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17.8.19.토 10:34~14:44(탐방시간 07:10  이동거리 14.51km  평균속도 2.4km/h)  날씨: 흐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교수가 마침내 '서울편'을 펴냈다는 뉴스가 보인다.

그중에 언급되는 게 서울 바닥인 종로 세검정 쪽에서 들어가는 백사실계곡 이야기가 나온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탄핵당하여 업무가 정지되었을 때 가끔 들리며 감탄했다는 곳이다.


요즘은 북한산으로 등산하러 다니며 갈 때마다 어디로 갈지 늘 고민 중인데, 뉴스를 따라 백사실계곡으로 간다. 

그다음은 팔각정으로 올라가 북악산을 타고 인왕산으로 건너간 다음 탕춘대능선을 탈 생각이다.

사실 북악산에서 인왕산을 연계해도 제법 긴 코스라 탕춘대능선까지 갈 시간이 될지 걱정이다.



백사실계곡에서 북악산 인왕산 탕춘대능선 탐방코스 



세검정초등학교에서 하차해 바로 앞에 있는 육교를 넘어 홍제천을 가로지르는 신영교를 건너 직진하면 곧이어 현통사를 만난다.

현통사로 들어가기 전에 있는 바위 왼쪽에 탕춘대라는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멸실되고 없다. 

현통사부터 백사실계곡이 시작되는데, 계곡과 어울리는 현통사에 잠시 들려본다. 




불교에서는 연꽃을 신성시하여 부처님의 좌대를 연꽃 모양으로 수놓는데, 이를 '연화좌'라 한다. 

꽃의 색이 깨끗하고 고와서 꽃말도 청결, 신성, 아름다움이다. 

불교를 상징하는 부처님의 꽃인 연꽃은 싯다르타 태자가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씩을 

걸을 때마다 땅에서 연꽃이 솟아올라 태자를 떠받들었다는데서 불교의 꽃이 되었다.

연꽃을 이르는 표현으로 처염상정(處染常淨)이란 말이 있다. 

이는 더러운 곳에 처해 있어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항상 맑은 본성을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맑고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 세상을 정화 한다는 말로 연꽃의 성격을 잘 대변하는 말이다. 

군자는 더러운 곳에 처해 있더라도 그 본색을 물들이지 않는다는 유교적 표현과도 그 뜻을 같이 한다.

이렇듯 연꽃은 진흙 곧 사바사계에 뿌리를 두되 거기에 물들지 않고 깨달음의 세계를 향해 피어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꽃송이가 크지만 몇 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중심을 향하여 겹겹이 붙어있어 형성된 모습이 불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이런 의미를 갖고 있기에 현통사 경내에도 이렇게 많은 연꽃이 줄지어 놓여 있다. 


대웅전 창문의 연꽃 문살 무늬가 예쁘게 채색되어 담아본다. 마치 잘 짜여진 자개장롱을 보는 느낌이다. 


백사실계곡으로 오르며 바라보는 현통사의 전경 



백사실계곡은 작은 만큼 아담한 크기다.

북한산 형제봉능선이 북악팔각정을 지나며 슬금슬금 낮아지다가 다시 올라간 곳이 북악산이다. 

이 형제봉능선 아래쪽으로 구기터널과 홍지문터널이 관통하고, 위로는 팔각정을 중심으로 마을을 잇는 도로가 놓였다.

그만큼 작은 고개 아래로 흐르는 계곡이라 비가 많이 와도 개울물은 졸졸거리며 흐를 만큼 작은 규모다.

왼쪽 별서터로 넘어가는 개울 위로 돌다리가 얹힐 만큼 가깝고 좁다. 


별서터에서 돌다리다른 건너편 바위에 이렇게 원암이란 커다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바위 에서 바라보는 달은 어느 곳 보다 더 특별한 의미로 보이는 걸까? 


왼쪽 뒤에 있는 바위도 절반은 잘렸고, 앞쪽에 있는 큰 바위도 자르려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까운 탕춘대성까지는 제법 거리감이 있으니 성벽에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이곳 별서터에 필요했으리라. 


유홍준의 서울편 "나의 문화유적답사기"가 언론에 소개된 다음이라 그런지 오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참 많다.

저들이 지나간 후 팀별로 20여 명씩 3팀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한동안 시끌벅적하다. 


별서터가 있던 자리로 왼쪽엔 기단이 높은 돌이 놓여 있는 걸로 봐선 연못을 바라볼 수 있는 정자 형태의 건물이 들어섰을 것이다.

이 별서채는 유명한 별장이었다는 데, 1930년대에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그 유명했다는 별장도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 시운을 다하듯 그렇게 스러지고 만 것이다. 


크지 않은 연못엔 수생식물이 자라고 연못 윗쪽에서 작은 정자 하나가 얹혔을 주춧돌이 삐죽 솟아 있다. 

가을 단풍이 그윽하게 들었을 때나 눈 내린 다음날의 운치가 기가 막히겠다. 





백석동천은 조선시대 별서가 있던 곳이다.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 건물터와 연못 등이 남아 있으며

인근에 '백석동천', '월암' 등의 각자바위가 있다.

백석동천의 백석은 '백악(북안산)'을 뜻하고,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좋은 곳'을 말한다.

따라서 '백석동천'은 '백악의 아름다운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란 뜻이다.

백석동천은 인근 주민들에게 "백사실계곡"으로 불리면서 이항복의 별장지였다고도 전해진다.

이는 이항복의 호가 백사(白沙)인 것에서 유래하여 구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엔 연못과 육각정의 초석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뒤의 높은 터에는 사랑채의 돌계단과 초석이 잘 남아 있다.

사랑채 뒤에는 안채가 있었다고 한다.

백석동천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건물들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격조 높은 별서건축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안내문 편집) 




별서터에서 계곡을 따라 좀 더 올라온 곳이다. 

서울에 이렇게 아담한 계곡이 숨어 있다는 게 놀라우나 백사실계곡은 상당히 짧게 끝난다. 

세검정에서 마을이 지나 부암어린이집을 지나며 시작되는 계곡은 백석동천이 새겨진 암각바위를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또 다른 마을과 만난다.

아랫마을과 윗마을의 경계선에 마치 휴전선처럼 완충지대가 필요했던 걸까?

이 작은 계곡이 흐르며 아는 사람들만 찾는 별천지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또 한동안 시끌벅적하게 생겼다. 


백사실계곡의 상류에 암반을 타고 흐르는 계류 




계곡이 깊지 않아 물을 크게 담아낼 만큼 큰물이 흐르지 않을 테니 나무다리도 그저 무릎을 덮을 정도의 높이면 족하다.


백석동천 암각

마을 사람들은 백사실계곡으로 불렀다지만 한문을 즐겨쓰던 조상님들은 한자로 이곳은 백석동천이라 불렀다.

'동천'이라고 하는 것은 신선이 사는 곳이라니 이 백사실계곡은 서울에서도 신선이 살 만큼 아름다운 곳이란 뜻일게다. 



백사동천 암각바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올라서면 산 위를 관통하는 도로변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과 담을 잇댄 응선사 절도 있고... 

고풍스러운 담장을 담쟁이덩굴이 기세 좋게 감싸 흔적만으로 담장을 알 수 있는 제법 잘 사는 동네다.

이 마을을 따라 팔각정으로 오르려다가 포장된 도로를 걷는 게 싫어 한참을 돌더라도 다시 백사실계곡으로 내려간다.

백사실 뒤 능선을 혼자 전세 내며 호젓하게 한참을 걸어서야 북악팔각정에 다다를 수 있었다.


팔각정으로 난 도로는 산을 따라 고불고불 길을 따라 가끔 차들이 지나가고, 더 많은 바이크 라이딩족이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며 내달린다.

공기 저항을 없애기 위해 수영복같이 몸에 달라붙는 싸이클 복을 입으면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니 그것도 착한 몸매를 가진 사람들의 특권이다.



팔각정으로 가며 보는 북한산은 흐린 날씨로 제대로 보이지도 않지만, 백운대를 막아버린 의상능선과 보현봉이 북한산 정상처럼 보인다. 



북악팔각정에서 잠시 요기를 하며 쉰다. 

많은 사람들이 차로 이동해 데이트를 하거나 바이크 족들도 여기서 잠시 숨을 돌리고 이동하는 장소다.

나같이 배낭을 맨 사람들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으니 어쩌다 형제봉이나 북악산으로 가는 사람들만 보인다.



팔각정에서 북악산 가는 길은 원체 외지다 보니 한두 명 겨우 만날 뿐이다.

성북천 발원지를 가로지르는 목책을 건너면 아래쪽에 삼청각이 보이고 좀 더 걸으면 숙정문 입구에 다다른다.

잠시 삼청각에 다녀올까 생각도 해보지만, 가봐야 덩그런 건물만 우뚝 솟아있고 음식도 안 먹을 등산객을 곱게 맞아줄 리도 없다.

결국, 삼청각 방문은 포기하고 신분증을 제시하여 안내소에서 지급하는 번호표를 목에 걸고 북악산에 오른다. 


백사실계곡과 연계하여 어쩔 수 없이 오른 북악산이지만, 산은 낮아도 워낙 계단이 많아 여느 산과 달리 무척이나 지루하고 힘들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오르지만, 더 이상 오를 일은 만들지 않겠다. 청운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북악산은 서울의 주산으로 경복궁 북쪽에 우뚝 솟아 있으며 북악이라 칭하였다.

일명 백악, 공극산, 면악이라고도 불리었다.

백악의 이름은 상봉에 조선 초부터 백악신사(白岳神社)가 있었던 데서 연유되었다.

북악의 남쪽 기슭에는 청와대가 있어 북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1968년 1.21사태 이후 

청와대 인근인 북악산 일대는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으나 노무현 정부인 2007년 4월 5일 이후 전면 개방되었다.

지금도 북악산 일대 소나무 등에서 1.21사태 때 총알이 박힌 모습을 볼 수 있다.   (안내문 편집)




북악산 정상 


북악산 날머리에서 표찰을 반납하고 잡시 쉬는 데,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누구지? 하며 보니 박원순 서울시장님이다.

다가가 "반갑습니다." 하고 악수를 교환하며 보니 다른 사람들과도 스스럼 없이 대하는 모습이 참 소탈하시다. 


1.21사태 때 종로경찰서에 근무 중이던 정종수 경사는 김신조 일당과 교전 중에 전사하자 그를 기리기 위해 동상을 세웠다.


창의문과 윤동주문학관을 지나 인왕산으로 오른다. 

인왕산으로 오르며 잠시 성벽 넘어 마을을 내려다 보니 석물이 잔뜩 모여 있다.

이 석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곳에 온 것이지 매우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서울 외성에 해당하는 이 인왕산 성벽도 몇 번에 걸친 증개축으로 여러 형태의 성벽이 존재한다. 



인왕산 정상을 불과 200여 m 앞둔 갈림길에서 잠시 쉬며 요기를 하는 데, 한두 방울 비가 내리더니 이내 멈춘다.

오후에 비 예보를 보고 우비를 준비하긴 했으나 요 며칠 계속되는 비 예보가 자주 빗나갔다.

오늘도 그려러니 하고 우비까지 챙겼지만, 한두 방울 비도 비라면 예보는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인왕산 정상을 찍고 사직단이나 무악재역 또는 독립문역 쪽으로 하산할 수 있지만, 오랜만에 홍지문으로 하산할 생각이다.

나중에 지도를 다시 보며 마당바위로 내려갈 걸 하고 후회하기도 했으니 언제 다시 기회를 만들어야 하겠다. 

기차바위로 넘어가는 능선이다. 


기차바위로 가며 보는 구멍바위 


좀 전에 쉬었던 왼쪽 갈림길 초소와 인왕산 정상 


기차 만큼이나 긴 바위라 기차바위란 이름이 붙었다. 


이 바위에 앞서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마당바위로 가는 가보지 않은 길인데, 다음엔 그 코스를 이용해야겠다. 


건너편 바위 쪽으로는 미답지역이라 다음엔 갈 수 있을런지... 


서울순환외곽도로는 인왕산 홍지문 터널을 통과하며 많은 차량들이 움직인다. 

세월이 좋으니 산이 막히면 터널을 뚫고 강이 막히면 다리를 놓는다.

이젠 강뿐만 아니라 육지와 섬, 섬과 섬 사이에도 다리가 놓이니 세상은 더 가까워 지고 편리해진다. 



인왕산에서 홍지문으로 내려가는 성벽은 그저 무릎 위 정도의 높이다.

숙종 때 시작한 북한산성은 용케 준공되었지만, 외성으로 쌓던 인왕산성과 탕춘대성은 숙종이 서거하자 정치적인 이유로 중단되었다.

지금이야 더 쌓을 이유도 없으니 이제 이 성은 나무가 자라고 수풀이 우거지면 점점 쇠락하여 언젠가 무너질 것이다.

기차바위에서 홍지문으로 내려가는 이번 코스는 상당히 긴 편에 속한다.

홍제역으로 내려가는 코스가 일반적이라 그쪽은 혼잡한 편이지만, 이쪽 코스는 별로 알려지지 않아 이용객도 드물다. 



드디어 만난 홍지문, 홍지문으로 떨어져 옥천암을 지난다.

옥천암이라길래 홍제천에 제법 근사한 바위를 볼 수 있겠단 기대를 갖고 내려가다 보니 옥천암(玉泉庵)이 나타난다.

바위를 좋아하다 보니 庵자를 岩자로 착각했나 보다. 

옥천암 경내에 있는 큰 바위에 마애불상이 조성되어 있으니 아마도 그 바위가 옥천암(岩)인데, 사찰이 생기며 옥천암(庵)으로 지은 모양이다.

그래저래 이 암字가 庵도 되고 岩도 되니 겨울에 눈 맞아 흐르는 게 눈(雪)물인지 눈(目)물인지 모르는 격이다.




사찰로 들어가지 않고 담장격인 창살 사이로 본 옥천암의 마애불상, 이 바위가 옥천암(庵)에 있는 옥천암(岩)으로 추측된다. 

이 마애보살좌상은 보물 제1820호로 보살이다 보니 팔찌와 목걸이가 있고 입술을 붉게 칠했다. 


옥천암 앞을 흐르는 홍제천 



옥천암을 지나 나무데크를 한참이나 오른 후 어렵게 탕춘대성으로 가는 등산로를 잡아 탔다. 

그 전에 샛길이 있어 오를려고 했으나 워낙 수풀이 우거져 들어갈 수 없다.

하여 한참을 더 지나 겨우 올라타 수 있었는데, 보이는 상명대학교는 탕춘대성을 끼고 북한산의 정기가 흐른다.

이 등산로는 탕춘대능선을 타고 향로봉 도는 비봉으로 올라가거나 아니면 암문을 빠져나가 북한산 자락길을 따라 하산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암문을 만날 때까지는 인적이 드문 곳이라 상명대 뒤쪽의 성벽은 수풀에 가려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탕춘대성벽은 오른쪽에 개나리가 왕성해 보이지도 않는데, 암문에 이를 때까지 거의 이런 모습이다.



창춘대성 유래

탕춘대성은 서울성곽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성으로, 도성과 북한산성의 방어기능을 보완하고 군량을 저장하기 위하여 만들었다.

북한산성을 쌓자마자 탕춘대성을 축성하려 하였으나 곧바로 시작하지 못하고 1718~1719년 두 해에 걸쳐 성을 짓게 되었다.

이 성을 탕춘대성이라 부르게 된 것은 연산군의 연회장소인 탕춘대가 앞서 본 백사실계곡의 현통사 입구 바위 옆에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한성의 서쪽에 있다하여 서성이라고도 불렀다.

인왕산 동북쪽에서 시작한 탕춘대성은 북한산 비봉 아래까지 연결되며 길이는 약 5.1km에 이른다.

보현봉~형제봉~북악산을 연결하는 능선에도 성을 쌓으려고 했으나 숙종의 사망 등으로 시행하지 못한 체 지금의 성곽만이 남아 있다.

탕춘대성은 이후 훼손되고, 홍수 등으로 일부 구간이 무너지고 방치되다가 1977년 홍지문과 함께 일부 구간이 복원되고 정비되었다.  (안내문 옮김)


더 이상 오르지 않고 이 탕춘대 암문을 빠져 나와 북한산 자락길을 걸으며 장군바위를 지나 녹번역으로 하산한다. 


북한산 자락길 


멀리 족두리바위 


향로봉과 비봉은 물론 멀리 의상능선과 보현봉도 보이고... 


장군바위 


왼쪽 인왕산으로 하산하여 탕춘대성을 거쳐 이곳 장군봉까지 오게 되었다. 

오른쪽은 안산이다. 


장군바위 내려가는 길 



의도하지 않았던 북악산은 백사실계곡을 탐방하면서 오르게 되었다.

인왕산만 하더라도 조망이 좋고 바위가 많아 계단은 그럭저럭 감내할만 하다. 

예전 기억을 더듬어 인왕산에서 탕춘대능선을 타긴 했지만 수풀이 우거진 여름이라 입구를 뚫고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서울에 자리한 북한산도 이렇게 들어가기 힘든 곳도 있다.

제법 긴 거리를 탐방하며 2리터의 물을 흡입한 그러나 견딜만 한 여름날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