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선언문


나, 이상예의 사명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임으로

개인적 글짓기와 공동체 예배 인도를 통해

먼저 본인이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나아가 성도들이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도록

섬기는 것이다.




10년 후 나의 어떤 하루


- 이상예 -


마지못해 눈을 떠야했던 날들은 지나갔다. 저절로 눈이 떠지고야 마는 것이다. 새벽 4시. 누군가는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고 놀려대겠지만, 초저녁 시간을 꼼짝없이 잠에 바치고서 얻은 이 시간이 나는 마냥 좋다. 내게 새벽은 아침 묵상을 위해 선물 받은 것이다. 좀 더 긴 잠인 죽음 이후에 맞게 될 부활의 아침에 나는 첫눈에 주님을 알아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이 제 목자의 음성을 알 듯, 그분의 음성에 친숙해져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고요한 새벽 미명에 그분의 음성에 귀를 집중한다. 열 번도 더 묵상했던 누가복음을 마치 처음 만난 것처럼 새롭게 빠져든다. 늙지도 아니하시는지, 그분의 음성은 한 결 같이 싱그럽다.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눅 12:40). 오늘도 사랑하기 때문에 주인을 기다리는 충성스런 종이 되기로 마음의 영점을 조절한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꿋꿋이 서있기를 기도한다. 그렇게 삼십년 넘게 상번제로 매양 드리는 아침 묵상이 마무리 된다.


아침을 준비하기 전 다이어리 정리를 한다. 어제 했던 일들을 시간대 별로 꼼꼼히 적은 뒤, 오늘 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 하는 일들과 지켜야할 약속들을 대충 가늠해 본다. 문득 누군가의 삶의 모토가 떠오른다.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그러나 오늘 하루는 치열하게!’ 피식 웃음이 난다. 그것도 혈기 왕성할 때의 얘기라고 하고 싶은 것이다. 치열했던 어제를 지나 맞은 여유로운 오늘이 나는 좋다. 그분이 주신 선물을 느긋하게 즐기게 된 것이다.


이른 아침은 새들의 쇼 타임이다. 저마다의 음색들로 어우러진 합창 속에서 새벽의 푸른 어둠은 씻겨지고, 아침에도 뜸이 들기 시작한다. 싱싱한 과일들이 접시에 담기고, 식빵 몇 장이 바삭하게 토스트 되고, 향긋한 커피 내음 까지 얹히면 아침 식사 준비는 마무리 된다. 식기류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즈음,  지저귀는 새들도 아침을 먹으러 돌아간다. 녀석들처럼 가볍게 살고 싶은 마음에 소식(小食)을 하기로 한지 오래다. 혈당도 안정세로 돌아섰다. 먼저 식사를 마친 남편이 약사로 분한다. 각종 비타민과 혈당 약을 챙겨 놓는다. 사이좋게 나눠 먹으면서 우리는 아침 묵상과 오늘의 일정을 대략 나눈다. 이제 각자의 사역지로 떠나야할 시간이다.


매주 목요일에는 목요 여성 예배가 있다. 그 곳에서 설교를 맡아서 섬긴지 3년 쯤 되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눅 12:42)는 주님의 물음에 순종한 결과다. 강대상에 설 때마다 나는 내 자신을 설득한다. 너는 그저 그분이 마련해 놓으신 양식을 서빙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가끔씩 설교에 은혜를 받았다고 표현하는 자매님들을 만날 때면 슬쩍 부담스럽다. 나아가 뭔가 신령한 특별 은사를 받은 사람인 양 취급하는 사람들에게선 도망치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오만한 마음이 득의양양할까 노파심이 드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애써 주님을 기억한다. 나는 그저 그분의 청지기일 뿐이며, 피하거나 도망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임을 상기시킨다.


미연 집사님의 찬양 인도는 언제나 은혜스럽다. 뛰어난 은사에도 불구하고 잔뜩 위축되어 있었던 그녀였다. 그녀가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용기와 격려를 쏟아부었던 지난 시간들이 아깝지 않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찬양이 끝나고, 명희 권사님의 기도 후에, 나는 강대상에 오른다. 말씀 안에서 우리는 그분의 거룩하고 순결한 신부가 된다. 우리의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간절히 열망하는 아가서의 술람미 여인들이 아름답기 만하다.


여미마 팀에서 준비한 점심은 매콤한 비빔국수와 바삭한 군만두다. 그들 간의 조화가 그만이다. 테이블 별로 모여서 맛있게 먹은 후, 따뜻한 대추 계피차와 함께 우리는 그 주간의 묵상 말씀들을 나눈다. 웃음꽃이 만발한 테이블, 서로의 눈물 닦아주는 테이블, 심각한 표정으로 함께 아파하는 테이블, 아직은 어색한 듯 요리조리 관찰 중인 테이블. 저마다 다른 색깔의 사람들이 말씀 안에서 하나가 되어간다. 서로 다르기에 더욱 풍성해질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다.


아이들 픽업을 위해서 젊은 엄마들이 하나 둘 일어선다. 시간의 여유가 있는 집사님들과 함께 뒷정리를 한 뒤, 잠깐 동안의 작별을 한다. 울며 씨를 뿌리면서 그분을 뜨겁게 예배하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간다. 우리의 손에는 말씀의 씨앗들이 상당량 들려있다.


오후 3시. 낮잠을 자야할 시간이다. 낮 동안 에너지를 바닥까지 끌어모아 썼으니, 조금이라도 채워주어야 한다. 몸이 부쩍 약해진 탓에 제 때 쉼을 주지 않으면 큰 일이 난다.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침대에 눕는다. 영혼과 육신을 잠시 멈춤 상태로 둔 뒤, 주께서 새 힘을 허락해주시길 기도하면서 눈을 감는다. 기다렸다는 듯이 잠에 곯아떨어진다.


오후 4시 반, 컴퓨터를 켜고 앉는다. 어제 하루 종일 썼던 원고들을 처음부터 훑어본다. 먼저는 성서 유니온에서 출판하고 있는 고학년 매일 성경 큐티 원고다. 그것을 집필한지는 벌써 25년이나 되었다. 남들은 25년쯤 되면 눈감고도 쓸 수 있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갈수록 어려운 것이 글쓰기다. 몇 군데를 손질하여 갈무리한 뒤 편집자에게 이메일로 발송한다. 이번 책임편집자는 이전 사람보다 깐깐하다. 그래서 좀 더 신경을 써서 집필한 것이 사실이니, 감사할 일이다. 갈수록 편집자와 나이차가 벌어지는 중이다. 꼰대 소리는 듣지 않으려면 겸손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정진할 일이다.


다음은 동화 원고다. 기독교 어린이 잡지에 연재 중인데, 쉽지 않은 작업이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매일 성경 큐티책에 동화를 연재한 적이 있었다. 동화 내용이 어렵다는 이유는 중간에 짤려 절필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후로 그것을 마무리하는데 15년이 좀 넘게 걸렸다. 드디어 탈고를 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덜컥 아동 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그를 계기로 지금껏 나는 동화 작가의 길을 걸어오는 중이다. 철없던 시절,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제게 주세요!’ 라고 기도했던 것을 그분은 기억하고 계셨다. 그래서 여전히 어린이들의 묵상에 도움을 주는 원고와 재미와 의미를 주는 동화를 쓰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은 에세이다. 묵상 에세이는 이미 여러 권을 출판한 바다. 점차 독자층이 두터워지자 출판사에서 서평 에세이에 이어서 그림 에세이집을 내자고 요청해 왔다. 그림에 관한 감상과 묵상을 겸한 글은 이미 수십 편이 있는 터라 흥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막상 출판을 위해서 손질을 하려고 보니, 함량 미달인 글이 너무 많다. 앞으로 한동안은 그림 묵상 원고 집필을 위해 다각적인 연구를 해야 할 듯하다.


학교에서 강의와 연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저녁 식사꺼리를 사왔다.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산책을 나간다. 제법 따뜻해진 바람이 좋다. 각자 지낸 하루의 일과를 나누면서 우리는 까르르 웃기도 하고, 서로의 기도제목을 얻기도 한다. 햇님이 제 집으로 돌아가 어둑해질 즈음 우리도 집으로 돌아온다. 


따뜻하게 씻은 후, 그는 그의 서재로, 나는 나의 서재로 향한다. 상번제로 드리는 저녁 묵상 시간이다. 저녁 묵상 본문은 민수기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여 각기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르며 자기들의 기를 따라 진 치기도 하며 행진하기도 하였더라’(민 2:34) 광야 초보자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바짝 군기가 들어 여호와의 명령대로 준행하는 그들의 모습이 예쁘다. 자연스럽게 이제 막 대학원 신입생이 된 하진군과 그토록 바라던 직장에 취직한 하영양이 떠오른다. 그들이 처음 모습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신실하게 즐기면서 그 길을 걸어가길 두 손 모아 간절히 중보한다.


저녁 제단의 불이 서서히 꺼져간다. 그렇게 하루는 마무리가 되어가고, 나는 잠자리에 든다. 비록 나는 밤새 잘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전혀 새로운 내일을 창조하기 위해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 하실 것이다. 피곤하지 않은 채 잠자리에 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던 C. S. 루이스의 말이 기억난다. 다행히 나는 피곤하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기분 좋은 꿈을 꿀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