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기 고종태황제(高宗太皇帝) 기신친향례 참반

 

고종태황제를 이해하려면 당시의 척사양이정책(斥邪攘夷政策)의 이하응[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과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 개화파(開化派)의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이해하여야 한다.

 

이하응은 순조, 헌종, 철종 3대에 걸친 안동김씨(安東金氏)의 세도정치의 화()를 피해 시정 무뢰한과 어울리고 방탕한 생활을 자행하며 위험을 피하였고 조대비(趙大妃)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여 철종이 죽자 흥선군의 둘째 아들 명복으로 하여금 국왕으로 즉위하게 하였다. 고종은 당시 12세의 어린 나이로서 조대비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였지만 이하응(흥선대원군)이 국정을 총람 섭정하게 되었다.

 

고종은 장성하게 되면서 직접통치를 하려는 강한 의욕을 가지게 되었고, 1866년 여성부원군(麗城府院君) 민치록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니 이 분이 민비 명성황후(明成皇后)이다. 민비와 노대신들은 유림을 앞세워 대원군의 하야를 주장하여 마침내 1873년 서무친재(庶務親裁)의 명을 내려 고종이 직접 정치를 다스리게 되었다.

 

즉 당시에는 척사양이정책(斥邪攘夷政策)와 대외개방정책인 개항(開港)/개화(開化)시책의 다툼으로 개화파와 수구파 간의 정책대립이 점차 첨예화된 것이다. 결국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등 수구세력간 계속된 알력으로 일본군과 청국군이 조선에 진주하게 되어 자주권에 큰 손상을 입게된다. 청일전쟁후 삼국간섭으로 일본의 기세가 꺽이자 친로(親露)정책을 펴게된다. 이에 일본은 을미사변을 일으켜 민비를 살해하는 천인공노(天人共怒)할 폭거를 자행하였다.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친러정부가 집정하면서 열강으로 많은 이권이 넘어가는 등 국가 권익과 위신이 추락하자 독립협회에서는 국왕의 환궁과 자주선양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고종은 189710월 대한제국의 수립을 선포하고 황제위에 올라 연호를 광무(光武)라 하였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함으로서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인정하기 싫어하였고 결국 1910년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삼켜버리는 한일강제병합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는 의병활동이 전개되었으며, 조국의 독립을 하기 위해서 목숨을 건 독립투쟁을 하였고 1919121일 새벽에 갑작스럽게 고종태황제께서 승하(昇遐)하였다. 이때 고종태황제가 일본인에게 독살 당하였다는 풍문이 유포되어 191928일 조선의 유학생들이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서와 결의문으로 독립선언을 하였고, 그 후로 19193114시 서울 종로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 후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들과 백성들이 대한의 독립국과 자주국을 선언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고종태황제의 일생은 너무나 자주성(自主性)과 발전성(發展性)이 모자라는 환경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대외적인 힘에 억눌려 내적으로는 분열(分裂)되고 대립(對立)되는 과정속에서 강력한 통합을 기대하는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지 못한 일면을 가지고 있다. 특히 대외적으로도 친청, 친일, 친로의 정부를 구성하면서 그때 그때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대외정책으로 분열과 갈등과 위기를 겪으므로서 결국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시해와 고종태황제(高宗太皇帝)의 독살에 의한 승하에 이르른 것은 매우 슬픈 역사적 사실이라 해야 할 것이다

 

고종태황제께서 붕어(崩御)하신지 100주기가 되는 오늘!

일본인들에게 의해 시해(1895)되신 명성황후를 함께 모신 이 홍릉은 그 어느 곳보다도 우리나라 대한독립만세의 중요한 초석을 제공한 곳으로 3,1독립운동과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 역사적인 공간이라고 해도 무난할 것이다. 1897년 고종태황제께서는 황제위에 올라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한민족의 근대사의 새 출발점을 맞게 하였으며, 자주국가를 지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 광무개혁을 실시하는 등 부강한 국가를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그러한 노력들이 모두 다 열강의 힘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만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남북분단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러므로 지난 역사를 거울삼아 강대국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외세에 의존하는 그러한 나약한 안이한 처방은 결국 열강들의 이권싸움으로 나타날뿐인 것으로서, 이러한 때일수록 고종태황제께서 주창하신 홍익인간 이념인 대한국민으로 거듭 나고자 노력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고도 중요한 일이며, 또한 국민 모두가 국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민행동의 통합을 이루어 내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을 더욱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임을 우리 모두가 확신하여 실행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