임회장 겸 옥인실업 대표를 만나 그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비전을 들여다보았다. 비록 고향을 떠나있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사는 나주인. 특별한 주제 없이 <나주>를 매개로 나병옥 대표와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주> ◇ 나주시 문평면에서 태어났다고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나주생활은 어떠했는지요? 저는 1948년 나주 문평면 산호리 평산마을에서 7남매 중에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문평남초등학교를 11회로 졸업했지요. 아버지 3형제는 왕골을 이용해 돗자리를 만드는 사업을 영산포에서 호남기업이라는 회사로 하셨는데, 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족의 생계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가정이 어려워져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 서울 상경 후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5살에 상경했습니다. 고향에서 살고 싶었지만 곤란한 가정형편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지요. 서울에 올라와 그때 당시 광화문에서 서대문으로 넘어가는 길에 동양방송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 건물 옆에 미국 선교사가 설립한 피어선중·고등학교가 있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이곳에서 야간에 공부하면서 주간에는 대한서적(현 대한교과서)이라는 회사를 다녔습니다. 이러한 생활을 9년간 한 후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지요. 23살에 학교를 졸업하여 신길동에 있는 ‘그린건설’이라는 건설회사도 다녔고, 대우그룹 산하의 수출봉재회사인 ‘올림산업’이라는 곳에서 1976년부터 1981년까지 사원으로 입사하여 대표까지 맡기도 했습니다. 1981년 이후에는 부동산 형질변경, 임대업 등 부동산관련 사업을 하는 ‘옥인실업’을 설립해 지금까지 경영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캐나다에 ‘GM’이라는 온실사업을 하는 회사도 경영하고 있고, 필리핀 다바오에 ‘코리아리조트다바오’라는 법인을 설립하여 리조트를 짓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듯 2002년까지 사업에 전념한 결과, 현재는 압구정동 가로수 길에 6층 건물 ‘옥인실업’과 임대사업을 하고 있고, 경기도 성남시에도 4층 건물에 ‘중앙사우나’와 임대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 사업을 하시다가 보면 어려움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1979년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날 때 쯤, 100억 가까운 부도를 맡게 됐습니다. 그때가 가장 어려울 때였던 것 같습니다. 은행권과 제2금융권에 돈을 빌리기 위해 분주하게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이 때 얻은 교훈이 사업할 때 ‘남의 돈을 무서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어려워도 거래처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자가 몇 십억씩 나가더라도 거래처와 후배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나는 손해가 보더라도 거래처가 큰 피해를 보지 않도록 배려한 거지요. 이 후, 경제가 살아나니 그분들이 다시 도와주어 사업을 빨리 재정비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부터 하루 2시간씩 자면서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또한, 사업을 하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신념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정의에는 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우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궁지에 몰리더라도 나만 위해 일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경영했습니다. ◇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사업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업할 때는 10만원으로 사업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10억이나 100억을 가져야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1명이 1,000명을 먹여 살리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업할 때는 개발도상국이어서 인지, 사업이 실패해도 다른 사업을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여건이 되지 않습니다. 압구정동 가로수 길 같은 경우 1층 월세만 월 2,000만원입니다. 하루에 150만원의 마진을 벌어야 운영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가능하면 젊은이들이 사업을 하지 말고 직장을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여러 직업이 있으니 자기의 꿈을 직장에서 함께 노력하여 이루어가면 좋겠습니다. ◇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봉사활동을 하셨는지요? 40대에 서대문JC 청년회장을 하면서 여러 봉사활동을 한 기억이 납니다. 홍수가 날 때는 수혜의연금을 모금하기도 했고, 나주 영산강둑이 무너질 때는 봉재사업을 하고 있어 피복 1,000여점을 수재민에게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바쁘다보니 봉사활동을 많이 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많이 해야죠. 이러한 활동으로 1980년대에 서울시장상과 동대문경찰서장상, 신사동 자문위원을 하면서 구청장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 재경문평향우회 회장을 역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요? 2010년부터 2011년까지 2년간 회장을 했습니다. 우선, 기존 향우회가 진행해 오던 임원회의와 체육대회, 송년회 등의 활동도 열심히 진행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1년에 두 번 만나는 것을 탈피하고자 ‘산악회’를 조직하여 매월 1회 산행을 하면서 회원단합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또한, 문평면 홍보지 ‘고막강’ 1호 출간은 고향을 알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고향지를 만들어야 모르는 고향소식을 알 게 될 것이고, 향우들의 근황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입니다. 무엇보다도 고향과 재경향우가 하나가 되는 계기가 되기 위해 기획했지요. ‘고막강’이 많은 분들에게 호응을 얻게 되었고, 그 결과 향우회 참여가 높아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재경문평향우회는 500여명의 회원이 있고, 주로 300여명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선배님들의 참여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선배님들의 참여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향우회장은 그만두었지만 향우회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계속 지원하겠습니다. 향우회에 활동한 계기는 너무 어릴 때 고향을 떠나와 고향을 위해 무언가 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문평남초등학교 11회 동창이 나주고향에 7-8명 정도 살고 있었는데, 고향친구들과 교류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고향과 향우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고향과 교류하는 계기를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나주 발전을 위해 조언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문평면 출신만 해도 기업가들이 많습니다. ‘나주산단’같은 경우만 해도 고향향우들 중에 기업하시는 분들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고향을 가보면 특수농업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많습니다. 제가 캐나다에서 온실사업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러한 특수농업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고향에 가서 특수농업관련 사업을 해보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캐나다의 경우도 4개월은 춥고, 4개월은 날씨가 좋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4계절이 있으니 이러한 온실사업과 같은 특수농업의 가능성을 큽니다. 나주시가 이러한 특수농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고향 나주를 위해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고향에서 농축산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돈과 기술을 지원하여 함께 사업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구체적으로 영산강 근처에 3층 정도 온실을 지어 수경사업을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혁신도시 내에 농어촌공사 등 농업관련 기관들이 많이 들어오게 되니, 이 기관들의 투자를 유치해 특수농업을 적극 지원했으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고향 나주인과 출향 나주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고향을 잘 지켜주셨기에 저희와 같은 향우가 서울에서 사업을 잘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고향에 가면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항상 고맙습니다. 또한, 미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고향분들이 지금처럼 고향을 잘 지켜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 ||||||
출처 http://www.na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419
| 출처 : | 재경 나주시 향우회 |
글쓴이 :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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