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2.10.15 조선일보 촬영
장면 총리와 김옥윤 여사, 그리고 수행원들이 밤중에 명륜동집 마당으로 들어서는 이 한 장의 흑백 사진.
어떤 배경 하에 찍혔길래 신문사 뉴스 이미지 뱅크에 저장되어 있을까?
사진이 찍힌 날짜(1962년 10월 16일자)의 해당 신문을 찾아보니 5.16 군사정변 후 이주당(二主黨) 반혁명(反革命 : 여기서 혁명은 5.16 군사정변 주체가 일으킨 군사정변을 스스로 지칭하여 쓴 표현이다) 사건에 연루된 장면 전 총리가 김종오 계엄사령관에 의한 보통군사재판 1심판결에서 10년형을 선고받은 후 형집행면제로 풀려나 명륜동 집으로 돌아오게 된 사실이 1면에 실려 있었다.
해당 신문기사를 게재하니 한 번 직접 읽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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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씨 어젯밤 출감 수감 48일만에 보석금 10만원
舊 이주당(二主黨) 반혁명사건에 관련되어 수감중이던 전 국무총리 장면씨는 15일 밤 9시 57분 서울교도소에서 석방되었다.
지난 12일 김종오(金鐘五) 계엄사령관에 의하여 보통군재(普通軍裁) 1심 판결인 10년 징역에서 형집행면제의 확인을 받은 장씨의 출감은 공소권 행사 여부의 문제로 지연되어 오다가 15일 하오 김 계엄사령관 직권에 의한 보석의 형식으로 석방된 것이다.
수감된 지 48일 만에 회색 양복에 회색 해트를 쓰고 교도소 문을 나온 장면 씨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고 기쁜 얼굴로 말할 뿐 앞으로의 공소권 행사 여부에 대해서는 말문을 열지 않은 채 자가용 찝차를 타고 명륜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날 장씨의 출감 수속을 밟았던 조재천 변호인은 보석금 10만원을 3일 이내에 납부하기로 각서를 썼다고 밝히면서 앞으로의 공소 여부는 '본인의 의사에 달려 있다.'고 말했는데 '본인의 의사가 어떻드냐?'는 물음에도 '다 아는 것이 아니냐'고 함축성 있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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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군사정변의 주역들은 자신들이 무너뜨린 정권에 대한 심판과 단죄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군사정부가 장면 전 총리에 대해 공소장을 통해 적시한 범죄사실은 아래의 1962년 8월 18일자 동아일보 신문기사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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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당(二主黨) 사건 관련 장면씨에 대한 공소장
◆ 적용법조 △ 특정범죄 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 제3조의2(미수범·예비·음모) △ 국가보안법 제1조(반국가단체 구성)
◆ 범죄사실 피고인은 자유당 치하에서 부통령·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을 역임하다가 4·19 학생의거 혜택으로 1960년 7월 29일 서울특별시 용산구에서 제5대 민의원으로 당선되고 동년 8월 국무총리로 피선, 집권케 되었으나 자유당에 못지 않은 부패와 무능의 반복으로 말미암아 국내질서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모든 분야에 걸쳐 극도로 문란하여지고 국운을 누란의 위기에 몰아넣어 마침내 5·16 군사혁명을 자초하였던 자인 바
1. 1962년 3월 초순경 및 4월 초순경의 2회에 걸쳐서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1가 36의 1에 있는 피고인 자가(自家)에서 피고인의 국무총리 당시의 영문 공보비서로 근무한 바 있는 미국인 「위타카」로부터 안병도(安柄都, 旣求公判) 등이 현 군사정부에 대한 불평 불만에서 학생과 군대를 동원하여 현 군사정부를 전복하고 정부를 원상으로 복구시켜 피고인을 과도정부 수반으로 취임토록 음모중이니 동 거사자금을 마련해달라는 제의를 받고 이에 찬동함으로써 동 안병도 등이 정부를 전복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반국가단체를 구성한 것을 지실(知悉)하고 동인(同人)들의 동 음모에 동조 가담하여 동인들을 지원할 의사를 포지(抱持)하고
2. 동년 4월 20일 하오 8시경 전기(前記) 피고인 가(家)를 방문한 김재우(金在祐, 旣求公判)로부터 동 거사음모 내용을 재확인하고 익일 하오 8시 30분경 피고인의 지시대로 전기 피고인 가를 찾아온 동 김재우에게 보자기(證第七號)에 싼 현금 1백만원(舊貨)을 교부하여 동인으로 하여금 동월 26일경 동 금원(金圓) 중 80만원(舊貨)을 동 안병도에게 전달케 하여 제공함으로써 혁명과업 수행을 방해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집단을 구성한 것이다. |
맨 앞에 게재한 사진은 이러한 사건을 묵묵히 말해주는 기록사진이다.
지금도 명륜동 장면 총리 가옥에 가면 위 사진의 배경이 된 건물이 복원을 거쳐 그대로 남아 있다. 그 건물을 지나칠 때 사진 속 장면을 한 번 떠올려 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4.19로 등장한 민주세력의 퇴장과 군부의 등장이 그 후 대한민국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 2008년도 문화재 등록 당시 경호원동
▲ 수리, 복원된 경호원동 - 현재는 관리인들의 관리실로 사용되고 있다.