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나라 대부 중에 굴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잘 생긴 외모에 건장한 체격에다 문무를 겸비한 초나라의 엄친아였던 굴무는 전에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우연히 하희를 본 뒤로는 항상 마음속에 그녀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타국의 남편 있는 여인을 어찌 해 볼 도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영원히 마음속의 여인일 줄 알았던 하희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진(陳)나라를 망하게 하고, 진영공을 죽게 하고, 무엇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하징서의 사지가 찢겨 죽던 날, 이 여인이 왕 앞에 엎드려 자신의 목숨을 구걸합니다. 초장왕이 누구입니까? 재위 초 오직 주색으로만 삼년을 보낸 전력이 있는 왕이었지요. 하희의 미모가 왕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초나라에 있는 자신의 비빈이 다 하찮아보이게 할 만큼 하희는 빼어났습니다.


   왕이 하희를 취할 뜻이 있음을 신하들에게 내비췄습니다. 왕이 원한다면 굴무도 포기했어야 했는데 그는 눈앞에 현실로 다가온 꿈을 놓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왕께서 군사를 동원해 진을 친 것은 하징서를 문죄하고 천하를 바로잡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왕께서 하희를 취하시고 여색을 탐하신다면 진나라를 친 대의마저 잃게 됩니다. 이는 천하의 맹주이신 왕께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었지만 문제는 굴무의 속내가 따로 있다는데 있었습니다. 신하들의 논리적인 간언은 언제나 받아들였던 초장왕이 이를 수용했습니다. 왕이 하희를 놓아주라 명하자 이번에는 공자 측이 자신의 부인으로 삼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초장왕의 포기로 한 숨 돌린 굴무가 새롭게 나타난 연적을 용납할 리가 없겠지요. 굴무는 하희가 나라를 망치는 경국지색이고 남자를 요절하게 하는 음물임을 내세워 공자 측 또한 하희를 취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굴무의 반대로 하희를 얻을 수 없게 된 공자 측이 화가나 굴무에게 윽박지릅니다. “그대로 인해 왕도 나도 하희를 얻지 못했으니 그대 또한 하희를 얻지 못할 것이다.”


   공중에 떠버린 하희를 차지한 건 얼마 전 상처해 홀아비가 된 양노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의 갑작스런 결정에 굴무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초장왕의 엉뚱한 결정으로 인해 닭 쫒던 개 신세가 된 굴무에게 아직 희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새로 하희를 얻은 양노가 이미 노인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젊은 남자도 하희를 감당 못해 죽어나가는데 늙은 양노가 얼마를 버티겠는가?” 굴무는 마음속의 결기를 새로 다지며 양노가 죽기를 기다렸습니다.


   굴무의 기다림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굴무가 포기했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었지요. 양노가 하희를 얻은 지 1년이 안 되어 죽었기 때문입니다. 양노의 사망 원인은 하희에게 양기를 모두 빼앗겼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진(晉)나라와의 필의 전투에 출전했다가 전사했습니다. 승리한 전쟁에서 귀족이었던 양노가 전사한 원인을 굳이 하희에게서 찾는다면, 하희에게 양기를 모두 빼앗겨 허약해졌기 때문이라면 억측일까요?


   양노가 전장으로 나가자 양노의 아들 흑요가 어머니뻘 되는 하희에게 손을 내밉니다. 하희는 선천적으로 내민 손을 뿌리치지 못하는 여자였을까요? 둘은 서로 간통했습니다. 양노의 죽음이 전해지고 나서도 둘의 간통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희에게 미쳐있던 흑요는 전장에서 고혼이 되어 떠도는 아버지 양노의 시체를 찾지 않았고 세상이 그런 하희와 흑요를 비난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하희는 양노의 시체를 찾으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친정인 정나라로 달아나려 했습니다.


   하희의 주변 상황을 꿰고 있던 굴무가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하희에게 자신의 마음을 밝힌 뒤 정나라에 가 있으면 자신도 뒤따라가 결혼하겠다는 계획을 설명합니다. 마다할 하희가 아니겠지요. 이때부터 굴무는 모든 외교 채널을 동원해 하희를 정나라로 보내고 진(晉)나라로부터 양노의 시체를 돌려받는 데 성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