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의 호국인물, 민종식 의병장 헌양행사 참가
오늘은 삼방파 종중으로부터 민종식 의병장이 12월 이달의 호국인물로 선정이 되었으니 헌양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카톡을 받고 부리나케 참석을 하였다.
생각외로 너무 뜻깊은 행사였다.
조선왕조말 광무 9년(1905년)에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니, 애국지사는 다 같이 굴욕 외교임을 통론(痛論: 뼈를 깍는 마음으로 논술함)하지 아니한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다. 그 중에서도 국가의 중요직분을 담당하고 있는 이조 참판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고관대작으로서, 퇴초자(退樵子) 민종식 의병장께서는 이조 참판직을 버리고 정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것은 매우 막중하고 위급한 일이며, 국가로서는 더이상 어디서부터 방책을 만들어 대처할수 없는 처지에서 나온 최선의 방책이란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역사의 기록중에 이렇게 고관대작이 의병을 일으켜서 일본군과 싸움을 시작하였다는 것은 역사상 찾아보기 드믄, 참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의리의 표상으로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지금에서나마 그 공훈을 인정받아 전쟁기념관의 12월의 호국인물로 헌양행사를 올리니, 종손인 민수홍 선생은 물론이고 우리 집안사람으로서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지 아니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전쟁기념관에서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호국들을 기리고자 1999년부터 지금까지 ‘이달의 호국인물’을 선정하여 지속적으로 헌양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민종식 의병장은 각처의 의병들로 조직된 연합의병의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1906년 5월 의병들을 홍산(鴻山)에 집결시켰고, 여기서부터 서천(舒川)·비인(庇仁)·판교(板橋)·남포(藍浦)·보령(保寧)·청양(靑陽) 등 충청남도 서부 일대를 점령한 뒤, 서부의 중심지인 홍주(洪州)를 공략해 점거하였다.
(이렇듯 왜병과 싸워 크게 이겨 을사의병 중 경상북도의 신돌석(申乭石) 진영, 정용기(鄭鏞基)·정환직(鄭煥直) 진영과 3대 전투의병으로 손꼽힌다.)
홍주의병의 항일 세력은 서울과의 교통로 때문에도 일제 침략군에게는 큰 위협거리가 되었다.
그런 까닭에 서울에 주둔하던 일군이 토벌군으로 파견되어, 5월 31일 홍주성에서 대혈전이 전개되었는데,
이 싸움에서 의병 83명이 전사하고, 145명이 일군에게 잡혔다.
일본군들은 야밤에 홍주 성내에 돌입하여. 민간인들을 닥치는 대로 살육하였고,
민종식선생도 피체되어 재판을 받았다.(판결문, 1907.07.02, 평리원)
일본 경찰 취조에 임해서도 당당한 태도로 교수형을 언도 받았으나, 융희황제 즉위시에 왕실 척족이라는 사유로 특사로 석방되었다.
선생은 악형의 여독으로 1917년 6월 26일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총독부에서 “폭도대장”(暴徒大將)이라 하여 선영에 묻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서 3개월이 지나서야 간신히 여주군 강천면 가야리 선영에 묻힐수 있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박삼득 전쟁기념관장은 ‘이달의 호국인물’로 선정된 것은 그 선발절차나 평가에 있어 역사적 기록을 엄격하고도 치밀한 전문적인 평가 과정을 거쳐 법적 판단을 모두 거친 것이므로, 매우 국가적인 명예를 부여하는 것으로서, 광영의 햇살을 비춰주는 것이므로 후손으로서는 매우 영광된 일이 아닐수 없다고 극찬하였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러한 애국지사 및 그 후손에게는 최대한의 예우를 보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여러가지 예를들어 말을 전달하였다.
거기에 더해, 청양군 이광열 과장은 “정산면 천장리에 있는 민종식 고택은 은둔할 당시 살던 집으로서, 청양군에서는 정부지원을 받아 고택을 복원시키고 유적 보존사업을 전개 추진하고자 한다면서, 나아가 고택 주변은 칠갑권역 종합체험마을과 연계시켜서 의병 역사유적 체험마을로 만들어서 관광명소로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라고 말하였다. 말하자면, “고택을 복원해 민족정기를 드높이는 본보기로” 삼기위해 국가지원신청을 하여, 이미 예산 170억원을 확보한 상태이며, 이에따라 이미 청사진을 만들었으며 내년부터는 본격 추진할 예정이라고 확신에 차서 설명을 하였다.
오늘은 이것 말고도 여러가지 일로 매우 바쁜 날이었다. 오전에는 국회 일정도 있었고, 또한 저녁에는 아파트 동대표회장 소견발표도 있는 날이다.
이 세가지 일정을 하루에 모두 소화해 내기 위해서는 어깨죽지에 땀이 날 정도로 그리 바삐 서둘러야만 했다.
그럼에도 힘이 생기는 것은 할아버지 민종식 의병장께서 전쟁기념관에서 선정한 ‘이달의 호국인물’이 되었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고택을 복원해야 하는 이유
다 쓰러져 가던 고택에,
아무도 보아주지 않던 외로운 창가에,
이제 사랑의 손길이 정녕 다가오고 있으리라,
느껴지는 환희의 찬가(讚歌)가 있다.
그것은 훌륭한 후손이 당당히 서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나에게 부여된 모든 일들이
모두가 즐거운 일이 되는
그런 연속성(連續性)속에 하루를 맞게 되리라!
지난일의 후회와 천착을 지워야 한다.
그리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조상이 남겨준 고택을 소중히 생각하고 기리는 것
고마움 감사 사랑으로 기쁨이 솟구치는 이유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