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6. 토   08:32~12:32(전체 시간: 네 시간, 전체 거리: 11.7km, 평균 속도 2.9km/h)  안개 가득



오늘 입사 동기 아들네미 결혼식이 서울 명동역 인근에서 오후 한 시에 진행된다.

한낮이라 산행하기도 애매하고, 내일은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하니 내일도 산행하기는 틀렸다.

지도를 놓고 보니 라루체 결혼식장 인근의 남산이 눈에 띄는데, 거리는 불과 600여 m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 번도 간 적 없는 남산을 결혼식 전에 다녀오기로 하고 교통편을 알아본다.

지하철이나 버스 모두 도착 시각은 비슷하지만 편하게 앉아갈 수 있는 버스를 이용한다.

신한은행 본점에서 하차하여 약 600m를 걸어 남산에 도착했을 땐 안개로 시야가 너무 좁다.

이젠 최남단이나 제주에서나 볼 수 있는 단풍이 아직 버티고 있는 게 보이니 안개 속에서도 가을 정취를 느낀다.

아이폰만 들고 사진을 담는다.







남산


높이 265.2m. 대부분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쪽의 북악산, 동쪽의 낙산(駱山), 서쪽의 인왕산(仁旺山)과 함께 서울 중앙부를 둘러싸고 있다.

목멱산(木覓山)·종남산(終南山)·인경산(仁慶山)·열경산(列慶山) 등으로도 불렸으나, 주로 목멱산이라 하였다.

조선 태조가 한양(漢陽)을 도읍으로 정하였을 때 남산은 풍수지리설상으로 안산(案山) 겸 주작(朱雀)에 해당하는 중요한 산이다.

북악산·낙산·인왕산·남산의 능선을 따라 축성된 도성(都城)이 지금도 남산 주변에 일부가 남아 있다.

조선 시대 통신 제도의 하나인 봉수제(烽燧制)의 종점인 봉수대가 있어 국방상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자금의 남산은 각지로 매스미디어 전파를 발송하는 중요 기능을 하고 있다.

「애국가」에 남산의 소나무가 철갑을 두른 듯하다는 구절이 있을 정도로 남산에는 원래 소나무들이 울창하였으나

일본인들이 우리의 정신을 빼앗기 위하여 소나무를 베어내고 아카시아 등의 잡목을 심어 산의 경관을 많이 해쳤다.

8·15광복 이후 무질서한 개발로 자연이 많이 훼손되었으나 개발제한구역의 설치와 함께 녹화사업에 노력하여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게 되었다.

남산의 동·서·북쪽의 사면 일대에는 자연공원인 남산공원이 설치되어 서울 시민의 휴식처로 제공되고 있다.

현재 산정에는 서울타워라 불리는 방송탑과 팔각정이 있으며, 이곳은 케이블카로 오르내릴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집)



도심에서 올라온 거리




8일 전에 입동이라 이젠 겨울인 줄 알았더니 다 물러간 가을이 남산에 남아 있다.

24절기 중 춘분, 추분, 하지, 동지만 빼고 나머지 절기는 이제 기후변화로 거의 맞지 않는다.

사실 24절기는 중국 계절에 맞춘 것이라 우리나라는 적어도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빠르다.

삼한사온도 이젠 추위보다 미세먼지가 심해 삼한사미로 바뀐 지 오래다.

최근 이탈리아의 수상 도시인 베네치아는 홍수로 주변 조수 수위가 12일 오후 기준으로 187cm까지 치솟았다.

이 바람에 베네치아가 거의 다 잠기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지구 멸망의 시간이 점점 조여 오는 느낌이다.




공원 입구엔 김유신 장군, 성재 이시영 선생, 백범 김구의 동상이 있다.




잔디 아닌 강아지풀도 가을 정취에 한 몫 보탠다.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건물 옥상의 원형탑도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어제 일기예보엔 오전에 안개 끼고 맑겠다던 날씨가 맞긴 하는데, 안개가 껴도 너무 끼었다.




안중근 전시관이 동절기인 11월부터 2월까지는 11시부터 개관이라 내려올 때 들려야겠다.




안중근 의사 동상과 동상 기단에 설치된 조각












날씨만 쾌청하면 기막힌 단풍일텐데...




















익은 놈과 안 익은 놈 




여긴 노란 단풍이 흙을 덮어 기막힌 풍경이 연출된다.








이끼정원


우리나라에는 300여 종류의 이끼가 있으며 이곳에는 참깃털이끼와 털깃털이끼, 깃털이끼 3종류로 조성했다.

이끼는 산소량이 일반 대기층보다 18.5~21배 더 많이 나오는 효과가 있다.

이끼는 대기 및 토양오염에 민감하고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서 자라는 대표적인 지표 식물이다.

또한 이끼는 전체적으로 녹색을 띠므로 보는 사람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어 관상 가치와 숲 치유에 효과가 크다. (안내문)



물을 끌어올려 흘러보냄으로써 이곳의 정취를 살린다.




















팔도 소나무 단지다.

남한 지역 곳곳의 소나무를 받아 심은 곳으로 제주 곰솔까지 식재되어 있다.








맨 위 왼쪽 소나무는 정이품송 맏아들 나무다.

안내문을 보고 누군가 일행 중에 정이품송 장자목이라고 하니 어떤 여인이 깔깔거리며 "나무가 어떻게 아들을 낳냐?"며 웃는다.

“2019년 현재 양묘장에서 육성하는 정이품송 후계목은 약 1만그루지만, 대부분 10년 이내의 어린나무여서 아직은 활용이 제한적이다”

라는 뉴스가 검색된다.

보은군은 이 후계목을 한 그루 당 1백만 원씩 판매해 한 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무슨 걷기 대회라 제법 많은 사람을 만난다.

처음 남산을 오를 땐 제법 나이 든 사람을 만났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 사람도 눈에 띈다.

노년층은 건강에 관심을 갖다 보니 아침부터 산책을 시작하고 젊은이는 잠이 많아 좀 더 시간이 지난 후 만난다.









서울 한양도성의 가치와 의미


한양은 백악-남산-인왕산의 내사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이 사산의 능선 다라 도성을 축성했다.

초축 이래 500여 년 동안 그 형태와 기능을 유지하였으며 도시의 방어 및 경계 시설로서 수도의 위엄을 표상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훼철과 광복 후 도시화 과정에서도 한양도성은 전체 길이 18.627km 중 약 13km를 원형으로 유지했다.

한양도성은 동아시아 도성 조영의 원리와 유교 가치관이 반영되어 전통적인 제도와 가치들의 상호 교류를 증거하고 있다.

현재까지 한양도성의 성문과 성곽의 원형이 보존되어 있고, 수축의 기록이 성벽에 잘 남아있어 조선 시대 수도성곽 형식의 전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500여 년 동안 축적된 역사적 층위를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시기에 걸쳐 다양한 규격의 석재와 다양한 축조 공법이 사용되었기에 조선 시대 전 기간에 걸친 축성의 전통과 기술 발달 단계의 유형이 나타난다.

특히 성벽에 남아 있는 각자(刻字)는 국가기록 문헌과 일치하여 조선 시대 기록문화의 전통이 투영된 증거물이다.

아울러 한양도성은 문학과 예술의 대상이자 교유의 공간이었다.

도성 한 바퀴 도는 순성 전통은 놀이문화이자 성곽 관리방법으로 현재에도 계승되고 있다.  (안내문)










남산타워의 자이로드롭도 끝이 다 안 보인다.

시간이 제법 지났으나 여전히 안개는 오리무중이다.




목멱산 봉수대터


목멱산 봉수대는 서울에 있다고 하여 경봉수(京烽燧)라고도 불렸는데 전국의 봉수가 집결되던 곳이다.

봉수제도는 신호체계에 따라 연기나 불을 피워서 변방의 긴급한 사정을 중앙까지 알렸다.

해당 지역 주민에게도 알려 빨리 대처하도록 하는 일종의 통치수단이다.

바라보기 좋은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불을 피워서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전국에서 오는 봉수는 남산에서 집결하였고, 남산 봉수대는 제1봉수~제5봉수까지 다섯 곳의 봉수대가 있었다.

이곳은 1993년에 김정호의 <청구도> 등 관련 자료를 참고해 남산의 다섯 개 봉수 중 하나를 복원한 것이다. (안내문 편집)









안개가 점차 벗겨지긴 하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남산 오르기가 힘들면 이 케이블카로 쉽게 오를 수 있다.








무슨 공사현장을 둘러싼 가림막에 인쇄된 풍경으로 멀리 남산이 보인다.





<도성도> <광여도>




수도 한양의 시작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1394년 8월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를 결정하고 옛 전통과 풍수지리, 유교적 이념을 겸비하여 건설하였다.

궁궐은 백악 기슭에 건립하고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 따라 좌측에는 왕실 조상신을 모시는 종묘(宗廟)를,

우측에는 토지와 곡식의 신을 모시는 사직(社稷)을 두었다.

궁궐 앞 대로는 육조를 비롯한 주요 관청을, 흥인지문과 돈의문 그리고 숭례문을 T자로 연결하는 중심 대로엔 상업시설인 시전(市廛)을 설치하였다

한편 수도의 경계가 되는 도성은 한국의 성곽 축조 전통에 따라 산세에 의지하여 건설하였다.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백악(북악산)·낙산(낙타)·남산(목멱)·인왕산의 내사산 능선을 따라 쌓으면서 평지 부분까지 연결하여 완성하였다.


                                                                                                                                 (자료출처: 서울역사박물관 한양도성연구소)



남산을 한 바퀴 돌아 처음 올라올 때 본 안중근 전신관 앞에 도착했다.

결혼식까지 한 시간 남았기에 잠깐 들어가 본다.




전시관 입구의 안중근의사 상이다.

그 뒤로 단지 후 생긴 피를 종지에 받은 후 쓴 대한독립(大韓獨立)이란 글자가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단지의 아픔을 참아가며 피가 굳기 전에 쓰던 그 심정으로 극일해야 한다.

오늘도 남산을 오르며 망령든 늙은이들이 지소미아를 종료한다는 문 대통령이 망신당했다는 얘기를 지꺼릴 때 피가 꺼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일본이 경제보복으로 선방을 날렸는데, 꼼짝 말고 얻어터지고만 있으란 얘긴가?

지소미아는 이명박 때 밀실 추진 논란이 일면서 서명 50분 전에 취소되었다.

이후 박근혜 때 국무회의에서 졸속으로 의결해 하루만에 서명한 것으로 우리나라엔 실익이 없다.

그런 사실관계도 모르는 늙은이들이 그렇게 지껄인다니 늙어도 세상을 바로 아는 지혜와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주말 결혼식 참석에 앞서 들린 남산은 처음 산행한 산이다.

산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작으나 한양도성이 있는 조선의 500년 역사가 현재까지 관통되는 역사적인 장소다.

지금 일본과 경제전쟁은 물론 기 싸움이 한창이다.

이즈음에 안중근 전시관에 들러 일제의 만행과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안중근 의사의 외침이 지금도 유효한 까닭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