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용 기념사업회 설립취지와 독립선언서 >
3·1독립선언서(3·1獨立宣言書)는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임을 선언한 문서로 1919년 3월 1일의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선언한 글이다. 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했으며, 손병희를 비롯한 33명의 민족대표가 세계 만방에 독립을 선언하고 전국 곳곳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기로 계획을 세웠다.
민족대표 33인은 3월 1일 오후 2시 태화관에서 회동을 가졌으며, 한용운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러나 낭독후에 민족대표는 스스로 총독부에 자진 투옥함으로써. 아쉽지만 국민과 함께 만세운동을 하는데 까지는 미치지 못하였다. 또한, 이에 앞서 2월 26일 ‘보성사’에서 2만여 장의〈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2월 28일에 1,500여 장을 학생들에게 분배하고 나머지 〈독립선언서>를 그 밖의 각처와 각 지방에 분배하여, 3월 1일 오후 2시 탑골공원에 모여 고종황제의 인산(因山)에 온 백성들과 함께 낭독하여 독립선언을 하기로 하여 사전 배포하였다.
사실, 고종의 장례일을 이틀 앞두고 수많은 사람이 고종의 승하를 애도하기 위해 서울에 속속 들어왔다. 고종이 일본인들에게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도, 그의 장례일을 이틀 앞두고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도, 따지고 보면, ‘대한제국 황제 고종’에 대한 대중의 기억을 자극하고 동원하려는 의도가 작용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탑골공원에는 삼일독립 만세운동에 참여하고자 모인 동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오후 2시에 독립선언을 한다고 하여 모여든, 그렇게 많은 군중들이 웅성거리며 동요하는 것을 정재용 선생님은 보고 있었다. 2시가 지나서도 민족대표가 나타나지 않자 자신의 주머니에 감추어 놓았던 〈독립선언서>를 만지작 거리며, 이러한 호기(好機)를 상실함은 천추의 한이 될 것임을 직감하고 〈독립선언서>를 꺼내 들었다. 일제의 총칼에 목숨을 빼앗길 위험을 무릅쓰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로 마음을 다짐했다. 정재용 선생이 팔각정 단상에 올라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조선독립만세를 도창(導唱)함으로써, 국내외 동포들의 삼일독립만세운동을 봉기하도록 하는 불길처럼 솟아오르는 기폭제가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 독립선언서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세계만방에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독립의 당위성을 밝힌 선언서로 밝혀지게 되었다. 특히, 최근들어 전국적 만세시위운동으로 확산시키는데 기여한 선언서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으므로해서, 정부는 2016년 10월 20일 2건의 문서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664-1호, 제664-2호로 각각 지정하였다.
이에 따라, 애국지사 정재용 선생에 대한 보훈선양사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동지들은 모여서 사단법인 애국지사 정재용 기념사업회의 설립을 위한 발기인 대표회의를 한바 있으며, 향후 정재용 기념사업회 창립총회를 국회에서 8월 10일 개최하기로 하였다.
이에 기념사업회 동지 및 회원들의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아울러, 우리의 고귀한 〈독립선언서>를 한번 더 일독을 권유하기 위하여 여기에 실어 놓는다.
宣言書(선언서)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半萬年 歷史의 權威를 仗하야 此를 宣言함이며, 二千萬 民衆의 誠忠을 合하야 此를 佈明함이며, 民族의 恒久如一한 自由發展을 爲하야 此를 主張함이며, 人類的 良心의 發露에 基因한 世界改造의 大機運에 順應幷進하기 爲하야 此를 提起함이니, 是, 天의 明命이며, 時代의 大勢이며, 全人類 共存同生權의 正當한 發動이라, 天下何物이던지 此를 沮止抑制치 못할지니라.
舊時代의 遺物인 侵略主義, 强權主義의 犧牲을 作하야 有史以來 累千年에 처음으로 異民族 箝制의 痛苦를 嘗한 지 今에 十年을 過한지라. 我 生存權의 剝喪됨이 무릇 幾何이며, 心靈上 發展의 障碍됨이 무릇 幾何이며, 民族的 尊榮의 毁損됨이 무릇 幾何이며, 新銳와 獨創으로써 世界文化의 大潮流에 寄與補裨할 機緣을 遺失함이 무릇 幾何이뇨.
噫라, 舊來의 抑鬱을 宣暢하려 하면, 時下의 苦痛을 擺脫하려 하면, 將來의 脅威를 芟除하려 하면, 民族的 良心과 國家的 廉義의 壓縮銷殘을 興奮伸張하려 하면, 各個人格의 正當한 發達을 遂하려 하면, 可憐한 子弟에게 苦恥的 財産을 遺與치 안이하려 하면, 子子孫孫의 永久完全한 慶福을 導迎하려 하면, 最大急務가 民族的 獨立을 確實케 함이니, 二千萬 各個가 人마다 方寸의 刃을 懷하고, 人類通性과 時代良心이 正義의 軍과 人道의 干戈로써 護援하는 今日, 吾人은 進하야 取하매 何强을 挫치 못하랴. 退하야 作하매 何志를 展치 못하랴.
丙子修好條規 以來 時時種種의 金石盟約을 食하얏다. 하야 日本의 無信을 罪하려 안이 하노라. 學者는 講壇에서, 政治家는 實際에서, 我 世宗世業을 植民地視하고, 我 文化民族을 土昧人遇하야, 한갓 征服者의 快를 貪할 뿐이오, 我의 久遠한 社會基礎와 卓落한 民族心理를 無視한다. 하야 日本의 少義함을 責하려 안이 하노라. 自己를 策勵하기에 急한 吾人은 他의 怨尤를 暇치 못하노라. 現在를 綢繆하기에 急한 吾人은 宿昔의 懲辨을 暇치 못하노라. 今日 吾人의 所任은 다만 自己의 建設이 有할 뿐이오, 決코 他의 破壞에 在치 안이 하도다. 嚴肅한 良心의 命令으로써 自家의 新運命을 開拓함이오, 決코 舊怨과 一時的 感情으로써 他를 嫉逐排斥함이 안이로다. 舊思想, 舊勢力에 羈彌된 日本 爲政家의 功名的 犧牲이 된 不自然, 又 不合理한 錯誤狀態를 改善匡正하야, 自然, 又 合理한 正經大原으로 歸還케 함이로다. 當初에 民族的 要求로서 出치 안이 한 兩國倂合의 結果가, 畢竟 姑息的 威壓과 差別的 不平과 統計數字上 虛飾의 下에서 利害相反한 兩 民族間에 永遠히 和同할 수 업는 怨溝를 去益深造하는 今來實績을 觀하라. 勇明果敢으로써 舊誤를 廓正하고, 眞正한 理解와 同情에 基本한 友好的 新局面을 打開함이 彼此間 遠禍召福하는 捷徑임을 明知할 것 안인가. 또, 二千萬 含憤蓄怨의 民을 威力으로써 拘束함은 다만 東洋의 永久한 平和를 保障 所以가 안일 뿐 안이라, 此로 因하야 東洋安危의 主軸인 四億萬 支那人의 日本에 對한 危懼와 猜疑를 갈수록 濃厚케 하야, 그 結果로 東洋 全局이 共倒同亡의 悲運을 招致할 것이 明하니, 今日 吾人의 朝鮮獨立은 朝鮮人으로 하여금 正當한 生榮을 遂케 하는 同時에, 日本으로 하여금 邪路로서 出하야 東洋 支持者인 重責을 全케 하는 것이며, 支那로 하야금 夢寐에도 免하지 못 하는 不安, 恐怖로서 脫出케 하는 것이며, 또 東洋平和로 重要한 一部를 삼는 世界平和, 人類幸福에 必要한 階段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엇지 區區한 感情上 問題이리오.
아아, 新天地가 眼前에 展開되도다. 威力의 時代가 去하고 道義의 時代가 來하도다. 過去 全世紀에 鍊磨長養된 人道的 精神이 바야흐로 新文明의 曙光을 人類의 歷史에 投射하기 始하도다. 新春이 世界에 來하야 萬物의 回蘇를 催促하는 도다. 凍氷寒雪에 呼吸을 閉蟄한 것이 彼一時의 勢이라 하면 和風暖陽에 氣脈을 振舒함은 此一時의 勢이니, 天地의 復運에 際하고 世界의 變潮를 乘한 吾人은 아모 躊躇할 것 업스며, 아모 忌憚할 것 업도다. 我의 固有한 自由權을 護全하야 生旺의 樂을 飽享할 것이며, 我의 自足한 獨創力을 發揮하야 春滿한 大界에 民族的 精華를 結紐할지로다.
吾等이 玆에 奮起하도다. 良心이 我와 同存하며 眞理가 我와 幷進하는 도다. 男女老少 업시 陰鬱한 古巢로서 活潑히 起來하야 萬彙群象으로 더부러 欣快한 復活을 成遂하게 되도다. 千百世 祖靈이 吾等을 陰佑하며 全世界 氣運이 吾等을 外護하나니, 着手가 곳 成功이라. 다만, 前頭의 光明으로 驀進할 따름인뎌.
公約三章
ㅡ. 今日 吾人의 此擧는 正義, 人道, 生存, 尊榮을 爲하는 民族的 要求이니, 오즉 自由的 精神을 發揮할 것이오, 決코 排他的 感情으로 逸走하지 말라.
ㅡ. 最後의 一人까지, 最後의 一刻까지 民族의 正當한 意思를 快히 發表하라.
ㅡ. 一切의 行動은 가장 秩序를 尊重하야, 吾人의 主張과 態度로 하야금 어디까지던지 光明正大하게 하라.
朝鮮建國 4252년 3월 1일 朝鮮民族代表
孫秉熙, 吉善宙, 李弼柱, 白龍城, 金完圭, 金秉祚, 金唱準, 權東鎭, 權秉悳, 羅龍煥, 羅仁協, 梁甸伯, 梁漢黙, 劉如大, 李甲成, 李明龍, 李昇薰, 李鍾勳, 李鍾一, 林禮煥, 朴鎨乘, 朴熙道, 朴東完, 申洪植, 申錫九, 吳世昌, 吳華英, 鄭春洙, 崔聖模, 崔麟, 韓龍雲, 洪秉箕, 洪基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