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선언서


 나, 배은희의 사명은 

 하나님의 선교 사역에 부르심을 입은 은혜에 감격하며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맡기신 일들을 기쁨으로 감당하며 

 예배자로 서 있는 것이다.


10년 후 어느 날

- 배은희 -


1시간 뒤에 있을 ‘OOO 교회 10주년 기념예배’에 가기 위해 분장을 하려고 거울 앞에 앉았다. 요 며칠 잠을 좀 설쳤더니, 얼굴이 영~ 말이 아니다. 큰 딸네가 휴가차 기념예배 날짜에 맞춰 며칠 전부터 집에 와 있다. 올망졸망한 손주 녀석들이 어찌나 개구진지 정신을 쏙 빼놓고 있다. 언니들이랑 살면 좋으련만 굳이 독립을 선언하고 혼자 사는 막내는 방학이라 일찌감치 와 있었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와 일정이 겹쳐 못 오게 된 둘째에게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어제 저녁은 축제였다. 오늘 아침 WORLD NES 시간에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수상 이후 15년 만의 한국인 수상이라 언론에서도 앞다투어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수상식장에서 불어, 영어, 한국어, 베트남어로 하나님께 감사하다며 덤덤하게 수상 소감을 전하면서 가족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여운으로 남기는 장면에 눈시울을 붉히는 사위와 손주 녀석들의 모습까지 화면에 나오니, 내 마음은 이미 은혜로 가득 찼다. 


“Hello~”

‘뭐지? 나한테 영어로 전화할 사람이 없는데...’

세상에나, 키르키스스탄 선교사 몽크와 오뜨거 부부다!!

우리 교회 유일한 몽골인 선교사다. 

이번에 해외선교사역 담당 장로인 끄엉 장로가 파송 선교사 2가정 외에 협력 선교사 5가정까지 초청했다. 끄엉 장로 개인 비용으로 비행 경비며 채류 비용까지 전부 감당했다. 그러지 말라고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기쁨이라며 오히려 제발 은혜를 빼앗지 말아 달라 간청해서 이루어진 일들이다. 내 스타일하고 달라도 너~~~무 다른 일의 진행을 놓고 맘이 어려운 건 나뿐이다. ‘10주년 기념 예배’가 뭐라고 이렇게 난리들인가 말이다. 


하긴, 남편은 지난 30년간 10년 단위로 뭔가 일을 냈었다.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익히며 소수민족에 마음을 두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받아온 물건들을 파는 기념품 가게를 하면서 겪은 일들을 소책자로 낸 처음 10년째 펴낸 책을 받아들었을 때 뭔가 감이 왔었다!! 그다음엔 어렵게 발품을 팔았던 마을들을 시작으로 해서 지역개발사역을 한다고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시간과 열정과 땀과 눈물을 10여 년간 쏟더니 갑자기 한국대사와 기업체 사장들 그리고 각 성의 대표들까지 불러서 그야말로 성대한 ‘지역개발 10주년’ 행사를 하고 안식년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었다. 그러더니 또 느닷없이 다문화 교회를 개척한 것이다!! 이번이 3번째 10주년 행사인 셈이다. 그 펄펄 뛰는 남편 옆에서 하염없는 부채질을 해가며, 남편이 벌려 놓는 일들을 기쁨으로 동행하느라 늙어가는 줄도 모르며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었기에 행복하다.


학사를 졸업한 녀석들이 자기 고향에서 벌써 도착했다고 문자가 하나, 둘씩 온다. 한국어학당 졸업생들까지 선생님 어디 계시냐며 톡을 날린다. 아니, 어떻게들 알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자기들이 왜 와? 어이가 없다. 정이 많은 민족이라 그런가 보다. 무슨 조그만 일만 있으면 우르르 몰려온다. 예쁘다!

특별히 오늘 설교는 밍목사가 한다. 처음 우리 학사에 들어왔을 땐 마약을 했나 싶을 정도로 눈이 퀭하고 초점이 없었다. 너무 가난해서 배가 골아 그런 줄 알게 되었을 땐 미안해서 눈을 맞추기도 힘들었었다.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도 열심히 배우고, 소그룹 지도자반에 등록해서 성경도 열심히 배우더니, 갑자기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됐다. ‘영향력 있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을 양성하는 우리팀 선교부원들은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었지만 밍목사 이후에 계속해서 목사로, 선교사로 헌신하는 제자들을 말릴 수는 없었다!! 


늦었다고 손주 녀석이 소리 지른다. 에라 모르겠다. 화룡점정으로 빨간 립스틱을 휙 바르고 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