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인(野人) 생활

 

   이박사가 하야하는 날 과도수반인 우양이 다녀갔을 뿐 이화장에는 외부 출입객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이박사는 외부의 돌아가는 정세를 알 수 없었다.

 

   매일 아침 내가 들어가 신문보도 내용과 들은 얘기를 말씀드리곤 했는데 처음에는 '조용히 쉬는 내가 뭘 들어' 하며 달가와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세상 인심(人心) 돌아가는 것을 아셔야 그때그때 대응책을 쓰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다면 자주 들어와 세상 돌아가는 얘기 좀 해줘."

 

   이박사를 모시고 온 경찰관들도 '자주 들어와 바른 얘기 좀 해달라'고 해 나는 매일 아침 9시 전후에 이화장엘 들어갔다.

 

   그런데 이화장으로 옮긴 뒤에도 한참 동안 박찬일 비서와 곽영주 경무관이 그대로 근무했다. 이로 인해 밖의 여론이 좋지 않았다. 당시 신문에는 '정치폭력배 곽영주, 이화장에 건재'라는 보도가 크게 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박사께 두 사람을 내보내는 게 좋겠다고 진언했다.

 

   "할아버님, 어쩌자고 이 사람들을 그대로 두십니까. 박비서와 곽경무관은 정치적 책임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대로 두면 여론이 나빠집니다."

 

   몇 번을 말씀드려도 처음에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박사 생각으로는 우선 주변에 믿던 사람이 없어지면 적막하다는 느낌과 내보내면 당장 이들이 잡혀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던 중 국무위원과 자유당 인사들이 구속되고 곽씨의 구속을 검찰이 검토한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졌다. 나는 또 그동안 이 두사람에 대해 보도된 신문을 보이면서 내보내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특히 곽 경무관은 경찰이 구속하기 전에 내보내는 게 좋겠다고 주장했다.

 

   이박사는 하도 조르니 '그러면 적당한 사람을 구해 보라'고 했다. 이박사 내외를 모실 사람은 영어도 알고 타자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우선 과거에 이박사를 모시던 사람 중에서 물색해보니 황규면씨가 가장 적임이라는 얘기들이었다. 전에 경무대 비서였던 김홍식씨가 나와 의논한 뒤 이박사에게 황씨를 추천해 승낙이 내렸다. 그 때 경전(京電) 상임가마로 근무하고 있던 황씨는 이박사의 뜻을 전해듣고 별로 내키지는 않겠지만 승낙했다. 그러나 박비서가 이화장에 머무르고 있어 이씨가 이박사의 일을 돕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마담은 박비서를 무척 신임했다. 게다가 황씨가 전에 민주당 비밀당원이라는 모략을 들었기 때문에 할머니로서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는지 모른다.

 

   결국 물러나게 된 박비서는 내게 사무 인계를 받으라고 했다. 그에게 별로 기분이 좋지 않던 나는 '나가면 그만이지 사무 인계가 다 뭐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날로 박씨는 이화장에서 떠났다. 한편 곽 경무관은 이화장에서 검찰에 연행되었다.

 

   나중에 그가 눈에 안 띄는 것을 알아챈 이박사는 구속됐다는 얘기를 듣고 '죄가 많이 있나. 되가 있으면 벌을 받아야지. 어떻게 될까'고 말끝을 흐렸다.

 

   이런 중에 5월 10일자 연합신문에 NANA 통신을 전재한 '이승만 정권 12년 폭정사'라는 제하의 기사가 크게 보도됐다. 레이 포크 기자의 서울발 기사였는데 대충 이대통령이 노령임을 기화로 프란체스카 부인과 박마리아 여사가 마리 앙트와네트와 라 파트주 부인 이상의 권력을 휘둘렀다는 내용이다.

 

   마담은 이대통령의 건강만 걱정하느라 연로한 대통령 주위에 침묵의 벽을 둘러싸 마음에 편치 않을 일이나 정치 현실을 보고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남편보다 야심이 컸던 박마리아는 국회의장보다 더 큰 권력을 갖고 있었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평소의 내 생각과 어쩌면 이렇게도 똑같은가. 나는 꼭 할아버지에게 보여드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왕이면 영어로 번역해 할머니도 보도록 하는 게 좋겠어서 전에 경무대 비서실에 있던 사람에게 번역을 부탁했다.

 

   '이박사가 하야한 후 왜 내가 물러나게 됐나 궁금해 하실 테니 보여드리도록 번역 좀 해달라'고 했더니 그는 시사통신사에서 영문기사 원문을 얻어주었다. 연합신문에 붉은 줄을 쳐 원문본과 함께 봉투에 넣어 다음 날 아침 이화장에 가져갔다.

 

   정원에 산책나오는 할아버지를 만나 그 봉투를 드렸다.

 

   "연합신문에 미국기자가 쓴 기사가 실렸는데 보는 사람들마다 정확하다고 호평이 대단합니다. 영문본과 함께 가져왔으니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이리 줘."

 

   이박사는 이 봉투를 받아들고 뒤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날 낮 다시 이화장에 가보니 큰 야단이 났었다고 했다.

 

   언덕에 올라간 이박사는 경찰관이 가져온 의자에 앉아 이 신문을 읽고 또 읽었다. 다시 뜰로 내려와 마담에게 '미스터 우가 가져온 건대 좀 읽어봐'하며 영문본을 조용이 건네주었다.

 

   무심히 글을 읽던 마담은 읽다 말고 종이에 얼굴을 덮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박사는 아무 말없이 먼곳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웠다. 한참 울던 마담은 구두도 벗지 않은 채 방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