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노강서원 춘향제에 다녀왔다. 노강서원은 박태보(1654~1689)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수도권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사액서원으로 정조대왕시 노강(鷺江)이란 사액을 받았으며, 대원군 서원 훼철시에도 훼철되지 않은 27개 서원중 하나이다.

원래 노량진에 세워졌던 것인데 6·25전쟁으로 소실됨에 따라 1968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반남박씨(潘南朴氏) 대종중(大宗中)에서는 일년에 두 번, ·추향제를 모시고 있다.

우리 여흥민씨 삼방파와는 오랜 인연으로 엮여져 매번 참반(參班)을 해왔으며 정성을 기울여 향사를 모셔왔다.


이러한 효()를 보면 생각나는 글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자신를 발견하기 위해 수양하며, 인격의 완성을 위해 학문(學問)과 사색(思索)을 한다. 사람과 사람간 소통도 잘해야 한다.(그럼. 그렇지)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가장 좋은 길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철학을 공유해야 한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철학),(본성) 인의예지의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그 본성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본성의 심지(心志)를 파악해 정감이 통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천하의 물정(物情)도 두루 통하게 된다. 철학이 다르면 사고(思考)가 번거로워 사업을 신속하게 계획할 수 없다.”

우리는 이와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다.

 

정재(定齋) 박태보 선생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의리(義理)를 생명으로 삼아일생을 보내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비이다.

조그만 불의(不義)라도 이를 보면 참지 못하고 시비를 가렸다고 한다.

시비를 가리는 데는 조리가 정연했고, 조그만 비리를 보더라도 과감히 나섰으며, 의리를 위해서는 목숨도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선생께서는 기존의 성리학을 비판하고 주자와 다른 해석을 담은 사변록을 저술한 분이다.

통재(痛哉)! 1689년 기사환국 때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를 강력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심한 고문을 받고 진도로 유배하는 도중에 노량진에서 순절하신 분이다.

 

정재(定齋) 박태보 선생이 죽은 뒤 왕은 곧 후회했고, 충절을 기리는 정려문을 세웠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파주 풍계사(豐溪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정재집(定齋集), 편서로는 주서국편(周書國編), 글씨로는 박임종비(朴林宗碑예조참판박규표비(禮曹參判朴葵表碑박상충비(朴尙衷碑) 등이 있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재주가 뛰어나 젊은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였으며,

타고난 성품도 뛰어나 지기(志氣)가 고상하고 견식이 투철해 여러 차례의 상소를 올릴 정도로 정의사도(正義師徒)가 됨에 충분하였고,

학문 태도도 깊고 높아 당대의 명망있는 선비들과 깊은 교유를 맺었다.

특별히 교유한 친우로는 소론파의 최석정(崔錫鼎조지겸(趙持謙임영(林泳오도일(吳道一한태동(韓泰東) 등이 있다.

오늘은 반남박씨(潘南朴氏) 대종중(大宗中) 대의종원(大義宗員) 박시우 관창(寬窓)님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앞으로 박태보 선생의 교유한 친우의 후손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며...(훗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