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경공부방 독서수업 스케치.hwp


충북현장포커스-가경지역아동센터'아이들은 항상 옳다'.pdf


아이들과 낙엽을 주우러 나갑니다.

주말을 심심하게 보내던 두 딸들이 단단히 채비를 하고 아빠와의 산책을 나섭니다.
목공풀, 가위, 채집한 풀들을 담을 바구니...


마음속으로는 어제 보았던 얼굴 모양을 만들려면 동그란 접시가 필요한데
미쳐 챙기지 못한 것이 찜찜하지만, 한편으로 멋진 아빠역할을 하는 것 같아 일단 뿌듯하게 시작합니다.

강아지풀, 말라버린 옥수수 수염 , 솔잎, 단풍잎..
솔잎으로 머리카락을 하고, 눈 모양을 할 도토리는 어디서 구하지?

어제 방문했던 지역아동센터에 걸려있는 접시 얼굴을 떠올리며
아빠는 자꾸 부족한 나무열매를 찾는데, 벌써 아이들은 채집에 대한 관심이 끝나고 서서히 동네 문구점으로 향합니다.

아빠의 멋진 자연놀이 활동계획은 300원짜리 불량식품 하나씩 물고 나오면서 끝이나고,
거실에서 가끔씩 발견되는 강아지풀의 씨앗들을 보며 '참깨보다 작은 씨앗들이 있었네'
나이 마흔이 넘은 아저씨는 딸들이 할 법한 자연탐구를 합니다.

'도대체 지역아동센터의 자연놀이 작품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거지?'
아이들과 자연을 좀 더 가까이 하고 싶은 아빠는 가경지역아동센터의 독서지도 시간에 늦깍이 학생으로 참석합니다.






오늘 참 재미있는 수업을 할 거에요. 참 잘오셨어요.
신준수 선생님은 전자레인지에서 방금 뎁힌 봉지를 꺼내는데, 놀랍게도 노란 은행잎, 빨간 단풍잎들이 들어있습니다.

"요렇게 작은 잎에서도 물이 나와요.
30초씩 여러 차례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낙엽을 건조시키는 거에요."

모양이 예쁜 낙엽만 골라서 책 갈피로 꼽아 두던 낭만도 군대생활을 끝으로 기억에서 사라진지 오래인데,
자연을 색깔별로 모으는 이야기를 들으니 존경의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단풍잎 떨어진 것을 주우면, 오늘 떨어진 거하고 내일 떨어진 거하고 색깔이 달리 나와요.
이거는 귤껍질, 이거는 서리맞은 호박잎, 이거는 따서 말린 호박잎..몇 백가지 색깔을 만들 수 가 있어요."


수업도구를 담아온 장바구니속에는 인디언 이름처럼
계절마다, 날마다, 온도마다 달라지는 풀잎, 낙엽들이 곱게 갈아져서 저 마다의 색깔과 향기를 내면서 비닐봉지에 담겨져 있습니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속에 남아있던 물기마져도 말라버린 낙엽들은 이제 어린 제자들의 손에서 고운 색가루로 갈아집니다.
낙엽을 손으로 부스럭 거리던 한 아이가 '아~개쉽다' 는 유행어 섞인 말을 하자 선생님은 단호한 목소리로 알려줍니다.

"개가 뭔지 알아? 개는 진짜가 아니라는 뜻이야. 참은 진짜라는 뜻이고,

개나리는 그래서 진짜 나리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말 이거는 크다는 뜻, 좀 이라는 것은 작다는 뜻 아무 말에나 '개'를 붙이는 것이 아니야."

'개'에 그런 뜻이 있었구나! 말을 제대로 알고 써야겠다 아저씨만 혼자 가르침을 되새기며 있지
그 귀한 가르침을 흘려듣는 아이들은 낙엽을 만지느라 더 소란스러워 집니다.



바닥으로 흘리면 안되지? 바닥으로 흘리면 우리 쓸 게 없지
나도 할래 ~ 여기 앉아서 해

바닥에 흘리면 우리 쓸 게 없으니까 흘리지 말고 이렇게 잘게 가루로 만들어 보세요. 무슨 냄새가 나니?
녹차 ~ 토끼 똥 냄새 ~ 보이차 냄새 ~

선생님 그런데 왜 믹서기로 안 갈아요?
손으로 만져보기 위해서 하는 건데, 믹서기로 갈면 안돼잖아
막 흔들지 말고 손을 넣고 살살 비벼주세요. 살살 살살 밖으로 안 나가게

 

오늘 뭐 한다고 했어 ? 지금부터 떠드는 사람은 재료 안줘!
지나 번에 뭐 읽었어? 박수근!
박수근이 누구야?
나무가 되고 싶은 화가..나무가 되고 싶은 박수근

나무를 주로 그렸다고 했어 그지? 이 사람의 특징은 뭐였다고 했지?
나뭇잎이 없다고 했어요
왜 나뭇잎이 없을까? 슬퍼서 ~
이 사람의 삶이 어떻다고? 슬퍼서 ~, 인기가 없어서
대회에 작품을 내보냈는데, 상을 못 받아서 슬펐다고 했지
대회에서 상을 받은 후부터 나무를 그릴 때 나뭇잎을 그렸다고 했지?

이 사람은 그림을 그릴 때 일반 크레파스, 물감으로 그린 게 아니고
나무 판에다가 톱밥하고 목공풀을 섞어서 칠을 해놓고 바짝 마른 뒤에 거기다가 그린 모습이라고 했지

이렇게 해서 지난번에 박수근의 작품을 그려봤어.
오늘은 직접 나뭇잎을 이용해서 작품을 할 거야

 

어떻게 하는 가 하면 선생님이 작은 것을 줄거야. 큰 나무는 선생님이 만들고,
너희들은 여기다가 꽃을 그려. 열매를 해도 돼

이렇게 꽃잎을 그렸지? 꽃잎 안에다가 목공 풀칠을 하고
풀칠한 위에다가 빨간꽃은 빨간 가루, 노란 꽃은 노란 가루를 얹으면 돼

노랑색은 은행잎이었어.
빨간색은 빨간색 벗나무 잎과 단풍 빨간색 초록색도 여기에 있어

아~ 써보고 싶다

여러가지 색깔을 이용해서 꽃을 만들면 돼
빛에는 무슨 색이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빨주노초파남보가 다 있잖아
빨간 꽃에도 빨주노초파남보가 다 들어있는 거야

눈에 보이지 않는 색이 있으니 빨간색만 하지 말고 여러가지 색을 섞어

아이들 목소리가 큰가? 선생님 목소리가 더 큰가? 경쟁을 하듯 요란스런 수업이 진행이 되는데,
신기하게도 물어보는 족족 지난 시간 읽었던 책 내용이 메아리 같은 대답으로 돌아옵니다.

맞다 독서지도 선생님이라고 했지
그제서야 아이들이 읽은 책 내용이 손바닥에서 그림으로 변하고 있는 신기한 수업이라는 것을 눈치챕니다.


단순히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책속에 등장한 화가의 입장이 되어 화가의 방법처럼 사포에다가 그림을 그려보고,
나무를 느낄 수 있는 낙엽으로 그림을 그리는 겁니다.

"박수근 따라하기 하는 거에요. 박수근이 처음 작품 할 때 나뭇잎이 아니라 톱밥으로 그렸거든요
지난 수업에서는 사포에다가 박수근의 작품, 내용을 그림을 그렸고요, 오늘은 낙엽으로 그림을 그리는 거에요"

선생님 꼭 꽃을 그려야 해요?
이건 정답 없어. 뭐 돼요? 이런 거 묻지 마세요

도토리도 돼요?
이건 정답 없어. 자기 생각을 하면 되는 거야~

자기 그림 그린 데에다가 목공풀칠을 해요
도토리를 그렸지? 윗부분은 진한색 밑부분은 연한색을 하면 되겠지?
이렇게 풀칠을 해놓고 여기다가 가루를 뿌리면 돼


얘들아~
꽃만 있는게 아니고, 열매도 있고
밑에 작은 나무도 있고, 토끼도 놀러 왔네

이렇게 박수근 따라하기 수업을 했는데,
길을 가다 박수근 그림 전시회 이런 걸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관심이 가겠죠?

지난 시간하고 오늘 하면서 뭐를 생각했어?
박수근은요 감성이 풍부한 것 같아요.
냄새도 맡아보고 , 만져보고 손으로 부셔보기도 하고 생각보다 재미있었어요
처음생각은 어땠는데?
처음에는 좀 힘들었는데, 톱밥가져다 만지작 그러니까 재미있었어요
그림에 대해서 생각이 풍부해졌어요

박수근 따라하기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그림을 그릴 것 같애?

나무,
앙상한 나무
여럿이 모여있는 사람들
나뭇잎이 있는 나무




어느새 수업은 자연을 쏙 빼닮은 나무와 꽃과 열매들로 가득찬 작품이 되며 마무리가 됩니다.

지역아동센터 곳곳에 전시된 작품들마다
선생님의 즐거운 고민과,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리와 오가는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더디고,
떠들기만 하는 것 같아도 아이들은

길을 가다 박수근의 작품을 만나면 멈춰서 유심히 볼 것이고,
계절마다 바뀌는 낙엽을 보면서
크레파스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색을 간직하는 방법을
자기의 아이들에게 다시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신이나 있는 자신처럼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즐거워 하는
신준수 선생님 자신 처럼요..

" 저는 아이들한테 반응을 바라는 게 아니라
이 아이들이 저 만큼의 나이가 되었을 때
어른이 되어서 자기 아이를 키우면서
그때 제 생각을 할 지모르거든요. 제가 그렇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